웹소설 작가가 직접 파헤치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드라마화 BTS

2023. 2. 7. 0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의 흥행과 논란으로 뜨거워진 웹소설 IP시장. ‘재벌물’에 담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욕망과 희망, 웹소설이 드라마가 되면서 발생하는 쟁점까지, 웹소설 작가가 직접 파헤쳤다.

최근 동명의 웹소설 원작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뜨거운 이슈 몰이를 했다. ‘재벌’이라는 소재에 실제와 가상을 뒤섞어 한국 현대 정재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다룬 방식, 이성민과 송중기 등 배우들의 열연, 폭발적인 시청률, 그리고 그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논란의 엔딩까지. 2022년에 드라마를 비롯해 수많은 IP 콘텐츠가 쏟아져 나왔음에도 2023년이 된 지금, 지난 한 해의 무수한 드라마를 떠올리면 〈재벌집 막내아들〉과 그 엔딩에 대한 논란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다.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재벌물과 회귀물이라는 장르가 얼마나 독특한 MZ세대의 문화인지부터 웹소설이라는 방대한 IP에 대한 호기심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나는 웹소설 작가인 동시에 웹소설과 장르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인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를 살펴보니 몇 가지 전제에서 인식이 조금 다른 점이 나타났다.

우선 〈재벌집 막내아들〉의 이슈를 이해하려면 먼저 ‘출판 IP 콘텐츠’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두는 게 좋다. IP 콘텐츠란 ‘Intellectual Property Contents’의 약자로 지식재산 콘텐츠를 뜻하는데, 여기에 출판이 들어가면 출판물 형태의 지식재산 콘텐츠를 말한다. 전래동화 〈흥부와 놀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동화책은 맷값을 받으며 매를 맞는 흥부의 이야기를 삭제했고, 어떤 동화책은 흥부의 아이가 다섯이었다가 여덟으로 바뀌었다. 모든 작품은 ‘흥부와 놀부’라는 뼈대를 공유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편집의 양식, 디테일은 어떤 출판사에서 제작하느냐, 어떤 작가이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 이때 가장 원천이 되는 이야기의 가치와 그 이용의 권리 등을 통틀어 IP 콘텐츠라고 부른다. 고전 서사 이론에선 시간 순서대로 배열해놓은 가장 기초적인 재료를 ‘이야기, 스토리’라고 부르며 전달자의 편집·배열로 완성된 이야기의 형태를 ‘서사, 내러티브’라고 부른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재벌집 막내아들〉의 IP는 스토리일까, 내러티브일까?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매체 전환 과정을 거친 웹소설을 스토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웹소설 IP는 거대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내러티브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소설은 작가 한 명이 작품을 내서 출판사에 보내고, 그 출판사에서 인쇄물로 내용을 찍어 출판하는 형태인 탓에 창작은 오로지 작가의 몫이고, 한번 출간된 글은 변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웹소설은 인터넷 게시판 형태로 작가가 글을 올리고, 그 글에 대해서 24시간 동안 댓글을 통해 전개에 대한 이야기나 오타 관련 제보를 받은 후 다음 편으로 독자를 끊임없이 유입시키기 위해 AS를 진행한다. 오타를 수정하거나, 너무 지적을 많이 받은 부분은 적극적인 수정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건 웹소설의 연재 방식이다. 웹소설은 완성된 구조의 이야기를 책이라는 하나의 구조에서 한 번에 전달하지 않는다. 보통 하루에 한 편을 업로드하고, 그러다 보니 약 300편의 소설은 300일에 걸쳐서 독자들이 끊임없이 읽을까, 그만 읽을까의 선택을 통해 이어진다. 이처럼 웹소설은 한 명의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원천 소스가 아니라, 여러 독자의 욕망과 정념이 들어가면서 ‘편집’된 결정체인 셈이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웹소설이라는 공간에서 이질적으로 툭 튀어나온 작품이 아니다. 드라마의 처음과 끝에 등장한 ‘트럭’의 경우 웹소설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문법 중 하나로, 그 트럭에는 ‘환생 트럭’이나 ‘회귀 트럭’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다. 트럭이 나타나서 치였을 때, 죽음을 통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건 이미 웹소설 독자들에게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그러려니 이해하는 문법인 셈이다. 〈해리 포터〉가 킹스 크로스 9와 3/4 승강장을 지나면 머글들의 세계에서 벗어나 마법 세계로 넘어가는 걸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듯, 이미 트럭이 나타난 순간 모든 사람은 진도준이 새로운 몸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이라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벌집 막내아들〉의 웹소설 엔딩은 ‘진도준’이 순양그룹을 완전히 차지해 회장이 되는 것을 엔딩으로 제시하며, 소설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판의 엔딩은 달랐다. 드라마 16편에서 은 다시 ‘윤현우’로 돌아오고, ‘윤현우’는 자신의 삶이 회귀나 빙의가 아니라 그저 일장춘몽에 가까운 꿈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이 세계가 진실된 것이라 믿었던 시청자들에게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이야기하며 장르의 문법뿐만 아니라 ‘재벌물’이라는 장르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던 이유조차 제거해버린 것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방영된 후, 재벌물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재벌을 너무 일차원적으로 표현했다거나 물질 만능에 무조건 성공만 하면 된다는 태도, ‘현생’을 도피하는 MZ세대에 대한 비판 같은 이야기들. 하지만 나는 이런 비판들을 재벌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재벌’은 하나의 판타지 장치이지 MZ세대의 회피나 무기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결핍을 가진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재벌’이라는 구조 아래 한국 현대사에서 파생된 정재계 물줄기의 흐름을 바꿔놓는다. 주인공은 미래의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나라, 내가 속한 그룹, 그리고 ‘나’가 성공할 수 있는 선택지를 택한다. 그러나 한 명의 소시민은 IMF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런 파도의 방파제가 돼줄 판타지적 존재로 ‘재벌’이 호출되는 것이다.

