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아시아인+비건인 나를 고용해줄 직장 찾기 [런던과 베를린, 비건 천국이라는 도시]
비건으로서 선택권을 넓히고자 런던을 거쳐 베를린에 이사 와 살고 있습니다. 10년간 채식을 하며 일상에서 겪는 고충들과 동시에 더욱 풍부해진 비거니즘 문화를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최미연 기자]
채식 도시락을 싸서 다니거나 외식 자리에서 자신만의 살길을 찾아 분투하는 비건 직장인인 지인들을 여럿 안다. 비건이라고 하면 채식주의, 음식에만 한정되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렇지만 비건, 비거니즘은 인간 외 다른 종의 생명을 차별하고 폭력을 가하는 일에 반대하는 총체적인 생활 방식을 일컫는다. 먹는 것을 가려내는 일만으로 이미 많은 피로를 불러일으키는데 그 외 또 어떤 것을 말하는 거지?라는 질문이 들 수 있다.
주변에 나 말고 비건인 사람이 없는 친구는 음료수(소프트 드링크, 주스)에까지 비건 마크가 붙어 있는 것을 보며 이런 데에도 동물성이라고 할 만한 게 들어가냐고 물었다. 많은 제품이 설탕을 정제하는 과정에서 탄화골분이라는 소의 뼈를 태운 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비건 인증 마크가 있으면 편리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성분표를 자세히 살펴야만 한다.
▲ 비거니즘 |
ⓒ 픽사베이 |
독일에 오고 첫 번째로 수습사원 출근을 했던 아시아마트 회사에서 비건 레시피 비디오를 제작할 기회가 있었다. 2주 수습 기간에 마트에서 자체적으로 생산, 판매하는 비건 제품들을 가지고 각종 한국식 요리들을 직접 조리하고 촬영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제품들에 한정해 할 수 있는 요리들을 해내야 했기 때문에 흡사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은 예능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분으로 매일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회사는 최종적으로 나를 고용하지 않았다. 독일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논비건 요리도 조리하며 촬영할 수 있는 사람을 찾겠다고 했다. 물론 결정하는데 여러 다른 이유들 또한 작용했을 터다. 언어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두 번째 이유는 머리로는 받아들일지언정 마음으론 어려웠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비건'이란 정체성이 '핸디캡(불리한 조건)'이 되어버리는 순간 같았기 때문이다.
런던에 거주할 당시엔 비건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보니 많은 비건 동료를 만남으로 안전한 삶의 울타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왜 비건인지 나라는 사람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무언가 증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도 됐다.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30년 평생을 서울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기에 1년 남짓 사이 두 국가와 도시를 이동해 터전을 갈고 닦는 건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다. 독일에 이사 온 지 6개월. 아시아인 여성이자 비건으로서 이 도시와 문화권에 스스로를 어디쯤 위치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진통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혹자는 지금 당장 월세가 필요하다면서 찬물, 더운물 가릴 때냐며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친다. 모두가 타협과 균형 안에서 매일을 살아낸다. 또 다른 울타리를 짓고자 몸과 마음을 바삐 움직이면서도 스스로 '대중성'이라는 감각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자꾸 돌아보기도 한다. 사람이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비건을 실천하면서 대안의 방식들을 제안하는 개인들이 자꾸 가시화되면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유럽 전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대기업, 중소기업들이 앞다투어 비건 제품들을 개발하고 출시 중이다.
대체육들은 육류를 소비하는 이들까지도 만족시킬 만큼의 모사하는 수준의 기술력에 도달해간다. 그래서 기왕이면 누구도 해치지 않아도 되는,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익과 권리를 추구하는 소비가 늘어났으면 한다.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이미 주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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