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생존·경제 문제인데… “한국에 재생에너지가 없다”
한국의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도입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본다. 기업들에 재생에너지는 더 이상 환경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것은 물론 생존을 좌우하는 사안으로 확산한 지 오래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및 투자기관은 기업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어느 정도 노력하는지 평가할 때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을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투자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다국적 기업들은 협력사에 RE100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정도다.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해외 사업장에서 차츰 RE100을 달성하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 내 사업장이 걸림돌이다. 한국에선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재생에너지가 충분하지 않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전환’ ‘원전 확대’를 두고 고민하는 사이 국내와 국외 재생에너지 전환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기업 입장에서 RE100 참여는 생산비용 상승으로 직결한다. 다만, 살아남으려면 피할 수 없는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에 있는 고객사들이 RE100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RE100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수출 산업의 경쟁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DI국제정책대학원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한국 기업이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에 동참하지 않았을 때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0%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실제 코트라가 글로벌 제조기업 61곳의 RE100 추진 내용을 분석한 결과, 30곳은 기존의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규제성 조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단적인 사례로 BMW그룹은 삼성SDI에 ‘젠5’ 배터리를 제조할 때 친환경 전력만 사용하도록 계약상 의무를 부여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협력업체에 ‘2030년까지 에너지 절약 30% 달성’ 등의 환경 관련 의무사항을 적용한다. 기준에 못 미치면 구매 평가에서 불이익을 준다. 산업계 관계자는 “RE100이 이미 새로운 무역장벽이 됐다. 아직 가입하지 않은 기업도 앞으로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의 국내외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16.3%지만, 한국으로만 한정하면 2.7%(추정치)로 떨어진다. 재생에너지 전환율의 평균값을 한국 사업장이 다 깎아 먹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2020년 미국·유럽·중국 사업장의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했다. 중남미와 서남아 지역은 2025년이면 100%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의 경우 2020년 4.3%였던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지난해 71%까지 끌어 올렸다.
삼성전자의 해외와 국내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큰 차이를 보이는 배경에는 반도체 생산기지가 있다. 핵심 생산기지가 한국에 밀집해 있어 전력 사용량이 다른 해외 사업장보다 많은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재생에너지가 한국에 없다는 데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의 전력 사용량 상위 30개 기업에서 지난해 사용한 산업용 전력은 102.92TWh였다. 한국의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09TWh였으니, 이들 기업이 RE100을 달성하려면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업들이 RE100을 달성하고 싶어도 “재생에너지가 없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장에서 RE100 달성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건 그만큼 해외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재생에너지 효율도 잘 안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설문 대상 기업 중 96%는 재생에너지 조달 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조달에 있어 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고려사항은 ‘가격’인데, 너무 비싸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CoREi는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되는 데 있어 정부의 역할이 중요함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산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 RE100 이행에 따른 높은 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선 세제 지원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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