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나라 구한 나무, 귀한 대접 받고 있다
[성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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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안면정. |
ⓒ 성낙선 |
눈꽃이라면 모를까, 나무에 꽃이 피어 있는 걸 볼 수도 없다. 한창때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던 풀잎들마저 누렇게 시들어 맥을 못 춘다. 본래 식물들이 지니고 있던 생명의 온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헐벗은 나무와 시든 풀잎을 볼 때마다 온 세상이 녹음으로 가득했던 날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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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호랑가시나무와 열매. |
ⓒ 성낙선 |
안면도를 특히 안면도답게 만드는 것
겨울에도 겨울이 아닌 듯 살아가는 나무들을 찾아서, 안면도로 '상록수 여행'을 떠난다. 안면도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다. 해안선을 따라서 안면도 최대 해변인 '꽃지해변'을 비롯해, '백사장해변', '삼봉해변', '샛별해변', '운여해변', '바람아래해변' 등이 줄을 잇는다. 섬 서쪽 해안이 모두 모래사장이 깔린 해변이라고 보면 된다.
누구라도 태안반도에서 연륙교를 건너 안면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이 해변들 중 하나는 반드시 들러가게 되어 있다. 안면도로 들어선 이상, 어쩔 수 없다. 가는 곳마다 해변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들이 눈에 띈다. 그렇다 보니, 자칫 이들 해변이 안면도의 전부인 것처럼 비칠 때도 있다. 하지만 안면도가 어떤 섬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안면도를 여행하다 보면, 어느 길에서든 솔숲을 보게 된다. 웬 소나무들이 그렇게 많은지 안면도는 섬 전체가 솔밭처럼 보인다. 설사 해변을 여행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해변에서는 해송이 모래사장 위로 병풍처럼 둘러서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안면도를 안면도답게 만드는 건 이 솔숲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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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자연휴양림, 소나무숲 산책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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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판옥선이 왜선을 충파한 이유
안면도 소나무는 고려시대부터 특별한 관리를 받아 왔다고 한다. 안면도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재질이 우수한 데다, 안면도라는 지역이 또 바닷길을 이용해 목재를 운반하기 좋은 지리적 여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안면도 내 소나무 숲 73곳을 봉산으로 지정했다. 봉산은 국가의 허락 없이 나무를 베는 것을 금지하던 곳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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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자연휴양림, 빛이 잘 들지 않는 소나무숲 산책로. |
ⓒ 성낙선 |
일제시대에는 안면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소나무들이 전쟁 물자로 사용되는 등 온갖 수난을 겪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전쟁 물자가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송진을 연료로 써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소나무 밑동에 상처를 내 송진을 채취했다. 소나무 숲을 찾아다니다 보면, 아직도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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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자연휴양림 스카이워크. 소나무숲을 공중에서 가로지르며 바라다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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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 산책하기 좋은 소나무 숲
안면도에서 대표적인 소나무 숲으로 안면도자연휴양림을 꼽는다. 이곳의 소나무 숲이 매우 울창하고 아름답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상록수계의 지존이라고 할 수 있는 소나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소나무들이 키가 크고 곧다. 어떤 용도로 쓰이건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이런 소나무들이 모여, 숲 전체가 높고 넓게 형성이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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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자연휴양림 산책로와 이정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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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자연휴양림들과 마찬가지로 안면도자연휴양림에도 등산을 할 수 있는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런데 그 높이가 결코 높지 않다. 모시조개봉, 바지락봉 등 조개 이름이 붙은 봉우리들이 대다수인데 그 높이가 50여 미터에서 90여 미터 가량 된다. 가장 높은 탕건봉이 92.7미터다. 봉우리들이 괜히 이름만 귀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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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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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도드라지게 붉은 꽃과 열매들
여기서 상록수 여행을 끝내면 조금 허전하다. 휴양림에서 소나무 숲을 여행한 뒤, 걸어서 안면도수목원으로 이동한다. 휴양림과 수목원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수목원에서 휴양림 소나무 숲에서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상록수들을 만날 수 있다. 상록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목원 내 대부분의 구역이 여전히 푸른색을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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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애기동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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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애기동백나무는 11월에서 1월 사이에 꽃을 피운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동백나무보다 좀 더 빠르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꽃송이들이 피었다 졌는지 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린 붉은 꽃잎이 무수하다. 안면도수목원에서는 애기동백 말고도 호랑가시나무, 금테사철나무, 굴거리나무 등 다양한 상록수들을 볼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 가지 끝에 구슬 모양의 붉은 열매가 잔뜩 매달려 있다. 그 붉은색이 또 애기동백꽃만큼이나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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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팽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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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안면도수목원에 상록수만 있는 건 아니다. 가을에 잎이 떨어지는 낙엽활엽수들 중에 팽나무와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 상록수들 사이에서 팽나무와 배롱나무의 하얗고 매끈한 몸통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이곳 수목원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 중에 하나다. 안면도 팽나무를 제주도 팽나무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안면도 팽나무는 어딘가 모르게 곱게 자란 티가 난다.
안면도는 원래 육지였다. 태안반도에 다람쥐 꼬리처럼 붙어 있었지만, 1600년대 초 삼남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곡을 편리하게 운반할 목적으로 현재 드르니항이 위치한 자리에 운하를 파면서 섬이 되었다. 안면도에 처음 다리가 놓인 것은 1970년이다. 섬 아닌 섬에서 자란 팽나무가 바닷바람이 거칠기로 유명한 제주도에서 자란 팽나무와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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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면도수목원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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