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느냐 떠나느냐, KBO 외국인 사령탑 ‘배수의 진’

고봉준 2023. 2. 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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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외국인 사령탑과 함께 한 역사는 길지 않다. 보수적인 감독 선임 문화 속에서 20년 넘게 국내 지도자들에게만 지휘봉이 주어졌다. 간간이 외국인 코치가 얼굴을 비추기도 했지만, 감독 역할은 언감생심이었다.

서튼-수베로 감독 발자취

이러한 흐름을 바꾼 인물은 지난 2008년 KBO리그에 등장한 제리 로이스터(71·미국) 감독이다. 매년 최하위권으로 맴돌던 롯데 자이언츠 지휘봉을 잡고 3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자 야구계의 기류가 달라졌다. 로이스터 감독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성공 신화를 썼고,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8년에는 트레이 힐만(60·미국) 당시 SK 와이번스 감독이 외국인 사령탑 최초로 ‘한국시리즈(KS) 우승’ 이력을 추가했다.

현재 KBO리그에는 두 명의 외국인 사령탑이 활동 중이다. 각각 롯데와 한화 이글스를 지휘하는 래리 서튼(53·미국) 감독과 카를로스 수베로(51·베네수엘라) 감독이 그들이다. 지난 2년 간 기대 만큼의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한 데다, 계약 만료를 앞둬 ‘배수의 진’을 치고 올 시즌을 준비 중인 동병상련의 주인공들이다.

지난해 롯데와 한화는 모두 아쉬움 속에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했다. 롯데는 시즌 초반 상승세를 앞세워 4월에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뒷심 부족으로 8위로 내려앉았다. 한화 역시 경쟁력의 한계를 체감하며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6위 NC 다이노스와 7위 삼성 라이온즈, 9위 두산 베어스가 모두 ‘감독 교체’ 카드를 꺼내든 것과 달리, 롯데와 한화는 두 감독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스토브리그 기간 중엔 지갑을 활짝 열고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며 힘을 실어줬다. 롯데는 유강남(4년 80억 원)과 노진혁(4년 50억 원), 한현희(3+1년 40억 원)를 품에 안았다. 한화는 채은성(6년 90억 원)과 이태양(4년 25억 원), 오선진(1+1년 4억 원)을 데려와 주요 포지션을 보강했다.

서튼

모기업의 통 큰 투자는 두 감독에겐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전력을 보강한 건 분명 플러스 요인이지만, 쓴 돈에 비례해 현장 지도자의 책임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올 시즌이면 계약 기간이 끝나는 서튼 감독과 수베로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구단의 눈높이를 채우지 못하면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다.

두 사령탑은 KBO리그에서 만났지만, 그간의 행보는 서로 달랐다. 외야수 출신의 서튼 감독은 현역 시절 메이저리그 무대를 경험했다. 지난 1992년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지명을 받았고, 5년 만인 1997년 빅 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지난 2004년까지 25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36 12홈런 78타점 63득점을 기록했다. 이후 지난 2005년 KBO리그로 무대를 옮겨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35홈런 102타점을 기록하며 홈런왕과 타점왕,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수베로(사진 오른쪽)

반면 선수 시절의 수베로는 또렷한 발자취를 남기지 못 했다. 내야수 출신으로 지난 1990년 캔자스시티에 입단한 뒤 1995년까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유니폼을 벗었다. 외려 은퇴 이후 지도력을 발휘하며 ‘실력 있는 감독’으로 인정 받았다. 은퇴 이후 마이너리그 타격코치로만 활동한 서튼 감독과 달리, 수베로 감독은 지난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 루키팀 코치를 시작으로 여러 구단에서 수비 코치와 감독을 맡았다. 지난 2019년 프리미어12에선 조국 베네수엘라대표팀 사령탑에 오르기도 했다.

그간의 야구 인생에 이렇다 할 접점 없이 달려온 두 사령탑은 올 시즌 KBO리그 무대에서 비슷한 처지로 새로운 출발을 준비 중이다. 서튼 감독은 가을야구 진출, 수베로 감독은 하위권 탈출을 목표로 생존 싸움에 나선다. 남느냐 떠나느냐, 운명을 건 전력질주가 다가온다.

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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