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등원, 독불장군 등 비아냥 따라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김삼웅 입력 2023. 2. 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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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 37] 그는 1968년 11월 8일 등원을 결행했다. 신민당에서 날선 비판이 나왔다

[김삼웅 기자]

서민호는 장기화된 정국의 경색을 풀고자 8월 18일 두 번째 시국수습 방안을 제시하였으나 이번에도 수용되지 않았다. 여야 대치는 경화되고, 견제받지 않는 박정희 정권의 독주·독선은 날로 심화되었다.

그는 1968년 11월 8일 등원을 결행했다. 신민당에서 날선 비판이 나왔다. 배신자·사쿠라 등 험한 코멘트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그는 <나는 왜 국회에 등원하는가?>란 성명에서 "물가 앙등, 극심한 한발 등으로 국민의 경제생활이 총파탄에 직면한 이때에 공화·신민 양당을 제외한 제3의 다대수 국민의 막대한 피해를 나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고 명분을 댔다. 그의 '단독등원'은 그의 정치행로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독불장군이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의 한 신문과의 인터뷰 <등원의 변>이다.

6.8총선거가 끝난 후 월파는 5개월 동안 공화·신민 양당의 고위간부들과 접촉해가면서 정국수습을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혼자 등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여야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공화당의 고위간부들은 현 사태에 대한 책임감에서 초조하고 몇몇 신민당 의원들은 국회에 못 들어와서 초조하고… 말하자면 내가 그들에게 문호개방 역할을 한 셈이지."

- 서의원의 단독등원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물론이지. 지독하게 불신하고 현 정치풍토 하에서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 몰라. 그러나 오해는 시간이 흐르면 풀리는 법이야."

시가 5백만 원짜리 청진동 집이 2백40여 만 원(원금 1백 80만원)의 빚에 넘어가고 안국동 집을 팔아 전셋집(가회동)에 들어있는데 오해란 당치 많은 말이라고 웃어넘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얼마 전에는 그 측에서 금액을 미끼로 내세워 교섭을 해 왔던 3.4일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만 두 말 않고 깨끗이 돌려보냈지.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없지만…. 작은 정당이긴 하지만 당을 운영하려면 앞으로는 어떨지 나도 모르지"라고 조크를 던지고는 파안대소. 

○ 월파는 현 정국을 바로잡으려면 전 정치인들의 반성이 필요하지만 야당보다 여당이 더욱 양보하여 협상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설파했다.

"내 자랑이 아니라 내가 등원하고 난 후에 협상의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어. 아직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지만…."

월파 자신의 견해로는 "현단계에서 협상이 결렬되면 '야당부재' '정치부재' 상태가 온다는 것, 그렇게 되면 야당도 죽고 여당도 죽고 대외적으로 나라 체면도 말이 아닐거고…."

○ "날더러 '융통성 없는 석두'라고 말을 하더군. '정치 즉 타협'이라는 말을 모르는거 아니지만 앞으로는 정말 좀 융통성이 있어야겠어."

어떻게 보면 이번의 단독등원이 월파 자신의 정치적 관념에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지방사업도(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해야 하겠고, 또 하루 빨리 선거구에도 내려가 보고 싶지만 협상이 끝나는 것을 보지 않고는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 

○ 월파가 여야 간부들을 만나니 제3당의 출현이 꼭 필요한 점을 느꼈다고 한다. 

"언필칭 보수 양당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태가 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제3당이 꼭 필요하거든, 내가 등원한 것도 이 점을 대변하는 것이 그 이유의 하나지." 

월파는 계속한다.

"여하간 나는 나의 소신으로 등원했어. 하늘을 우러러봐도 땅을 굽어봐도 부끄러움 없이 잘 한 일이라고 믿고 있지." (주석 2)

등원한 그는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의를 통해 6.8부정선거의 실상과 박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힘을 가진 정부·여당이 야당의 제안을 폭넓게 수용하는 아량을 보이도록 거듭 촉구하였다. 

공화당은 단독국회나 다름없는 국회에서 <언론윤리위원회법>등 장기 집권을 기도하면서 필요한 각종 법률을 개폐하는 등 독주를 계속하였다. 그는 일당백의 자세로 <선거·정치자금 등에 관한 법률 결의안>, <향토예비군 설치법 개정법률안> 등을 제안하여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거대한 공화당의 일당독주를 제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주석
2> <전남일보>, 1967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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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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