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의 시시각각] 홍보수석실의 잦은 인사 교체

고정애 2023. 2. 3.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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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입'엔 존재론적 딜레마
대통령 대변하지만 쓴소리 역할도
이걸 인정해야 제대로 소통 가능
고정애 chief 에디터

정치인, 특히 대통령의 입엔 존재론적 딜레마가 있다. 언론 앞에선 대통령을 대변하지만 대통령 앞에선 언론을 대변하게 돼서다. 쓴소리 통로다. 이게 상당 수준 용인되지 않으면 파국을 맞곤 한다. 빌 클린턴의 공보 참모였던 조지 스테파노플러스가 한 예이겠다. 이전 칼럼에서도 인용한 적이 있는 책 『너무나 인간적인』에 적힌 사연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LA를 방문했다 돌아가는 길에 LA공항에 정류 중인 전용기로 할리우드 스타 미용사를 부르는 바람에 20분 정도 출발이 늦어졌다. 다음 날 한 언론이 대통령 편의 때문에 탑승객 수천 명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보도했다. 편의는 있었지만 기다린 일은 없었다. 클린턴 부부는 “말도 안 된다”고 강한 반박을 요구했다. 하지만 ‘공항 마비’가 기정사실화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스테파노플러스는 “바쁜 공항 활주로에서 할리우드 미용사에게 이발을 할 만큼 클린턴이 둔하고, 또 참모들은 이를 막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기 그지없다는 사실에 대해선 지탄받아 마땅했다”고 썼다.

직후 기자들 담당 백악관 직원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해고되면서 사실상 ‘언론과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는 "브리핑룸에서 충성심의 증거로 매일 연달아 종주먹을 들이대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에선 “여기선 사과하고 저기선 더 접근하는 식으로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클린턴 부부는 ‘내가 중심을 잃고 대통령을 희생하면서까지 언론에 영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클린턴 부부에게 ‘우리가 실수하고 있다’는 걸 납득시킬 정도로 강하게 나가지 못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결국 취임 129일 만에 자리를 내놓았다.

길게 인용한 건 윤석열 대통령 시대에도 ‘스테파노플러스’처럼 보이는 이들이 보여서다. 최영범 홍보수석이나 강인선 대변인이 별 이유 없이 물러나더니 MBC와의 갈등 와중에 기자실 업무를 담당하는 춘추관장격인 대외협력비서관이 사직했다. 사실상 대변인 업무를 하던 이재명 부대변인이 해외 순방 일정 유출 때문에 사퇴했다. 언론에 사전 협조 차원에서 알렸다는데, 그게 공개되면서 상대국에 사과까지 하면서 일정을 재조정했다니 대형사고이긴 했다. 그렇더라도 온갖 설화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능력 논란이 있는데도 직을 유지하는 일부 수석들과 비교하면 기이한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서울 용산에 새로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에서 1호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당시 뒷줄에 서 있던 최영범 홍보수석과 강인선 대변인은 물러난 상태다. [연합뉴스]

대통령실 사정을 아는 인사는 이렇게 분석했다. “대통령이 언론 전반을 대단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소수를 빼곤 기울어 있다고 생각한다. 홍보수석실이 대통령 홍보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기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듯하다고 여기는 듯도 하다. 내 편을 들어야 하는데 언론 편을 드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클린턴식 오류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래서인지 어마어마한 분량의 발언을 직접 쏟아낸다. 제대로 의중을 전하기 위해서겠지만, 다변이 소통의 질을 보장하지 않는다. 의도와 다른 부분이 부각될 가능성도 커져서다. 대통령의 말이 대통령의 말을 밀어내는 형국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실이 대통령 메시지에 집중하다 보니 정부 차원의 메시지 관리가 덜 조율되는 측면도 있다. 통상 여론의 주목도가 떨어져 정권에 불리한 발표를 많이 한다고 해서 ‘쓰레기 버리는 날(trash day)'로 불리는 금요일에도 중요 발표가 이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지난 금요일엔 현 정권의 역점 사업인 국민연금, 정년 연장 관련 발표가 있었다. ‘팀킬’이었다.

이건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기자실을 폐쇄하는 등 언론과 싸웠던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말 기자들과의 송년 만찬에서 기자들이 선정한 10대 뉴스 영상을 보고 했다는 말을 전한다.

“(언론이) 적대적이지만 많은 부분 공감하는 그런 영역이 있더라고 실제로 보고받았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 없다가 오늘 준비된 영상을 보니까 공감이 온다. 공유지대가 있었구나….”

고정애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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