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의 지방시대] “주 1회 부사장 모십니다” 일본서 인기 끄는 ‘고향 부업’

오영환 입력 2023. 2. 3. 00:52 수정 2023. 2. 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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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중소기업 살리는 겸업 개방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동해와 면한 일본 돗토리(鳥取)현에서 음식·식품가공업을 하는 브릴리언트 어소시에이츠사. 종업원 22명에 연간 매출 약 2억엔의 이 회사는 2년 전 하나의 벽에 부딪혔다. 스킨케어 분야로 진출하려고 화장품을 선보였지만,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난관은 뜻밖의 아이디어로 뚫렸다. 현 당국이 후쿠시마 도미코 사장에 ‘주 1회 부사장’ 채용을 제안하면서다.

이 제도는 구인·구직을 중개하는 현립 돗토리헬로워크의 프로젝트다. 도시의 인재가 부업·겸업 형태로 현 소재 기업의 부사장을 맡아 주 1회 자문하는 방식으로 원격 근무가 대부분이다. 일본 회사원의 부업·겸업은 2018년 정부가 금지 규칙을 없애면서 본격화했다. 현이 권장하는 주 1회 부사장의 월 보수 기준은 3~5만엔. 부사장 직책에 턱도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회사의 모집에 도쿄의 대기업 정사원, 유력 광고대리점·메가뱅크 출신자가 몰려왔다. 지난 2년간 70여 명이 응모했고, 회사는 11명을 채용했다고 한다.

「 인력난 심각한 돗토리현 역발상
도시인재 공모해 총 577명 채용
한 민간 사이트 등록 1만 명 달해

지방·전문가 연결 일석일조 효과
일본 기업 71% “투잡 허용, 예정”
20~60대 정사원 56% “관심 있다”

“보수 적지만 업무 만족도 높아”

일본 돗토리현이 민간 사이트에 싣는 ‘주 1회 부사장’ 모집 배너. [사진 돗토리현]

미국 회사의 일본 법인 영업본부장을 지낸 구리다니 다카시씨는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채용 직후 커플을 등장시킨 화장품 광고를 회사에 제안했다. 화장품은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새로운 판로가 열렸다. 구리다니씨는 “회사 경영 지원에 보람을 느꼈고, 돈보다 업무 내용에 매력적 부분이 많다”고 했다. 후쿠시마 사장은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의 조언을 바탕으로 용기를 갖고 일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돗토리시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제조업체인 어스웨이도 이 프로젝트의 수혜사다. 유력 광고대리점 출신자의 인맥 덕분에 제품을 TV 쇼핑에 내게 됐다. 제품명도 ‘마마서포트’로 지었다. 이 회사 신야 나라오 사장은 “제1 부사장의 발이 넓어 고맙게도 여러 옵션을 제안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NHK 보도)

인구가 54만여 명으로 광역단체 중 가장 적은 돗토리현은 인력난에 빠진 지 오래다. 디지털 전환 등 경영 과제도 인재가 모자라 손을 대지 못할 판이라고 한다. 기타무라 유지 돗토리헬로워크 소장의 얘기를 들어봤다.

Q : 부업·겸업 프로젝트의 배경은.
A : “2019년 본격화한 이 프로젝트는 당초 이주를 동반한 비즈니스 인재 유치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역 기업에는 우수 인재가 종일 근무할 정도의 일거리가 없고, 그에 걸맞은 보수를 줄 여유도 없다. 도시 인재의 이주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래서 주 1회 부업·겸업이 보다 효과적으로 기업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Q : 프로젝트의 흐름도는.
A : “유력 민간 사이트와 연계해 ‘돗토리에서 주 1회 부사장’으로 이름 붙인 특집란을 만들어 인재를 모집 중이다. 계약은 1개월마다 자동 갱신하는 만큼 중소기업도 무리하지 않고 활용이 가능하다.”

Q : 지금까지의 실적은.
A : “지난 4년간 연(延) 8000명 넘는 구직 응모가 있었고, 지난해 말 현재 344개사가 577명을 채용했다. 2020년 이후 전국 부업·겸업 성사 건수는 1885건으로, 이 가운데 돗토리현이 약 30%로 1위를 차지했다.”

Q : 지방 회생에 실제로 도움이 되나.
A : “도쿄권에 60%가 몰려 있다는 디지털 인재가 지방 기업에 힘이 되고 있다. 지역 기업은 핀포인트식 도움을 받아 공격적 경영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부업 인재가 ‘관계 인구’에서 향후 이주 인구로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돗토리현의 주 1회 부사장 프로젝트는 ‘지방 부업’의 한 방식이다. 지방 기여형 부업이 활기를 띠는 데는 대기업 인재와 지방 기업을 중개하는 민간 매칭 사이트가 한몫한다. 일본의 고향납세 제도가 지방의 새 금맥(金脈)으로 자리 잡는 데 민간 포털 사이트 10여 곳이 큰 역할을 한 점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고향사랑 기부제 모델인 이 제도의 기부금은 2021년 8302억엔으로 13년 만에 약 100배 늘어났다.

