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 바닥도 뜯었다, 이 작품 전시하려고 [서울을 그리는 어반스케쳐]
[오창환 기자]
▲ <앤디 카텔란>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앤디 워홀의 바나나와 카텔란의 바나나를 합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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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페로탕 갤러리에 전시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을 관객이 먹어치운 것이다. 카텔란이 시장에서 산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고정시킨 것도 화제가 되었는데, 남의 작품을 먹다니!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큰 화제가 되어 관객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전시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갤러리가 그 작품을 12만 달러(약 1억 5000만 원)에 구입했다는 것이다.
카텔란이 판매한 것은 전시에 사용되었던 바나나와 테이프가 아니라 전시 개념이었다. 작년에 한참 NFT가 화재가 되었는데 시대를 앞서가는 카텔란이 일종의 NFT를 판매한 것이다.
바나나를 먹은 사람 역시 행위예술가였는데, 내 생각에는 카텔란과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객이 바나나를 먹는 것'도 작품에 포함된 개념이었을 것이다. 보통은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만약 작가에게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남의 작품을 먹는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1960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출생한 조각이자 행위예술가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중 한 명이다(관련기사 : 이태원 창고에서 벌어지는 세상 힙한 전시).
그의 개인전 <WE>가 1월 31일부터 7월 16일까지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이 전시는 그가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이후에 하는 첫 개인전으로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38점을 선보인다. 보통 중요한 전시는 오래 하기 마련인데 이번 전시는 무려 6개월 반을 하는, 근래에 보기 드문 장기 전시다.
전시는 무료고 예약을 해야 한다. 나는 전시 첫 날인 31일 예약을 했다. 전시장 입구에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조각인 노숙자가 누워 있다. 여기서부터 전시가 시작되어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총 3개 층에서 진행된다.
가방을 맡기고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천장에 매달린 말이 보인다. 허공에서 사지를 늘어뜨린 말은 생소하다. 게다가 아주 높이 달려있다. 실제 말을 박제한 것인데 말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전복한다.
▲ 왼쪽 <무제>. 미술관 바닥에서 얼굴을 내민 카텔란 자소상. 오른쪽 은 자소상 2개를 눕혀 높고 'WE'라고 이름지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구두가 유난히 커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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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으로 가면 정말 놀라운 전시가 있는데, 카텔란이 도둑처럼 미술관 바닥에서 얼굴을 내민 작품이다. 리움은 이 전시를 위해 바닥 슬라브 콘크리트와 철근을 제거하고 박스를 만들어 카텔란 자소상을 집어넣었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철근을 배근하고 콘크리트 타설을 해서 양생을 한 다음 그 위에 마감 재료를 붙여야 한다. 우리나라 전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 같다.
1층에도 당나귀 등 동물 박제 작품이 있고 2층에도 머리가 없는 말이 벽에 걸려있는 작품이 있다. 데미안 허스트가 상어나 소를 박제한 후에 한때 동물 박제 작품이 유행하기도 했다. 동물 박제는 관객에게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이끌어내지만, 지금은 동물 단체의 반대도 있고, 아무튼 그 당시에나 가능했던 작품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사용된 작품 <WE>와 히틀러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작품 <Him> 등 많은 작품이 표현은 사실적인 반면에, 크기는 실제 사이즈를 축소해서 만든 경우가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신발만은 기성품을 신겨 놓았다.
작가가 일부러 몸에 맞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의 작품 모토인 '게으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는 사실 장소에 특정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천장에 매달린 말은 원래 클래식한 건물의 교차 아치에 매달려서 충격을 주는 것이었고, 바닥에서 얼굴을 내민 자소상도 명화들로 둘러 싸인 미술관 바닥에서 도둑처럼 바닥을 뚫고 나온 개념이다.
▲ 전시장에서 우연히 카텔란을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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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를 보고 다시 2층 전시를 둘러보는데, 이런! 카텔란 작가가 전시장에 온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선생님 작품을 좋아해서 이렇게 작품을 만들었어요."
"정말 멋있어요. 이렇게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여기다 선생님 사인을 받을 수 있을까요?"
"잠시 있다가요."
결국 사인은 못 받았지만, 내 작품을 보여주고 대화도 했다. 그가 전시장에 머문 시간이 불과 10여 분이었던 것을 보면 정말 극적으로 만났다고 해야 할까. 그는 악동 이미지와는 달리 키도 크고 목소리도 멋있고 연예인 분위기가 나는 분이셨다. 내가 직접 만난 미술가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분이다.
▲ <노베센토>1997. 허공에 매달린 말을 그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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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지하 1층으로 내려와서 허공에 매달린 말을 간단하게 스케치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카텔란에게 보여줬던 스케치북에 바나나를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것을 카텔란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는 앤디 워홀 스타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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