즉 여기서 재벌은 마블의 ‘토니 스타크’처럼 압도적인 재산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히어로가 되는 셈이다. 웹소설은 어떤 콘텐츠보다 빠르게 창작되고 소비되기에 〈재벌집 막내아들〉 이후 이미 재벌물이라는 장르를 밀어붙인 작품이 다수 등장했다. 이를테면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재벌가에 천재가 입양 되었다〉나 1960년대 열악했던 여공의 노동환경을 바꿔내고 그를 통해 1차산업의 성공과 근현대 한국의 도약을 꿈꾸는 〈마이, 마이 라이프!〉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2020년 이후 웹소설에선 이미 코인이나 주식을 통해 대박을 내는 소설들도 범람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본에 대한 욕망은 엉망진창이 돼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현대에 대한 푸념이자, 그 안에서 잘 살고 싶다는 희망과 의지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니 영상 콘텐츠 제작사들이 이 사회의 문화적 이슈를 적극적으로 소설화한 웹소설을 주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로 많은 이들이 알게 됐을 것이다. 웹소설의 드라마화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재벌집 막내아들〉의 드라마 엔딩이 이런 방식이 된 것도 조금은 이해된다. 300편 넘는 방대한 스토리를 16화로 줄이고, 그 안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주인공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이러한 돈을 통해 한국이라는 거대한 구조와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등의 이야기를 모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재벌물에 내재된 비평적 구조가 사라졌으니 이 모든 걸 드라마에서 매듭짓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리하여 윤현우로 돌아가는 ‘회귀’라는 웹소설 문법을 부정하는 방식의 엔딩을 택했으리라. 웹소설의 방대한 분량과 특별한 문법은 비단 〈재벌집 막내아들〉 뿐만 아니라 향후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제작사가 골몰할 문제기도 하다. 그러나 수많은 논란과 아쉬움에도 〈재벌집 막내아들〉의 화제성과 힘은 2022년 모든 드라마를 압도했다. 올해는 웹소설에서 또 다른 장르를 구축하는 연예계물, 아이돌물 장르의 〈성스러운 아이돌〉을 비롯해 수많은 웹소설 원작 드라마가 우리를 찾아올 예정이다. 웹소설에서 구현된 판타지적 현상들을 단순한 대리만족의 욕망으로 바라보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대에 웹소설이 이토록 사랑받는 데는, 그래서 드라마화까지 하게 된 데는 대리만족 이상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