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아빠 휴대폰 사진첩에 수두룩한 장면

최문희 2023. 2. 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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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님과 큰딸' 작가의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고정미 기자]

동네를 손금 읽듯이 훤히 꿰뚫어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내가 출근하는 동네의 오후 두 시와 오후 다섯 시 반.

오후 두 시. 트럭 짐칸에서 익숙한 듯 물건을 꺼내는 기사님과 눈이 마주치면 알은체를 해주신다. "저희 층 물건 있어요?" 여쭈면 가벼울 땐 물건을 건네주시고 무겁다 싶으면 괜찮다고 손사래 치고 회사 문 앞까지 물건을 옮겨 주신다.

오후 다섯 시 반의 기사님은 내가 회사에 입사하기 훨씬 예전부터 이 동네를 담당하신 듯하다. 인생의 무수한 희로애락을 겪은 사람의 고요한 아우라가 배인 기사님은 다부지고 정이 많다. '쩔배(절은 배추)' 택배가 많은 늦가을에는 파김치가 되어서 우리 회사가 고객에게 보내는 택배를 가져가신다. 물량이 많은 연휴 시기에는 직원들이 퇴근한 늦은 밤마다 현관에 놓인 고객수령용 택배를 챙겨 가신다.

퇴근 시간과 기사님의 방문 시간이 겹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택배 물량이 많은 날이다. 한참 움직이시는 걸 볼 때는 고작 두세 개 정도 같이 옮겨 드린다. 오래전부터 퇴근길에 이를 같이 돕는 동료를 살피며 이타심의 온도계를 남몰래 살핀다. 직급 높은 사람에게 깍듯이 대하는 사람보다 이럴 때 손 보태는 동료에게 더 마음이 간다.
 
 .
ⓒ 고정미
 

 
나는 대한민국의 택배기사입니다

하지만 나는 쓰면서 깨닫는다. N년차 직장인으로 살면서 기사님의 성도 모른다는 것을. 여쭐 일이야 뭐 있겠냐만 한 동네에서 매일 보는 기사님이 이씨 성을 가졌는지 김씨 성을 가졌는지 정도는 알면 좋지 않았을까. 일주일 가운데 한 요일만큼만 다정해지면 그 다정의 힘으로 너는 살 텐데. 마음 쓰는 일은 결국 나를 위한 일인데. 기사님의 발이 하루라도 이 동네 바닥을 딛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은 물건을 종일 학수고대할 게 빤한데 말이다.
 
 책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
ⓒ 어떤책
책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을 쓰신 택배기사님도 본명을 밝히지 않으셨다. 하지만 되레 자기 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져 기억에 남는다. 작가 특유의 유머감각은 덤이다.

자신의 큰딸과 함께 쓴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에는 25년 차 택배기사의 오늘과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사연으로 꽉 차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택배기사"라고 말하는 작가는 수첩에 자신의 일과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것이 이 책의 씨앗이 되었다.

책장을 넘기면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1분 1초"라도 아껴가며 업을 이어온 사람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불꽃이 튈 만큼 빠르게 골목을 누비는 운동화 두 짝이 눈앞에 선명하다.

큰딸에 따르면 그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온통 "알지 못하는 이가 부재중인 문" 앞의 사진들로 도배돼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신이 배송한 물건이 안전하게 도착했음을 증명하는 사진들의 집합이다. 나아가 그만큼 철두철미하게 일하고자 하는 한 사람의 프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는 하루에 삼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문 앞에 '필수템' 혹은 '소확행'이라는 안심을 두고 퇴근한다.

큰딸은 그 사진들을 아픈 눈으로 되짚으며 그의 인생을 활자화해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은 지난해 읽은 '업세이(본업과 에세이를 합친 말)' 중에서 유독 다정의 힘을 뜨겁게 전해 받았던 이야기다. 책 앞부분 '일러두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운송장의 작은 글자들을 보느라 눈이 피로한 기사님과 동료들을 위해 큰 글자를 사용했습니다."

