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는 형사처벌 특례보다 설명의무와 입증책임 전환이 우선 [환자 샤우팅]

이영수 2023. 2. 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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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31일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는 중증․응급 분야와 저출산으로 기반이 위협받는 분만·소아진료 분야에 포커스를 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필수의료 지원대책」에는 “피해자 재판절차진술권, 타 직역과의 형평성, 국민 법 감정 등을 고려, 의료인 부담 완화 및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방안을 검토하고, 예시로 특례 필요성,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또는 특례법 제정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료사고 부담 완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1월 31일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살리는 중증․응급 분야와 저출산으로 기반이 위협받는 분만·소아진료 분야에 포커스를 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출처: 보건복지부 유튜브채널 복따리TV 캡처. 

환자단체는 그동안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대책(안) 공청회”뿐만 아니라 “이용자 중심 의료혁신 협의체”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도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관련 내용이 보건복지부의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포함되는 것에 반대했고, 포함 시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충분히 의견을 개진했다. 그런데도 “의료인 부담 완화”의 일환으로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이 「필수의료 지원대책」의 예시로 언급되었다.

의료사고 당한 환자와 유족이 겪는 현실과 울분  

의료사고 당한 환자와 유족은 의학적 전문성과 정보 비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료과실과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 모두 입증이 어렵고, 소송을 위해서는 고액의 비용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의료분쟁에 있어서 환자는 절대적 약자다. 그런데도 의사단체에서는 과실로 의료사고를 내어 환자가 상해 또는 사망하는 결과가 발생해도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정부와 국회에 지속해 요구해왔다.

의료인도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실수할 수밖에 없다. 의료인의 실수는 환자를 다치게 하거나 죽게 만들기도 한다. 의료사고를 낸 의료인을 모두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물론 아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의료사고를 내 의료인을 용서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이는 의료인만의 요구가 아니라 환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료사고의 현실은 냉혹하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인이 환자나 유족에게 이유와 경위를 설명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정당한 피해 보상을 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대책을 만들어 추진한다면 대다수 환자와 유족도 실수로 의료사고를 낸 의료인을 용서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의료인은 실수를 인정하기는커녕 온갖 방법으로 환자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환자와 유족은 분노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형사고소를 한다. 

민사소송의 결과는 어떤가? 1심만 수년이 걸린다. 긴 소송 기간, 고액의 소송비용과 패소 시 상대방 변호사비용 부담 그리고 입증의 어려움으로 상처만 깊어져 간다. 환자나 유족 입장에서는 승소해도 득(得)보다 실(失)이 더 크다. 형사고소를 해도 대부분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거나 기소되어 재판받아도 법원에서 무죄나 벌금형을 선고한다. 

소송비용을 낼 형편이 안 되어 소송을 하지 못하는 환자나 유족도 억울해서 그냥 있을 수 없다. 머리띠 두르고 영정사진 들고 친척·친구 다 모아서 병원 앞에서 집회하고 농성한다. 병원에서는 업무방해죄·명예훼손죄로 환자나 유족을 형사고소 한다. 그러면 유족은 언론·방송에 호소한다. 파렴치한 병원과 의료인을 비난하는 보도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보도되면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커진다. 

의료사고 형소고소 사건에서 대부분의 의료인은 불기소처분이나 무죄선고를 받지만 그러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엄청난 스트레스와 행정력에 시달린다. 형사고소한 사건이 불기소처분이나 무죄선고를 받으면 이것이 환자나 유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 불리하게 영향을 미쳐 패소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이것이 의료사고 관련한 우리나라 의료인과 환자·유족이 겪는 생생한 현실이다.

의사단체 반대로 국회에서 좌초된 의료사고 설명의무법과 입증책임 전환법

환자안전사고가 형사고소나 의료소송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환자·유족과 의료기관·의료인 간 소통 부재 때문이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의 장과 의료인이 환자안전사고의 내용 및 사고 경위 등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한 형사고소나 의료소송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의 전문성, 독점성, 정보의 비대칭성을 고려할 때 환자안전사고 발생 시 환자안전사고 ‘설명’을 의료기관의 장과 의료인의 ‘의무’로 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알권리’로 규정하는 환자안전법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관련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의사단체의 반대로 폐기되었다.

17대 국회에서 의료사고 발생 시 환자나 유족이 부담하는 과실 입증책임을 의료인이 부담하는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2007년 6월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보건복지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 출신 국회의원과 의사단체의 반대로 상임위원회 문턱을 끝내 넘지 못하고 결국 폐기되었다. 18대 국회에서 의료분쟁조정법 제정안이 새로 발의되어 2011년 4월 7일 제정 되었지만, 이번에도 의사단체의 반대로 입증책임 전환 규정은 빠졌다. 대신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설립과 이를 중심으로 한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의료사고감정단 구조로 의료분쟁 조정·중재를 담당하도록 했다. 

의료사고 설명의무법과 입증책임 전환법 도입 논의가 우선

의료사고 관련된 이러한 의료인과 환자·유족의 대립과 불신을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노력은 의료사고 형사고소를 최소화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의료사고 현장에는 의료인의 충분한 설명도, 사과나 애도의 표시도, 적정한 피해 보상도 거의 없거나 드문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있다. 의료적 전문성을 가지고 직접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의료과실이 없거나 의료사고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을 입법화하는 것이다. 

(故)전예강 어린이 유족과 환자단체들이 2014년 8월 21일 병원 앞에서 개최한 “9살 전예강 어린이 응급실 사망 진상규명 및 미숙련 의료행위로 인한 환자 피해 최소화 대책 촉구 기자회견”.   출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독일 민법은 진료계약의 경우 의료인에 의해 완전히 통제 가능한 일반적인 위험이 실현되면 의료인의 과실이 추정되고, 의료인이 본인의 과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의료사고 관련해 입증책임 전환을 입법적으로 도입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입법화 논의를 추진할 때가 되었다.

환자나 유족은 중상해를 입거나 가족을 잃었는데도 가해자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수년에 걸친 소송기간 동안 입증의 어려움과 고액의 소송비로 울분은 토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울분과 트라우마 치유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와 유족은 용서나 화해보다 형사고소나 형사소송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와 국회는 지금 ‘의료인 의료사고 형사처벌 면제 특례법’ 제정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의료사고 설명의무법,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법 등 의료사고 관련 환자와 유족의 울분을 풀어주고, 입증 부담을 완화하는 입법적 조치부터 먼저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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