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슬의 숫자읽기] 현금 못 쓰는 사회

2023. 2. 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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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슬 약사·작가

대전 시내버스에는 현금통이 없다. 지난해 7월부터 ‘현금 없는 시내버스’ 제도를 시행하며 현금을 받지 않게 되어서다. 2022년 대전 시내버스 현금 사용률이 1.5%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 시범사업을 하던 버스노선의 현금 사용률이 0.4%로 떨어진 점을 고려하면, 추가적인 관리비용을 부담하느니 현금통을 철거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현금을 대체한 자리에 계좌이체와 QR코드를 넣은 건 비합리적이라 문제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전 국민의 월간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률은 65.4% 정도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고작 28.9%만이 모바일 금융서비스를 이용했다. 여전히 대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주류이고, 사정이 조금 나은 사람들은 폰뱅킹 정도의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니 다른 지불수단 없이 버스를 탔다, 현금 대신 계좌이체를 하라는 요구가 이들에겐 막막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교통카드를 쓰는 대중교통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2018년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주요 카페 프렌차이즈는 꾸준히 캐시리스(cashless) 매장을 늘리는 중인데, 표면적으로는 현금 관리의 곤란함과 낮은 현금 이용률을 들지만 실제로는 키오스크로 고용 대체를 노리는 것에 가깝다. 현금 소비성향이 높은 노인들에게 키오스크라는 추가적인 장벽까지 하나 덧대어지는 것이다. ‘노키즈존’처럼 명시적으로 노인들을 거부하진 않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노인들을 소격(疏隔)하는 것이다. 방법이 없을까.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단순하게는 캐시리스 매장을 규제하자는 식의 해법도 나올 수 있지만, 이는 부적절한 복고적 해법이다. 한국은행의 ‘경제주체별 현금사용행태’ 조사를 살펴보면 2015년엔 가구 지출의 38.8%가 현금의 형태로 지출됐으나, 2021년엔 21.6%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마저도 절반가량은 용돈이나 생활비 조로 개인 간에 현금을 주고받는 형태이니, 현금 기피는 시대적 흐름에 가깝다. 오죽하면 길거리 자판기조차 현금 투입구가 사라지고 있는데, 무인 매장 대중화의 시대에 현금 결제 의무화 같은 방식의 낡은 규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기왕 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면, 대상은 현금이 아닌 기술이어야 한다. 사실은 젊은 우리도 조잡하게 만든 키오스크를 사용하면서 분노가 치밀 때가 많다. 그런데 이를 노인 집단의 디지털 리터러시 문제라 이해하고, 노인을 질타하는 게 타당할까. 차라리 디지털 약자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는 증빙 책임을 포괄적으로 서비스 제공 업체에 지우는 방식의 규제가 도입되는 게 맞고, 이는 혁신을 막는 나쁜 규제가 아니라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초고령사회 대책은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

박한슬 약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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