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 일으키는 전쟁…알프스 빙하 속 '비스무트'도 전쟁 흔적
유럽의 지붕 알프스 빙하에는 아직도 1930~40년대 스페인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남아있다.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대기오염 물질을 배출했고, 이것이 멀리 날아가 빙하에 차곡차곡 쌓인 것이다.
프랑스 그르노블 알프스 대학과 파리대학 등의 연구팀은 지난 2012년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 인근 콜뒤돔(Col du Dôme)에서 빙하를 시추했다.
연구팀이 여기서 채취한 얼음 코어(Core)를 1890~2000년 사이 110년을 연대별로 분석했다.
그 결과, 1930~40년대에 쌓인 부분에서 금속인 비스무트(Bi) 성분이 뚜렷이 높게 측정됐다.
2차 대전 때 무기 재료로 사용
비스무트 오염을 단순히 석탄 사용 증가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됐다.
연구팀은 "비스무트 수치가 높은 시기는 스페인 내전(1936~1939년)과 2차 세계대전(1939~1945년) 시기와 일치한다"며 "이 기간에 비스무트 배출량이 많았던 것은 무기 생산에 많이 사용됐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스무트는 용융점이 낮은 알루미늄 합금을 만드는 재료였고, 철강 제조 첨가제로 사용됐다.
항공 산업과 포탄, 차량 부품 등 군수품에 많이 사용되면서 대기오염을 유발했고, 결국 알프스 빙하에 쌓인 것으로 연구팀은 결론을 내렸다.
비스무트는 비교적 덜 해로운 금속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 결과로는 정자를 감소시켜 남성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지난달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 저널에 논문으로 발표됐다.
침몰 나치 군함은 오염 덩어리
1·2차 세계대전 동안 전 세계에서 난파한 선박에는 총 250만 ~ 2040만 톤의 석유 제품이 실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침몰한 선박에 실려 있는 탄약도 160만 톤에 이른다.
유럽 북쪽에 위치한 북해(North Sea) 밑바닥에만 해도 수많은 선박과 항공기 잔해, 포탄·폭탄 등이 가라앉아 있다.
지난해 10월 벨기에 겐트대학 연구팀은 2차 대전 때 북해에서 침몰한 나치 군함에서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폭약과 중금속 등의 오염 물질을 배출되면서 주변 해양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나치 군함 'V-1302 욘 만' 호의 침몰해역 주변을 조사한 결과를 담은 논문을 '해양과학 프런티어스(Frontiers in Marine Science)'에 발표했다.
선체 길이 48m, 292톤의 욘 만 호는 원래 트롤 어선이었지만 나치에 징발돼 순찰선으로 활용되다 1942년 2월 12일 벨기에 연안에서 영국 공군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좌현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수심 21~35m에 비스듬히 가라앉았다.
연구팀의 현장 조사 결과, 선체에서 가까울수록 니켈·구리 같은 중금속과 유해 화학물질인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PAH)'가 높게 검출됐다. 갈수록 선체가 부식되면서 선박 내에 저장됐던 오염물질이 계속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연구팀은 "우리가 기억조차 못 하는 침몰선에서 오염물질이 흘러나오면서 해양 생물에 상당한 충격을 줬고, 지금도 계속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때 지뢰 아직도 남아
원폭으로 인해 20만 명 이상이 곧바로 사망했고, 핵방사선의 후유증으로 이후 몇 년 동안에도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1950~53년 한국 전쟁의 경우 비무장지대(DMZ)를 중심으로 남아 있는 지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뢰는 전쟁 후에도 계속 사용됐고, 이로 인해 전국에 여전히 많은 지뢰가 묻혀 있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지뢰 사고로 피해를 본 민간인만 1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합동참모본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통제보호구역인 비무장지대(DMZ)와 민간인 출입 통제선(민통선) 이북에는 각각 38만 발과 38만9000발 등 1219개 지역에 76만9천발의 지뢰가 매설됐다.
민통선 이남 제한 보호구역 22개 지역에 매설된 지뢰도 5만 발에 달했고, 후방에도 전국 37개 방공기지 주변과 서북도서 30개 지역에 각각 3000발, 6000발의 지뢰가 묻혀 있다.
1998년 시작된 국방부의 지뢰 제거 작업으로 다소 줄었는데, 아직도 후방 35곳에 약 3000발이 매설돼 있다(2021년 6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실태조사 결과).
미군 고엽제 심각한 후유증 남겨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게릴라전을 펼치던 베트콩의 근거지인 밀림을 파괴하기 위해 비행기에서 고엽제(枯葉劑, defoliant)를 뿌렸다. 200만 갤런, 7500㎥가 넘는 양이다.
