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오염수 버리면, 누가 사묵겠노” 어민들 한숨

정진영,박장군,이택현,이경원 2023. 2. 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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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바다로 오염수가 온다]
지난달 30일, 추운 날씨에 두꺼운 방한 옷을 여러 겹 껴입은 상인이 자갈치시장에서 해산물을 팔고 있다. 부산=이한형 기


흩어져 몸을 녹이던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한마디에 모여들었다. 김모(59)씨는 “기준치 이하로 배출한다는데 우리가 걱정할 게 뭐 있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강모(64)씨가 “손님이 안 올 것인데 왜 걱정이 안 되느냐”고 곧장 말을 받았다. “그럼 세상에 먹을 게 어딨느냐” “손님들은 물고기 말고 다른 걸 찾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부산, 걱정은 이미 방류돼 바다를 건너온 듯했다.

“일본이 버리면, 누가 사묵겠노”
가로 폭 2m 남짓한 가판대에 해산물 소쿠리가 한가득, 정향자(74)씨가 생선 손질을 멈추더니 “일본이 저리 하면 누가 사묵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딸과 함께 40년째 자갈치시장 한 모퉁이를 지키고 있다. 전복 꼬막 개조개를 가지런히 올린 가판이 모녀의 온 인생이다. 방사능이니 핵종이니 과학은 몰라도 손님 마음이 무섭다는 걸 잘 안다. 그는 오염수 방류를 두고 “우리 생명이 달린 일”이라고 말했다.

학계는 후쿠시마 해수가 우리 해역에 오는 데 수년이 걸린다고 말하지만 어민과 상인들의 시계는 그보다 빨리 돌아간다. 이 지역 한 어촌계장은 “아직 방류 전인데 이야기를 하기가 좀 그렇다”며 난색을 표했다. 조그마한 기름 유출 소식에도 고기값이 떨어지고 손님 발길이 끊어지더라며 어민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지난달 30일, 자갈치시장 한 가판에 생선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말을 아낀다고 없는 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들이 더욱 잘 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엔 4000원 수준이던 20㎏ 소금 한 포가 7만원까지 거래됐었다. ‘방사능 오염 바다’가 주는 불안감이 시장을 흔든 생생한 장면이다. 임준택 수협중앙회장은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방류가 되면) 수산업이 전면 소멸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에 면한 지방자치단체마다 방류 이후 수산업 피해를 천문학적 숫자로 예상하고 있다.

장갑을 끼고 개조개를 손질하던 중간상인 김용선(72)씨는 “일본이 오염수를 버린다면 우리 손자라도 물고기를 못 먹이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수산업 소비 위축을 ‘풍문 피해’로 규정하고 어민들에게 지원할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임 회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민 생계가 걸린 사안인데 누가 방류를 반기겠느냐”며 “수매 자금을 지난해의 2배로 잡아둔 상태”라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 연화리 신암어촌계 해녀들이 지난달 30일, 2021년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배출 발표 당시 1인 시위를 진행했던 피켓을 들고 바다 앞에 서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어머니 품 같은 바다인데
부산 기장군 연화리에서 만난 신암어촌계 해녀 정정순(65)씨는 “저에겐 바다가 엄마 품”이라고 말했다. 이곳 해녀들은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따라 바닷속을 드나들었다.

해녀들이 물질할 때 바닷물을 많이 삼킨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민일보가 이날 만난 5명의 신암어촌계 해녀들은 “우리도 모르게 바닷물이 입으로 들어온다. 그게 하루 1ℓ는 된다”고 말했다. “생명을 보장 못 하는데 앞으로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 “채취한 수산물을 먹어줄 것인지도 걱정이다”…. 말 그대로 바닷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신암어촌계 해녀들이 연화리신암어민복지회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기장군은 제주 다음으로 해녀가 많다. ‘육지 해녀’들은 해녀학교를 세우는 게 여생의 목표다. 이는 어머니를 따라 해온 일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신암어촌계 해녀들은 2021년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 계획을 밝혔을 때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었다. 김정자(75)씨는 “일본은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세계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녀들은 수심 5m 이내의 얕은 바다에 사는 소라 해삼 우뭇가사리가 “발장구 덕에 큰다”고 말했다. 해녀가 더듬는 곳의 생물이 잘 자라고, 해녀가 찾지 않는 쪽 암석은 마치 사막처럼 백화(白化)한다는 것이다. 한옥열(79)씨는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것, 붕어 수조에 산소 거품이 오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과학이 아직 설명하지 않은 이론이지만 대를 이어 바닷속을 들여봐온 이들만 할 수 있는 경험담이었다.

한 어선이 지난달 30일 부산 앞바다를 지나가고 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바다를 어찌 예측합니까
험한 바닷바람에 맞서 살아가지만 ‘해양오염’ 한마디에 가슴 철렁하는 이들이 어촌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늦었다” “이제와 어민이 하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경남 남해군 한 마을의 어촌계장 김모(62)씨는 “인근에 화력발전소며 제철소가 생기는 바람에 1만원 받던 고기값이 3000원이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의 방책을 묻자 그는 “일본이 오염수를 안 풀 것도 아니지 않겠느냐”며 무의미한 대화를 그만두자고 했다.

전남 신안군 한 마을의 어촌계장 박모(53)씨는 “나라에서 뭘 해줄 수 있겠느냐” “누가 답할 수 있는 문제겠느냐”고 말했다. 평생 바다에서 김을 키워온 그는 “원래 바다는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고 했다. 박씨는 수십㎞ 밖에 세워진 교각 하나가 물길과 모래층을 바꾸더라고 했다. 하물며 전례 없는 오염수 방류로 생길 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부산 자갈치시장 한 가판에서 상인이 손님들에게 생선을 팔고 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경남 고성군 동해면 어민들의 자존심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청정해역으로 지정한 진해만 바다다. 여기서 나는 굴 멍게 미더덕이 이곳 사람들의 자랑이다. 이곳 조선해양산업특구 지역협의회장인 이학민씨는 2019년 일본을 거쳐 입항하는 외항선 40여척의 선박평형수 등에 대해 방사능 오염도를 조사해 달라고 정부에 긴급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어민들이 직접 해양환경공단에 요청해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다행히 ‘생활 방사능’ 수준이었지만 이씨는 방류 이후엔 관리력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했다.

과학으로 말하자는 요구는 늘 옳은 소리지만 한편으로 바다 사람들에겐 가혹한 말이다. 시민의 불안감은 늘 먼저 찾아왔다. 자갈치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1~2년 전부터도 손님들이 “몇 년 뒤면 이제 먹을 거 하나도 없겠다”는 소릴 했다고 입을 모았다. 잠수기수협에서 만난 김모(52)씨는 “정부가 자기 가족이 어업에 종사한다는 마음, 온 국민의 생계가 걸려 있다는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정진영 박장군 이택현 이경원 기자 young@kmib.co.kr

부산=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부산=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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