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원인물질 찍는 최고 해상도 MRI, 내달 세계 첫 전임상시험”

민태원 2023. 2. 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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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테슬라급 MRI’ 개발 이끄는 가천뇌과학硏 정준영 교수 인터뷰
가천대 길병원이 인천 송도 가천브레인밸리에 설치한 세계 최고 해상도의 11.74T MRI 장비 및 통합시스템. 다음 달 원숭이 뇌를 촬영하는 전임상시험을 시작한다. 가천뇌과학연구원 제공

뇌질환 등 조기진단 획기적 전환점
‘제임스웹’에 비견되는 최첨단 기술
한·미·프랑스, 치열한 개발 경쟁

‘의료용 제임스웹’으로 불리는 11.7테슬라(T)급 MRI(핵자기공명영상장치) 개발을 향한 한국과 미국, 프랑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의 가천대 길병원은 그 중에서도 최고 해상도의 뇌전용 11.74T MRI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길병원은 정부 지원을 받아 8년여간 연구해 온 11.74T MRI 장비와 통합 시스템을 최근 설치 완료하고 다음 달부터 세계 처음으로 전임상시험(영장류실험)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극초고해상도의 뇌영상을 얻는 데 성공하면 인류의 숙원인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파킨슨병, 허혈성뇌졸중, 다발성경화증 등 신경퇴행성 뇌질환의 조기 진단 및 치료에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가천뇌과학연구원 정준영(뇌과학 교수) 기획조정실장에게 최근 11.74T MRI 개발의 의의와 전망을 들어봤다.

정준영 가천뇌과학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왜 11.74T MRI인가.

“MRI는 자기장을 이용한 신체 신호 전달을 통해 해당 부위 영상을 얻는 장비로, CT나 X선처럼 방사선 노출이 없다. MRI 영상의 화질은 자기장 세기와 비례하는데, 현재 병원 등에서 사용되는 것은 1.5T, 3.0T, 7.0T급이다. 1980년 0.15T 수준의 낮은 자장 MRI가 처음 상용화된 이후 자장 세기가 점점 높아졌다. 11.7T급은 그간의 기술력을 훨씬 뛰어넘는 극초고자기장 MRI다.”

-의료용 제임스웹으로 불리는 이유는.

“국내에 연구 목적으로만 3대 보급돼 있는 7.0T MRI는 ‘허블 망원경’에 비유된다. 이 망원경이 우주에서 1광년(9조4600억㎞) 떨어진 곳을 촬영할 때 100%, 2광년에서 75%, 3광년에서 50% 해상도(분해능)의 영상을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제임스웹 망원경은 5광년을 100%, 7.5광년을 75%, 10광년을 50% 해상도로 보여준다. 허블의 경우 5광년 거리에서는 아주 흐릿한 영상으로 초점이 맞는 곳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세우거나 판독 불가라고 하겠지만, 제임스웹은 ‘무엇이 있다’고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11.74T를 제임스웹에 비견하는 이유다.”

-뇌를 어느 정도까지 볼 수 있나.

“1.5~7.0T MRI는 사람 뇌 영상을 얻을 수 있지만 11.7T에 비하면 아주 깊은 영역까지 확인할 수 없다. 자기장 세기가 높을수록 인체의 전달 신호가 더 강하기 때문에 그 만큼 더 정밀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3T MRI는 1㎜, 7T는 0.5㎜ 정도 해상도를 기대한다. 11.74T MRI는 5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크기의 ‘베타 아밀로이드’ 등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원인물질들을 영상으로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다. 1.5T, 3.0T MRI에서는 매우 작은 병변에 대해서는 ‘있을 수도 있다’고 파악하거나 영상 판독자의 경험에 좌우된다. 7.0T MRI는 뇌질환 병변 판단의 정확도를 큰 폭으로 끌어올렸지만, 알츠하이머나 파킨슨의 병변을 조기에 찾아내기는 어려움이 있다. 11.74T MRI는 7.0T 보다 100배, 3.0T 보다는 1만배 해상도가 높다. 베타 아밀로이드가 뇌 안쪽 깊숙한 부위 해마(기억력 관장)에서 시작해 전두엽(판단 담당)까지 어떻게 쌓여서 뇌세포를 죽이고 치매를 일으키는지 시계열적 진행과정을 영상으로 확인 가능하다.”

-프랑스·미국 개발과 차이점은.

“미국은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해 11~11.7T, 프랑스 국립연구소 뉴로스핀은 11.72T MRI를 개발 중이다. 자기장 세기로 보면 한국의 길병원이 가장 높다. 프랑스는 지난해 핵심 부품인 ‘초전도 마그넷(자기장 발생 장치)’ 등 시스템 설치를 끝냈고 미국은 올해 설치를 시작하는데, 한국과 비슷할 걸로 예상된다. 프랑스는 몸 전체 촬영용이고 한국·미국은 뇌전용이다. 한국의 경우 뇌의 해부·기능적 영상에 대사적 영상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장비보다 진일보했다.

또 하나, 한국은 세계 최초의 ‘동시 다채널-다핵종 11.74T MRI’라는 게 특별하다. MRI 시스템에서 인체 신호를 얻기 위해 여러 채널을 각각 촬영하지 않고 동시에 이미지를 얻는다는 의미다. 아울러 몸의 80% 이상 차지하는 수소 원자뿐 아니라 여러 핵종(인 나트륨 코타슘 칼륨 등)의 자기 공명 신호를 통해 이미지를 얻는 방식이다. 다채널-다핵종 촬영의 경우 1회 촬영으로 2가지 핵종 영상, 고퀄리티의 다양한 병변 영상 획득 등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재촬영에 의한 비용 상승, 환자 불편을 덜 수 있다.”

-향후 전임상시험 계획은.

“3월부터 8월까지 마카크 원숭이의 뇌영상을 얻기 위한 실험을 준비 중이다. 앞서 미국도 동물실험을 시행했지만 원하는 영상을 얻지 못했고 프랑스는 동물이 아닌 식물(호박)의 영상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길병원이 성공하면 인류가 풀지 못한 뇌의 비밀을 푸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 해당 장비와 데이터를 국내외 연구자에게 제공해 한국이 전세계 뇌영상의 허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람 대상 적용 전망은.

“현재 사람 대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MRI 최고 자기장은 7.0T다. 7.0T MRI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머리 팔·다리 등 인체 일부분만 임상 사용을 허가했다. 11.7T의 경우 아직 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앞으로 보다 많은 전임상시험이 필요하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국내 기관에선 임상시험 승인 기준 등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11.7T 개발에 나선 어느 국가도 임상시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황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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