진상도 많지만 챙겨 주는 이웃도 있습니다

여섯 챕터로 이뤄진 작가의 일기에는 주옥같은 사연도 열불 나는 사연도 많다.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극성이던 시기, 수령인이 열린 문틈으로 분사 형태의 소독제를 연신 뿌리는 바람에 눈앞이 캄캄해졌다는 일은 소소했다. 자신이 택배를 집 안에 들여놓은 사실을 망각하고 기사가 훔쳤다고 '대노'하는 일도 역시 소소했다. 다쳐서 얼굴에 피가 흐르는 기사를 그대로 두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이웃이 나오는 일화에선 빡치고 말았다. 거기에 당신이 주문한 물건도 있을 수 있는데?

하지만 그의 불꽃같이 사라지는 운동화만 본 게 아니라 일찍이 그의 전체 실루엣을 본 정의로운 어린이가 있었으니. "문 앞에 둔 상자들로는 전할 수 없던 마음"이 택배 수령인들의 구체적인 미담으로 드러나는 이야기에서는 독자도 신이 난다. 하늘이(가명)의 사연이다.
 
"오랜만에 하늘이네를 방문하자 하늘이 어머니께서 하늘이의 입사 지원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중략) 하늘이의 입사지원서에 내 이야기가 쓰였단다. 자기 집을 찾아오는 친척 같은 택배 아저씨가 좋아서 이 기업에 지원한다고. 나도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벅찬 일인 줄 몰랐다."

하늘이는 작가가 배송해오던 할머니 선물을 좋아하던 일곱 살 아이였다. 그 어린이가 자라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칸을 채울 만큼 동기를 부여하고 에너지를 주었을 작가의 모습이 늠름해서 조금 반해 버렸다. 작가가 배송 오는 오후 6시 50분마다 그를 위한 밥상(직접 빚은 해물만두)을 차려 주셨던 어르신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그 역시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선물 받았음을 확인하고 안도가 밀려왔다. 방금 찜기에서 꺼낸 만두만큼 뜨끈했다.

물건도 마음도 파손금지입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닌 가까운 관찰자가 바라본 택배 일의 연대기를 그린 책들이 있다. <까대기>(이종철)에는 6년간 '까대기(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곁을 함께한 기사들의 하루가 등장한다. 기사가 업체로부터 상품을 받아서 지점으로 옮기면 다시 화물차를 통해 중앙물류센터로 옮긴다. 밤샘 분류 작업 이후 각 지점으로 물건들이 이동한 후 하차 작업이 끝나면 각 지역 담당기사가 택배를 배송하는 일련의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이 모든 일은 당연히 사람이 한다. '재벌 택배사'의 독과점 폐해 때문에 오천 원 이상 하던 택배비가 낮아졌고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택배기사들에게 돌아갔다는 책 이야기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택배 일 잘 하면 한 달에 오륙백만 원은 벌 거라는 세간의 힐난이 지겹다. 그 사이사이 과로사로 운명을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뉴스도 공공연하다. 택배 파업을 할 때마다 물류 차질이 예상된다며 파업의 불씨를 키운 거대 자본을 보지 않으려는 언론의 행태는 어느 한쪽에게만 '콩고물'을 줄 것이다. 

최근 세 차례에 걸쳐 택배 요금이 인상됐지만 대기업은 특수고용직 계약 관계를 악용하여 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외면한다. 입주민에게 전할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기사들의 출입을 막는 아파트 역시 부지기수다. 오히려 기사들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매기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최저가를 알아내기 위해 공들여 주문한 물건을 잘 받으려면 그 물건을 문간 앞까지 전하는 사람이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택배를 받는 사람도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받을 수 있으니까.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에는 '오늘 다 풉니다, 택배 꿀팁 3종!'이라는 장이 있다. 그중 한 가지 팁을 옮긴다.
 
"상자에 여백이 많을수록 물건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급적 상품 크기가 비슷한 크기로 포장하세요. (중략) 재사용하는 상자라 크기를 맞추기 어렵다면 종이를 구겨 넣거나 다른 종이상자를 넣어 빈 공간을 채워 주세요. 상자 모서리까지 뭔가로 가득차 있어야 물건이 파손되지 않아요."
 
파손되지 않는 몸과 마음을 위한 최소한의 팁이다. 추운 날 따뜻한 꿀물 음료, 믹스커피를 건네는 짬을 기사님께 낼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내가 전하는 물건을 안전하게 배송하는 한 가지 방법 정도는 익혀두자. 배송 시간을 독촉하는 성난 마음을 잠재우고자 애쓰는 시간에 누군가의 문 앞에 당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우리들의 동네를 심장처럼 뛰어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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