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필드 고양의 이 조각물, 무엇처럼 보이나요? [서울을 그리는 어반스케쳐]

오창환 입력 2023. 2. 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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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의 감정과 시선에 따라 다양하게 읽히는 심재현 조각가의 작품

[오창환 기자]

 심재현 작가의 'Peak-21'. 멋진 작품인데 눈에 잘 띄지 않는곳에 있어 대부분의 스케쳐들이 조형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오창환
 
어반스케쳐스 챕터들은 매월 정기 모임을 하는데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장소 정하기가 쉽지 않다. 카페에서 하면 편하기는 한데 그릴 대상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능하면 넓고 그릴 것이 많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넓은 곳에 가면 그릴 대상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렵사리 찾아서 그리는 것도 어반스케치의 매력이다. 어반스케쳐스 고양 2월 모임은 스타필드 고양에서 하기로 했다.

스타필드는 워낙 커서 거리 전체를 건물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도로처럼 반려견을 동반하고 산책할 수 있다. 물론 반려견을 숍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안 된다. 

나는 일찌감치 가서 건물 오른쪽 끝에 있는 조형물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 조형물은 심재현 작가의 작품 'Peak-21'이라는 작품인데 겹겹이 쌓여 있는 산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심재현 선생님은 1938년생으로 원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가 뒤늦게 미술을 공부하여 1967년 홍익대 조각과를 졸업하고 1971년 미국으로 이민 가서 L.A에서 오랫동안 갤러리를 경영하셨다. 1996년 다시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귀국하였다.

다음 해인 1997년, 당시 한국 조각사상 최대 조형물이었던 '광주 5.18 기념조각공원' 조형물 공모에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1등으로 선정되며 작가로서의 전기를 맞게 된다. 그 후 선생님은 건축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 되셔서 수많은 환경조각을 만드셨다.

한국에너지관리공단, 한국전력공사, 정보통신부 중앙우체국, 동아생명, 한화,동부금융센터, 남양주현대프리미엄아울렛 등 거리 곳곳에 선생님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기념비적인 교회 조각도 많이 만드셨다.

심 선생님 작품 초기에는 미니멀한 작품을 많이 하셨는데 점점 더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조각을 하시는 것 보면, 작가님의 작품 세계는 나이들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

나는 심재현 작가님과 개인적인 안면도 있는데, 오래전에 한국 조각가 십여 명이 독일 뒤셀도르프 의 플란-디(Plan-D)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를 한 적이 있다. 전시 제목이 'Bagage Limit'(여행가방만큼)이었는데, 작가가 조각 작품을 여행가방에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어 독일로 가져가서 직접 설치한다는 개념이다.

여행 가방에 가지고 가니까 모든 조각이 작다고 생각되지만, 작가들은 저마다 제한(Limit)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여행 가방에서 꺼낸 작품에 공기를 넣어 풍선처럼 부풀려서 거대하게 만든 작품도 있었고, 가방에서 꺼낸 파이프를 연결해서 크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 심재현 선생님은 그때 스테인리스로 된 원통 작품을 갖고 오셨다.
 
 왼쪽이 뒤셀도르프 '플란-디' 갤러리에 남긴 드로잉. 이렇게 단순한 드로잉에도 서명을 해달라고 해서 놀랬다. 오른 쪽은 'Peak-21'.
ⓒ 오창환
 
나는 작가로 간 것은 아니고 옵서버로 따라가서 전시도 보고 관광도 했다. 그때 손바닥 만한 스케치북에 갤러리를 그린게 있어서 갤러리 관계자에게 선물로 드렸다. 어설픈 그림이었는데도, 갤러리 관계자가 그걸 받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그림 뒷면에 그림을 갤러리에 기증하겠다는 내용을 쓰고 서명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모를 소유권 분쟁에 대한 대비책인 것 같은데 독일적 사고방식을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나중에 관계자 책상 위에 잘 붙여두었다는 소식까지 전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스케치가 너무 허접해서,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가서 갤러리 전경을 그려드리고 싶다.

아직 밖은 춥다. 게다가 건물 그림자가 점점 내쪽으로 와서 햇볕 쪽으로 계속 자리를 옮겨가면서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분이 다가와 물었다.

"그림 잘 그리시네요. 그런데 이게 뭐를 조각한 거죠?"
"이거 겹겹이 있는 산을 표현한 거 아닐까요?"
"그래요? 제가 알기로는 정용진 회장님이 개를 좋아하셔가지고 개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던데요?" 

이 조각을 개라고 보는 관점이 흥미로워 다른 스케쳐들에게 물어보니 하트 모양이라고도 하고 불꽃, 거미, 꽃게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물론 다 그럴듯한 해석이고 다 맞는 이야기다. 실제 조각품 옆에 작품 설명문 일부에도 작가의 이런 의도가 드러나 있다. 
 
작품은 일견 주변과의 서사적 관계를 배제하는 미니멀리즘적인 특성을 보이지만, 형태 자체가 자립하지 않고 주변과의 연계 속에서 어떤 관계의 상황을 연출한다. 예를 들어 본 작품은 관람객의 감정과 시선에 따라 완만한 산, 혹은 구름, 또는 사람의 형상으로 다양하게 읽힌다. 

조형물 그림을 마무리하고 실내를 그리러 건물로 들어갔다. 오후가 되면서 실내는 사람이 너무 많고 혼잡하여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혼잡한 상황에서 하는 스케치도 재미있다.

이런 곳은 혼자 오면 힘들지만 다른 스케쳐들과 어울려서 오면 큰 어려움 없이 그리게 된다. 유럽의 축제나 일본의 마쯔리도 현장에도 가서 그리고 싶은데, 그런 곳은 아마 더 그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미리 연습을 해두어야 한다.

하지만 오후에는 고양시의회 잡지 기자님이 인터뷰를 하러 오셔서 얘기하다 보니 스케치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스타필드 실내 그림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다음달 정기 모임은 봄기운이 살짝 올라오는 날씨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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