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수업의 목적이 '아무도 상처받지 않기'였던 까닭
'대안'이라는 표현 하에 경쟁과 입시몰입교육을 지양하고, 자치와 상생을 위한 교육을 하며, 학생들이 현재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곳에서 여러 존재들과 좌충우돌하며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안사을 기자]
대장정을 마쳤다. 2022학년도 창작뮤지컬 이야기다. 지난 두 편의 기사를 통해 제작의 의도와 과정 등을 간단하게 작성했다. 제주 4.3사건이라는 무거우면서도 민감한 주제를 선택한 과정,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어울릴 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던 것들, 악곡과 역사 속에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있었던 훈훈한 장면들 말이다.
작품을 만들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압박감을 느꼈다. 업무와 수업을 병행하면서 12곡의 가사와 멜로디, 연주에 쓰일 반주까지 모두 만들어야 했던 시간적 압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입에 올리기조차 어려운 참혹한 일들을 상징과 은유를 담은 가사와 음악으로 만드는 심적 부담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 오프닝 넘버를 열연하고 있는 아이들 가장 큰 악곡인 오프닝넘버, '사건, 사람, 소망'을 아이들이 연기하고 있다. |
ⓒ 안사을 |
이번 뿐 아니라 수업을 준비하면서 언제나 걱정하는 것은 아이들이 혹시라도 받게 될 상처였다. 교사의 의도가 교육적이라 하더라도 정작 학생들은 수업 및 상호작용 속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학습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혹은 교사가 주의 깊게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았을 때 일어나기도 하는 이것을, 교육학에서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 3번째 악곡, '두려워' 작은 마을에 사는 당시 청소년들이, 이유 없이 군경에게 잡혀가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고서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일상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
ⓒ 안사을 |
음악을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이유가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쉽게 표현하자면, 음악은 아름답고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이 큰 골자가 될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음악 수업을 하는데, 정작 학생은 다수의 앞에서 노래 부르는 것이 둘도 없는 공포였다면?
그 순간뿐 아니라 길고 긴 시간 동안 은연중에 그 학생의 마음속에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게 되는 부정적인 것들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잠재적 교육과정이다. 혹자는 너무 민감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본인은 십수 년의 교직 생활 동안 최소한의 동의 없이 다수의 앞에서 원치 않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을 일종의 작은 폭력으로 간주하고 살아왔다.
이러한 나에게 뮤지컬 수업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전혀 새로운 과제였다. 수업 시간에 노래와 춤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제시와 상처가 되지 않도록 부단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염려했던 또 한편의 상처는 제주 4·3사건의 유족 및 본 사건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모든 분의 상처였다. 뮤지컬은 장르 특성상 매우 밝고 활기차다. 심지어 약간은 어둡고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에서도 한약에 감초를 넣듯 코믹한 장면을 넣기도 한다.
직접 만드는 뮤지컬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은 충분히 조정이 가능했다. 4.3사건을 직접 연기하는 부분은 매우 무겁고 심각하게 제작하였고, 현재 시점으로 배경을 바꾼 후에 비로소 밝고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었다. 그 의도와 결과에 대해 아이들도 충분히 만족했다.
가장 조심스러웠던 것은 우리의 서툶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의도치 않은 웃음이었다. 가령 2021년도의 창작뮤지컬은 학교에서의 소소한 장면을 담았는데, 학생 하나가 대사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관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고, 두고두고 보고 싶은 명장면이 탄생했다.
▲ 공연 전 설명 중 주의사항 및 작품의 의의 등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
ⓒ 안사을 |
"우리는 오늘,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갑니다. 1947년, 이때 핸드폰이 있었을까요? 없었겠죠. 자, 핸드폰을 다 꺼주시고요... (중략) 오늘 보실 뮤지컬은 총 12곡으로 이루어진 창작뮤지컬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극의 내용이 말이 아닌 음악과 가사로 대부분 연결됩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커다란 뮤지컬의 정석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는 극은 매우 심각한 역사적 사실이고,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많이 서툴다 보니 대사를 하다가 자칫 실수하거나 NG가 날 때 웃음이 터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아직도 살아계신 유족분들과, 제주의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분들께 누를 끼칠 것 같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도 이러한 우리의 의도를 미리 아시고, 혹시나 작은 실수가 있을 때 다른 뮤지컬에서는 함께 웃고 즐기면 되지만, 이번 뮤지컬에서는 엄숙한 마음으로 조금 기다려주시기를 부탁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간곡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하늘이라도 감격한 것인지 뮤지컬은 한 번의 끊김도 없이 완벽하게 의도한 흐름대로 진행되었다. 악곡의 길이만 총 55분, 최소한의 줄거리와 배경을 담은 낭독과 무대의 전환까지 포함하여 1시간 20분가량의 뮤지컬이 40여 명의 학생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초연된 순간이었다.
▲ '사건, 사람, 소망' 관덕정 앞에서 일어났던 3.1절 발포 사건에 대한 장면을 노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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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보여준 아이들의 모습 또한 대단했다. 말이 1년이지 완성된 곡을 가지고 연습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촉박했을 터였다. 아이들은 직접 자신이 입을 의상을 만들었고, 곡이 다 나온 후에야 직접 안무를 만들어야 했던 반도 있었다. 모든 곡이 완벽하게 나온 것은 12월 초였으니 나와 아이들의 바쁜 마음이야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 악곡 '문도깨비에게 가자'의 한 장면 이번 뮤지컬에서는 의인으로 평가받는 경찰 '문형순'의 이야기도 다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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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번째 악곡인 '수업시간' 장면 현재의 학교로 시점이 바뀌면서 역사를 배우는 것에 대해 역설하는 노래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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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결말은 현재로 돌아와 학교 수업 시간에서부터 이야기가 다시 시작된다. 수업 시간에 역사를 배우는 의미에 대해 악곡과 안무를 통해 전달한다. 1절과 2절 사이 익살스러운 음악 직후에 나오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외치는 학생의 연기는 모두의 흐뭇한 폭소를 자아내었다.
그리고 학생 한 명이 '선생님, 저는 4.3이 생각나요'라는 가사를 노래하며 사뭇 엄숙해지고, 아래의 가사를 함께 노래하며 전체 출연자가 모두 나와 마지막 합창을 장식한다. 위로와 함께 평화를 기리는 내용이다.
평화롭길 바래요. 한 번도 침략당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아가길 바래요. 한 번도 아픈 일이 없었던 것처럼.
없지 않았죠. 명백한 사실이죠.
우리가 기억할 게요. 우리가 아파할 게요.
제주여 평화로우라. 제주여 평화로우라!
▲ 2022학년도 창작뮤지컬 [43의 언덕 너머에는] 수록곡 #11 4.3이 생각나요. #12 제주여 평화로우라. ⓒ 안사을 |
▲ 커튼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던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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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큰 학교와 달리 한 반에 15명 이내, 2학년 전체가 40여 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마음을 써도 금세 세밀한 기록이 완성된다. 더구나 뮤지컬 교과는 1년 동안 우여곡절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록을 덜어내는 것이 일인 학생도 있었다.
본인은 이 서술형 평가를 일종의 '편지'라고 생각하고 작성한다. 1년 동안 함께 호흡한 아이들에게 교사가 가장 긍정적인 시각으로 남기는 편지인 것이다. 게다가 공식적인 기록이 되니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편지글인 셈이다. 이런 마음으로 평가를 해나가다 보면 전혀 어렵지 않고 가끔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 서술식 평가 예시 한 학생의 활동 내용을 서술형으로 평가한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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