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 몸의 격돌 통했다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3. 2.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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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의 화제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달 24일에 공개된 직후 넷플릭스 세계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본 TV쇼 부문 7위에 올랐었는데 4회까지 공개된 지금은 4위까지 치솟았다. ‘피지컬: 100’은 MBC 등이 국내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드라마 쪽에선 OTT를 통한 한류 히트작들이 연이어 나왔었지만 예능은 상대적으로 약했었다. 이번에 모처럼 OTT 한류 예능프로그램이 터진 모양새다.


국내에서도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TV-OTT 통합 비드라마/쇼 부문 화제성 순위에서 공개 직후 1위에 올랐다. ‘피지컬: 100’이 비드라마/쇼 부문 전체 화제성의 6.1%를 점유했는데 이는 개별 프로그램 점유율로선 매우 높은 수치다. 그럴 정도로 이 프로그램이 공개되자마자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매우 놀라운 이유는 첫째, 이 프로그램이 신작이기 때문이다. 전편이 이미 유명한 시리즈물의 후속작은 공개되자마자 바로 주목 받을 수 있다. ‘피지컬: 100’은 아예 신작이라서 인지도를 높이려면 입소문이 퍼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되자마자 즉각 화제성이 폭발한 것에서 이 프로그램의 흡인력이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놀라운 이유 두 번째는 이 작품이 OTT로만 방영됐다는 점이다. 아무리 OTT 사용자가 많다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보편적 다수가 시청하는 매체는 TV다. 그래서 보통 TV 방영 프로그램들이 화제성 차트를 주도한다. 얼마 전까지 ‘미스터트롯2’가 화제성 순위 1위였다. 그런데 ‘피지컬: 100’은 TV 방영 없이 OTT로만 공개됐는데도 즉시 화제성 1위에 올랐다. 이것도 ‘피지컬: 100’의 위력이 매우 강하다는 걸 말해주는 지표다. 또 OTT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알려준 사건이이기도 하다.


이렇게 국내외에서 동시에 뜬 것은 원초적인 몸의 격돌을 다뤘기 때문이다. 강한 몸의 소유자 100명이 모여 그 중에서 최고의 몸을 가진 1명을 가린다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프로그램 초반 사전대결 때 수십 명이 일제히 매달렸다가 한 명씩 떨어지는 모습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뒤이어 벌어진 첫 번째 대결에선 웃통을 벗고 힘으로 공을 뺏는 1 대 1 대결이 펼쳐졌다. 복잡한 규칙이나 도구 없이 오직 힘으로 부딪히는 대결이었다.


이런 단순한 구도가 세계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유리하다. 말이 많고 설정이 복잡했다면 공개 즉시 국제적 호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 초반엔 경기 규칙 설명 외엔 거의 대사가 나오지 않았다. 경기 규칙도 대단히 단순해서 설명을 안 듣고 화면만 봐도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피지컬: 100’의 극한 생존경쟁이 ‘오징어 게임’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단순한 규칙의 대결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MBC 등이 만들었지만 기존 지상파 예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오징어 게임’처럼 어두운 설정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그런 어두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심지어 남녀의 구분도 없이 한 자리에서 막싸움을 벌인다는 설정이 정말 원초적 대결 같은 느낌을 줬다. 제도화된 운동경기 구조 속에선 남자와 여자의 격투 대결이 절대로 있을 수 없다. ‘피지컬: 100’은 초반 1 대 1 대결 때 성별의 구분마저 파괴하면서 정말 날것의 격돌 같은 느낌을 줬다.


각각의 대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가 속출했다. 강력하고 탄탄해 보이는 남녀의 몸은 그 자체로 아주 자극적인 소재였다. 이런 설정에서 예능 한류 히트작이 탄생한 것이다.


방송을 하는 지상파 방송사가 단순 제작만 하고 해외 OTT에 납품했다는 대목에서 현재 미디어 플랫폼 시장에 격변이 닥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플랫폼 격변의 시대에 우리 방송사들의 경쟁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 ‘피지컬: 100’처럼 자극적인 프로그램은 국내 방송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OTT니까 가능했다. 해외 OTT는 되고 우리 방송은 안 된다. OTT의 자극성에 길들여진 시청자에겐 국내 방송이 밋밋하게 느껴질 것이다. 국내 방송사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불공정의 해소가 숙제로 남았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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