식물이 말라죽도록 만드는 고엽제의 주성분은 2,4,5-T와 2,4-D 같은 제초제였지만, 발암물질이자 맹독성 물질인 다이옥신이 불순물로 들어있었다.
다이옥신으로 인해 베트남 지역에서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기형아 출산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장애를 겪거나 건강을 잃은 베트남 사람이 100만~300만 명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또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과 그 자녀들도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베트남 전쟁 직후인 1976년 미국은 다른 47개국과 함께 환경 조작 기술의 군사적 또는 기타 적대적 사용 금지에 관한 협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전쟁 무기로 사용하기 위한 자연환경의 개조'와 '자연환경에 유해한 전쟁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이다.
캄보디아는 30년 가까이 지속한 내전 기간에 매설된 지뢰 및 불발탄으로 인해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캄보디아 지뢰대응센터(CMAC)에 따르면 197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2만여 명이 숨졌고, 4만50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걸프전은 환경 파괴 전쟁
1991년 1월 패퇴하던 이라크군은 유정에 불을 지르는 등 오염을 일으켰다.
시커먼 연기가 솟아오르고, 사막 모랫바닥에 쏟아진 원유는 전 세계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유출된 기름은 48만㎥이었다.
2007년 12월 7일 서해 태안에서 벌어진 국내 최대 해양오염 사고 당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가 유출한 원유(1만2547㎥)의 40배 가까운 양이다.
걸프전에 참전한 병사들은 원인 불명의 각종 질병에 시달렸는데, 걸프전 증후군(걸프전 신드롬)이란 말도 생겼다.
만성 피로와 근육통·관절염·불면증·신경마비 등 증세도 다양했다.
또, 참전 군인의 2세 중에 선천성 기형이나 면역결핍 등을 갖고 태어나는 사례가 점차 많았다.
미국 재향군인회의 지원을 받아 의학연구소(IMO)가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70만 명에 달하는 전체 참전 미군 중에서 25만 명이 이런 증세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IMO는 불타는 유정에서 분출된 기름과 연기 외에도 피리도스티그민 브롬화물 알약(pyridostigmine bromide pills, 신경작용제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공됨), 열화우라늄 탄약(depleted uranium munitions), 탄저병과 보툴리눔 독소 백신 등 예방 접종이 걸프전 증후군의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열화우라늄 걸프전 신드롬 낳아
㎤당 19.1g에 이를 정도로 밀도가 높아서 탱크를 방어하기 위한 튼튼한 장갑 재료로 사용하기도 하고, 적의 탱크나 장갑차를 파괴하기 위한 탄알에도 사용한다.
국제 사회에서는 열화우라늄 무기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실제로 벨기에·코스타리카 두 나라는 열화우라늄 무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상원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쓰레기 소각장(burn pit)에서 발생한 유해 물질에 노출된 참전용사를 보상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약속'을 의미하는 'PACT'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해외에서 복무하면서 쓰레기 소각장의 독성 '물질에 노출된 참전용사와 가족 등 약 350만명에게 의료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에는 베트남 참전용사가 고혈압을 앓으면 고엽제에 노출된 것으로 간주해 보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생존 베트남 참전용사 160만 명 중 약 60만 명이 혜택을 입을 것으로 의회예산국(CBO)이 추산했다.
우크라이나, 환경 파괴 심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4월에 이미 폭격 등에 따른 폭발·화재 등으로 인해 중금속·유해물질·유독가스 등 오염물질이 우크라이나는 물론 인접 국가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으로 공장 시설 등이 피해를 보았고, 모아 놓았던 폐수가 강으로 흘러들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환경단체 '에코 액션'은 지난해 5월 수도 키이우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 그리고 동부 돈바스의 루한스크 등 격전지 부근에서 광범위한 오염 지역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환경부에 따르면 서부 도시 테르노필에서는 비료 저장고가 파괴된 뒤 인근 강물의 암모니아와 질산염 농도가 정상치보다 각각 163배, 50배 높게 검출됐다.
환경·보건 전문가들은 "한번 오염된 토양과 강을 정화하는 데 수년이 걸리고, 시민들은 암과 호흡기 질환 등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시 환경보호 원칙 채택했지만…
모두 27개의 조항을 담고 있는 이 원칙에는 ▶무력 충돌 시 중요한 환경 지역 지정 및 보호 ▶원주민의 영토와 환경 보호 ▶전쟁 후 잔재물 처리 등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보호는 조약·협약과 같은 구속력은 없다.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전쟁 당사자들이 환경보호 원칙을 잘 지키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시민의 건강과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도 평화가 필요한 이유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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