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실습생 죽음에 분노한 배두나 "연기하며 이성 잃었죠"
콜센터 실습생 실화…지난해 칸 호평
‘도희야’ 정주리 감독과 형사역 재회
“한국 청소년 덜 아팠으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넘나든 행보
“세계 어디 가나 일상 지키려 노력
혼자만의 시간 가지며 ‘멘탈관리’하죠”
“영화를 찍으면서 소희와 같은 처지인데 같은 선택을 안 하는 분들이 고마웠어요. 버텨준 것에 대해서요. 이 영화가 그런 분들을 위로할 수 있으면…” 영화 ‘다음 소희’(8일 개봉)의 주연을 맡은 배우 배두나(43)는 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인터뷰 도중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물을 비쳤다.
영화는 2016년 콜센터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여고생이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실화를 담았다. 부당 대우와 감정 노동에 혹사당하던 여고생은 심리적으로 고립돼가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배두나는 극 중에서 여고생 소희(김시은) 사망 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는 형사 유진을 연기했다
'비숲' '브로커' '다음 소희' 형사 도맡은 이유는…
“유진의 대사 중에 ‘아이가 죽었잖아요’가 기억에 남아요. 장학사가 유진에게 ‘적당히 하십시다’ 그러잖아요.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한 어른들의 모습이죠.”
그는 1년 전 촬영 당시의 심경을 생생히 되살렸다. “나도 자랄 때 그랬지만, 한국 사회에선 청소년들을 몰아붙이는 느낌이다. 지금 그 길을 겪는 사람들이 조금 덜 아팠으면, 우리 때보단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에 관한 영화에 참여하게 된다”고 했다.
최근 그가 드라마 ‘비밀의 숲’(tvN), 영화 ‘브로커’ 등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형사 역할을 자주 맡는 이유다. “20대 때부터 감독의 시선을 담은 관찰자 역할을 많이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가 고르는 역할에 형사가 많아졌다. 내가 좋아하는, 되고 싶은 이상형의 인물이 많다”고 했다.
경찰 유진의 한방…"공직자 아닌 인간으로서 분노"
‘다음 소희’의 각본‧연출을 맡은 정주리 감독과는 그의 데뷔작 ‘도희야’(2014) 이후 두번째 만남이다. 배두나는 ‘도희야’에선 파출소장 영남이 되어 의붓아버지에게 학대 받는 14살 시골 소녀 도희를 돕는다.
배두나는 “둘의 직업이 같고 사회에 잘 속하지 못 하는 인물이지만, 유진은 영남보다 더 처절하게 외롭다. 10년 간 간병한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 됐다. ‘힘든 일 하면 존중받아야 하는데 오히려 무시한다’는 대사도 그의 오랜 생각일 것”이라고 두 캐릭터를 비교했다.
그는 콜센터‧학교‧교육청 등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 시스템에 대한 유진의 분노를 깊이 공감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사건 관계자를 때리는 장면을 포함해서다.
“공직자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도저히 참지 못한 게 아닐까. 나도 연기하며 조금 이성을 잃었다”면서 “내가 느끼는 그대로 관객과 호흡하면서 날 것의 연기로 표현하려 했다”고 했다.
내 생각 담은 가상의 이야기 글로 써보고 싶어
배두나는 정주리 감독에 대한 신뢰도 드러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 감독을 동지처럼 지켜봤는데 타협하지 않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멋있었다”면서 “나는 고지식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고 착한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어 “좋아하는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과의 작업과 대중이 원하는 작품을 왔다 갔다 한다. 해외에선 블록버스터를 많이 하는데, 저예산이어도 진짜 하고 싶은 한국 작품도 5년에 한 번은 하려 한다”며 "언젠가 내 생각을 담은 가상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촬영을 마친 ‘레벨 문’을 비롯해 워쇼스키 자매‧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해외 감독 작품을 잇따라 해온 그는 “시차 적응을 못 하기로 유명하다. 그냥 괴롭게 산다”며 웃었다.
“MBTI로 치면 I(내향형) 성향인데 20년 사회 생활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편하게 느끼는지 알게 됐다. 어느 날 회식 하고 들어오니 눈물이 나더라”며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나만의 속도를 지키고, 지치지 않도록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했다.
“언제나 땅에 발 붙이고 살려고 노력해요. 누가 나를 비행기 태워서 구름 위에 올려놓으면 스스로 내려오고, 누가 땅 밑으로 끌어내리면 알아서 올라오며 ‘멘탈 관리’를 하죠. 세계 어느 도시에 가든 저만의 일상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20년 넘게 배우로서 버텨온 저 자신이 뿌듯할 때도 많아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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