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아세안 수출까지 급감했다…중국 이어 무역한파 확산
혹독한 수출 한파가 반도체·중국을 넘어 다른 분야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중국 뒤에서 버텨주던 '2위 수출시장' 아세안(ASEAN)마저 흔들리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대(對) 아세안 수출이 4개월째 역성장을 이어가면서 올해 수출 전반에 경고등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흥 시장으로 꼽히는 아세안은 꾸준한 성장 속에 국내 수출·무역수지의 새로운 버팀목이 됐다. 지난해 대 아세안 수출액은 1249억2000만 달러로 2021년(1088억3000만 달러)을 넘어 최대 기록을 세웠다. 연간 무역흑자도 423억8000만 달러로 미국(280억4000만 달러) 등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흑자 시장으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중동·일본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무역적자를 메웠다. 지난달까지 수출 감소 여파로 한국에 흑자 대신 적자를 안겨준 '최대 시장' 중국을 대신한 셈이다.
하지만 아세안도 지난 연말부터 이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월(-5.7%)부터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세로 전환되더니, 올 1월 들어 -19.8%로 감소 폭이 커졌다. 4개월 연속 수출이 줄어든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3~8월 이후 2년여 만이다. 수출이 줄어드니 무역수지도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7월까지 월 40억 달러대를 유지했던 대 아세안 무역흑자는 지난해 12월 25억7000만 달러에 이어 지난달 11억3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아세안 수출 감소 속에 수출 통계 전반도 함께 하향세를 그렸다. 국내 수출은 지난해 10월 이후 넉 달째 '마이너스'를 찍고 있고, 지난달엔 최대 감소 폭(-16.6%)을 나타냈다. 무역수지는 11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이다.
최근 나타난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대 아세안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베트남이 흔들리는 것이다. 베트남의 대세계 수출 증감률은 지난해 9월 12.4%에서 12월 -16.1%로 급락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미국·유럽연합(EU) 같은 주요 시장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중간재 수출에 의존하는 국내 기업들도 '유탄'을 맞았다. 반도체 가격 하락에다 현지 생산공장의 최종재 수출 물량까지 줄면서다. 실제로 1월 한국의 대베트남 수출은 1년 전보다 28.5% 줄면서 아세안 전체보다 감소 폭이 훨씬 컸다. 지난달(1~25일 기준) 아세안으로 향한 중간재 수출도 1년 전보다 크게 줄었다. 품목별로 반도체는 32.3%, 디스플레이는 21.1% 각각 감소했다.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한 아세안 시장은 잠재력이 큰 만큼,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성장세를 회복할 거란 전망이 많다. 다만 내수보다 '제조 기지' 역할이 큰 이곳으로의 수출은 글로벌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향후 중국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주요국 금리 인상 같은 변수가 많다. 메모리 등 반도체 경기의 향방도 중요하다. 정부는 아세안 수출 품목·국가의 다변화 등을 노리고 있지만, 대외적 악재가 터지면 단기간 내 수출 회복이 쉽지 않다.
신윤성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세안 지역은 환율·물가 여파로 내수 수요가 침체한 데다, 글로벌 경기가 다 안 좋다 보니 수출도 많이 줄었다"면서 "우리로선 올 상반기까지 대 아세안 수출이 어려울 것이고,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야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연초부터 무역 기상도엔 먹구름이 잔뜩 꼈다. 1월 무역적자(126억9000만 달러)는 역대 월간 최대를 찍었고, 1년 전보다 반토막 난 반도체 수출의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수출과 무역수지를 견인해오던 아세안까지 앞으로 흔들리면 정부의 '수출 플러스' 목표 달성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곽성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전략실장은 "아세안은 한국에 남은 마지막 수출 보루와 같다. 아세안으로의 중간재 수출이 정체되고, 베트남 등에서 중국산 수입 비중이 늘어나는 게 가장 우려되는 지점"이라면서 "정부는 아세안 전체를 묶는 공급망과 투자 환경 마련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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