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대신 갈등 반복하면 '집단 무기력' 올 것"
[희망제작소]
심리학을 전공한 대학원생들이 10.29 참사의 사회적 치유를 위해 나섰다.
▲ 최훈석 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 |
ⓒ 희망제작소 |
최훈석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직접 제안하고 기획했다. 국내의 대표적인 사회심리학자로서, 그는 사회적 재난 이후 우리사회가 치유 대신 갈등을 거듭하는 모습에서 "매우 큰 위험 징후"를 보았다. 막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대학원생에게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답을 구하려는 태도와 경험이 꼭 필요하다는, 스승으로서의 욕심도 있었다.
"사회적 재난의 치유란, 마을에 불이 나면 온 마을이 함께 불을 끄러 나서는 것"이라고 말하는 최훈석 교수를 지난 1월 18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이번 프로젝트는 대학과 시민사회단체가 손잡고 대학원생들을 위한 사회참여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국내에선 드문 일이고 저희 희망제작소도 처음 시도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저의 개인적 관심사이자 연구 분야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공생하면서 공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요. 이는 또한 저희 대학원 심리학과가 지난 20여 년간 진행해왔고 올해 4단계에 접어든 BK21사업의 주요 연구과제이기도 합니다. 개인과 공동체가 어느 한쪽이 더 중요거나 우선해야 한다는 경직된 접근법으로는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인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자명한데도, 우리사회에선 개인의 행복, 삶의 만족과 같은 것이 유행어처럼 되어 있고 그것이 심리학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되는 경향이 있어요.
▲ '사회적 재난 치유 소셜디자이너' 프로젝트 워크숍에 참석해 강연 중인 최훈석 교수 |
ⓒ 희망제작소 |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에 대해서 대개 온정적인 시선을 보내지요. 성금도 걷고 자원봉사도 하고요. 그런데 사회적 재난, 사회적 참사가 발생하면 희생자나 피해자에 대해 자꾸만 평가를 합니다. 왜 그때 거기 있었느냐, 왜 그렇게 밖에 행동을 못했느냐고 비난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우리사회는 각자의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서 사회적 재난 희생자에 대한 평가의 내용이 양분된다는 거예요. 진보/보수, 젠더, 세대와 같이 기존에 존재하던 사회집단 사이의 의견차와 갈등이 참사를 계기로 더욱 불거지고 강화됩니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이런 사고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한다든지 공동체에 필요한 학습을 한다든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치유의 과정이 시작되는 건데, 우리는 치유는커녕 사회가 양분되고 집단들 간의 간극이 더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이런 참사나 사고에 대응하는 데 대단히 미숙할 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에 이어 이번 10.29 참사를 거치면서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복되고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사회 구성원들은 자칫 집단 무기력에 빠질 수 있어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불안한 상태로 각자도생을 하는데, 그러다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공격하고 반목하면서 서로를 불신하고 불안은 더 가중되죠. 절망이 깊어지다가 포기하는 데까지 이르기 전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합니다."
사회적 재난의 건강한 치유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나요?
"마을에 불이 나면, 온 마을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야 돼요. 특정 학계가, 정부가, 민간단체가 할 일이 아니고 온 마을이 다 동원되어 '불 난 것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 토론해야 합니다. 보통 정부는 그런 논의의 장을 만들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정부의 책임이 부각되니까 회피하려고 하죠. 하지만 그 논의의 장이 재난을 극복하고 치유하는 시작점이에요.
선진국이라고 해서 재난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식이, 예를 들면 일본은 쓰나미 피해가 컸을 때 지역에 자조집단이 활발하게 조직되어 주민들이 함께 의논하며 문제를 해결했거든요. 지역사회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대규모 '지원'만 하고, 실제로는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돼서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고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 프로젝트에 함께한 성균관대 심리학 대학원 교수진과 학생들, 희망제작소 연구원들. |
ⓒ 희망제작소 |
-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은 지난해 말부터 강연과 워크숍, 그룹토론을 거쳤고, 현재 팀별 실행과제와 세부계획을 세워 4주간의 실천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대하거나 눈여겨보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아직 활동 중반이니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4주간의 활동을 통해서 대단한 업적이나 성과를 낼 거라고 기대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장렬하게 실패함으로써 무언가 배우길 바라는 쪽이죠.(웃음) 전문적인 지식의 렌즈로 들여다보며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도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는 청년들이 이런 뜨거운 이슈를, 그 온도를 한번 절절히 느껴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회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화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자원을 투여할 이유가 없는 것이거든요. 기후변화가 내 문제고, 10.26 참사가 내 문제여야 비로소 무얼 해야겠다, 하고 싶다, 해야 한다가 시작됩니다. 학생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 성과에 연연하거나 모양새를 갖추려고 하기보다 창의력을 발휘하고 무모한 시도도 좀 해보고… 그러면서 공동체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실컷 고민을 한번 해보았으면 합니다. '실패노트'를 제대로 작성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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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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