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왕 전설을 통해 본 변방 강원도의 역사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깨닫게 된다.
태기왕 전설에서 변방 강원도의 모습이 확인된다.
전쟁에서 패한 태기왕이 횡성 일대로 들어왔던 것처럼, 전쟁이나 정치적 이유로 수난을 당한 사람들이 강원도로 피신했던 사례는 많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기원 기자]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깨닫게 된다.
- 신영복 <변방을 찾아서> 중에서
▲ 태기산 정상 눈 덮인 태기산 정상 |
ⓒ 이기원 |
태기왕의 행적은 전설로 전해지는데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진한의 왕이었던 태기왕이 삼랑진 전투(현재 경상도 밀양)에서 패퇴하여 횡성 일대로 들어와 재기를 도모하다가 신라군의 기습 공격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전설, 춘천을 기반으로 했던 맥국의 왕이었던 태기왕이 춘천 전투에서 패퇴하여 홍천을 거쳐 횡성으로 들어와 재기를 도모하다 다시 패하고 평창 일대로 퇴각했다는 전설로 구분된다.
태기왕을 진한의 왕으로 볼 것인지, 춘천을 근거로 했던 맥국의 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차이는 있다. 반면에 전쟁에 패해서 횡성 일대로 들어와 재기를 도모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은 유사하다.
▲ 태기왕 전설길 안내판 청일면 신대리에서 출발하여 태기 약수터, 태기산성을 거쳐 태기분교 터까지 연결되는 코스 |
ⓒ 이기원 |
▲ 태기산성 표지석 태기산성은 해발 750~1000m 높이에 축조되었고, 현재 그 일부가 남아 있다. |
ⓒ 이기원 |
태기왕 전설에서 변방 강원도의 모습이 확인된다. 전쟁에서 패한 태기왕이 횡성 일대로 들어왔던 것처럼, 전쟁이나 정치적 이유로 수난을 당한 사람들이 강원도로 피신했던 사례는 많다. 신라 하대 왕족으로 태어난 아기 궁예는 왕위쟁탈전의 소용돌이에서 구하기 위해 궁녀들의 손을 거쳐 영월 세달사로 피했다.
임진왜란 당시 깊은 산과 골짜기가 많은 강원도는 한양 일대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피난처였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은 이필제의 난 이후 가혹해진 탄압을 피해 강원도로 들어왔다.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했던 사람 중 일부는 혁명이 실패한 후 강원도 산골로 숨어들었다.
추적과 탄압 속에서 단지 목숨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태기왕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궁예는 원주를 기반으로 중부 일대를 장악하고 후고구려를 세웠다. 최시형은 강원도에서 꺼져가던 동학의 불씨를 되살려 동학농민혁명의 토대를 만들었다.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다 강원도 산골로 숨어든 사람들은 항일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다. 주류들의 삶과 거리가 멀었고, 사방이 심심산골이었던 변방 강원도는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품어주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제 계정의 페이스북에도 실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밤중 30회 전화 건 스토커...안 받았더니 황당한 일이
-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평소보다 20만원 더... 난방비 폭탄이 불러온 후폭풍
- "국토부장관 말대로 다 했는데도 사기당했다"
- 아들에게 물어봤다... "덴마크에서 1년 살아볼래?"
- '안창호 비난 기사'에 격분한 청년들, 임시정부 습격
- [영상] 숨진 딸 손도 못 댄 그날, 이상했던 경찰의 단어들
- '전교조'를 향한 학부모의 돌발 반문, 순간 당황했습니다
- 북한 "미국의 그 어떤 군사 기도에도 초강력 대응하겠다"
- [단독] '순결 조례안' 제안 단체 목사 "그게 조롱받을 내용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