기획·영업·마케팅·PR 등 영역 다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지방 부업의 유력 매칭 사이트는 현재 5곳 정도다. 인재 서비스 회사 미라이워크스가 운영하는 ‘Skill Shift’ 사이트에 들어가 보자. 첫 단계는 희망자 등록이다. 직종과 능력을 기재한다. 직종은 경영기획, 상품개발, 영업기획, 인사·조직, 마케팅, 홍보·PR, 해외사업 등으로 세분됐다. 다음 단계는 희망자가 사이트에 게시된 구인 기업에 응모해 면담하고, 조건이 맞으면 계약을 맺는다. 2017~2022년 누적 등록자가 1만586명이고, 기업의 구인은 1469건이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등록자 수와 구인 건수는 모두 급증 추세다.(그래픽 참조) Skill Shift를 통한 기업의 월평균 사례는 3만4000엔으로 집계됐다.

사이트를 통한 윈-윈 관계는 넘쳐난다. 생명보험사 마케팅부장인 히다 야스히로씨는 군마(群馬)현 다카사키(高崎)시의 외국어 교육업체와 월액 3만엔에 부업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사업을 시작하면서 마케팅 전문가가 필요한 터였다. 히다씨는 “금융기관의 마케팅 방법에는 한계가 있어 (관광 분야) 최전선의 마케팅·PR 기술 습득차 부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부업을 스펙 쌓기의 기회로 삼는 셈이다. 회사 측은 히다씨의 풍부한 경험으로 색다른 기획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라이워크스 이시이 마유미 홍보 담당은 “Skill Shift는 프로페셔널 인재가 일하는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한 서비스의 하나”라며 “기업의 구인 1건에 평균 18명이 응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력 인재 서비스 회사 리쿠르트가 운영하는 사이트(산카쿠)도 비슷하다. 이 회사는 도시 거주자의 지방 기업 파트타임 근무를 ‘고향 부업’으로 이름 지었다. 산카쿠 책임자인 고가 도시키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의 회사에서 직업 인생을 끝내는 종신고용은 언젠가 스러진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사회에서 길을 하나로 축소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러 옵션을 가져야 리스크도 피할 수 있다. 지방의 인재 부족은 큰 문제다. 특히 IT, 웹디자인, 마케팅 인재는 도시에 집중해 있다. 지방 기업은 바로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이들의 능력을 기대한다. 고향 부업은 도시와 지방 간 관계 인구를 늘리는 계기도 된다.”

고향 부업에 대한 일본 회사원들의 생각은 어떠할까. 리쿠르트가 지난해 1월 20~60대 정사원 2072명을 조사한 결과, 56.4%가 매우 관심이 있거나(17.5%) 관심이 있다(38.9%)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지역에 공헌하고 싶다’가 47.3%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지역에 상관없이 지방창생에 관심이 있다’(40.8%),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지방기업에서 살리고 싶다’(34.8%) 순이었다.(복수응답)

인생 100세 시대의 새로운 고용

일본 기업은 규모가 클수록 부업·겸업 허용 비율이 높다. 지난해 10월 대표적 재계 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부업·겸업 관련 설문조사 결과, 회답 기업(275개사)의 70.6%가 허용하고 있거나(53.1%), 허용할 예정(17.5%)이라고 답했다. 근로자가 5000명 이상인 기업은 두 비율 합계가 84%에 이르렀다. 1000~5000명 기업은 72.9%, 300~1000명은 58.3%, 100인 미만은 42.1%였다.

일본의 지방 부업 활성화에는 중앙 정부와 지방이 따로 없다. 중앙은 부업을 지방창생의 중요 정책수단으로 삼고 있다. 현재 도쿄도를 제외한 46개 광역단체가 ‘프로페셔널 인재 전략 거점’을 설치해 대도시 인재와 지방 기업을 중개한다. 전략 거점과 파트너십을 맺은 대기업은 미쓰이물산·소니 등 46곳에 이른다.

지자체의 지원은 다양하다. 미야기(宮城)현은 지역 기업이 민간 매칭 사이트에 지불한 수수료를 40만엔 한도 내에서 보조한다. 채용 인사의 지역 근무에 따른 교통비와 숙박비도 30만엔 내에서 지원한다. 군마현 도미오카(富岡)시는 지역 신용금고와 연계해 교통비와 지역 상품권 5000엔을 준다.

일본의 지방 부업은 시대 조류를 반영한다. 경기 침체로 고용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도시 인재가 스펙 향상을 꾀할 수 있다. 부업은 찔끔찔끔 오르는 월급 보전의 수단이기도 하다. 소멸 위기의 지방에 공헌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지자체에 부업 인재는 관계 인구이자 이주 예비군이다. 무엇보다 부업은 평생 현역사회, 인생 100년 시대의 한 축이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 기업의 인재 부족은 일본 못지않다. 켜켜이 쌓여온 복합 현상을 한방에 되돌릴 신의 한 수는 없다. 지방 분산형 사회로 가는 벽돌을 쌓아 올리는 데는 제도 간 틈새 활용도 한몫한다는 점을 일본 사례는 일러준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 겸 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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