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적정 기술
기술의 진보가 불편할 때가 있다. 일자리 감소 우려와 같은 거시적인 고민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했던 발전은 무선 이어폰이다.
나의 ‘결함’이 원인이긴 하다. 자타 공인 ‘호갱님’답게 줄 서서 에어팟 프로2(당시 거의 30만원)를 살 때만 해도 “인류가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감격스러웠다. 문제는 내 왼쪽 외이도. 희한하게 그 어떤 에어팟 팁(이어폰에 씌우는 고무 캡, 3종류가 제공됐다)과도 맞질 않는다. 이걸 끼고 유선의 한계를 넘어 날아다녀야 하는데, 현실은 빨리 걷기만 해도 빠져 보도블록 위를 데굴데굴 구른다. 광고에서처럼 멋지게 활용하려면, 왼쪽 귀 성형이 필요하다.
폰에서 스테레오 단자가 사라져 이젠 유선 이어폰으로 회귀도 어렵다. 애플의 끝없는 가격 인상에 정이 떨어진 지난해 말, 갤럭시로 돌아서면서 장만한 버즈2프로(쿠폰을 총동원해 20만원대)도 비슷하게 불편하다. 왼쪽이 잘 빠지는 것에 더해, 미세한 동작으로도 연결이 자주 중단된다.
무선 이어폰이 적어도 내겐 불필요한 진보였다는 말을 길게 했다. 내겐 과다한 기술이었지만, 제조사엔 매출 증대를 안겨준 따뜻한 기술이다. 과학의 발전은 어쨌든 밝은 미래와 연결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하지만, 나와 무관하거나 불필요하거나 때로는 피해를 줄 수 있다.
빅테크 기업의 알고리즘 고도화가 귀신같이 사용자 마음을 잡아내 소비를 촉진하는 것 외에 인류의 삶에 어떤 구체적 기여를 할지, 챗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 돌풍이 누구 좋은 일을 할지 따지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은 경이로운 도전이지만, 빌 게이츠의 눈에는 ‘돈 낭비’인 것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이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는 언젠가 극복될 수 있다’는 기술의 약속, 그 의미를 탐구한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웨어러블 로봇을 입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사이보그는 기술을 통한 장애의 종식을 약속한다. 현실에선 ‘계단 오르는 휠체어’가 개발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보급되지 않는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지하철역 경사로 설치조차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 인류에게도 적정 기술이 무엇인지, 그 고민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전영선 K엔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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