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7광구의 꿈

김현기 입력 2023. 2. 2. 00:56 수정 2023. 2. 2.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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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공동개발 종료 앞으로 2년 여
손 놓고 있으면 일본 품으로 넘어가
난방비 폭탄 국민에 '꿈'은 남겨줘야

#1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이 세상에 너의 모습 드러낼 때는 두 손 높이 하늘 향해 반겨 맞으리/제7광구 제7광구 제7광구"

45년 전인 1978년 가수 정난이의 히트곡 '제7광구 검은 진주'의 가사다. 여기서 검은 진주는 물론 석유다.

76년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영일만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산유국의 꿈에 부풀어 올랐다.

이어 그 꿈을 키운 게 7광구였다. 제주도 남쪽과 일본 규슈 서쪽 사이에 위치한 대륙붕으로, 면적은 무려 서울의 124배.

한·일 공동개발구역인 7광구의 위치


미국 해군 해양연구소나 유엔에선 이곳의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이 72억t에 이를 있을 것으로 봤다. 흑해 유전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수준.

박 대통령은 일본과 신경전을 벌였다. 7광구가 지리적으로는 일본과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각각 50% 지분으로 50년간 공동개발하기로 협정을 맺었다. 78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일본의 독식을 막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실제 당시 우리에겐 해저 원유가스를 개발할 기술도, 돈도 없었다.

그러나 이후 우리 기억 속에서, 뉴스 속에서 7광구의 꿈은 사라져갔다. 일본이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공동개발에 응하지 않으면서다. 일본은 왜 그랬을까.

#2 이 시점에 케케묵은 7광구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든 이유는 단 하나. 공동개발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협정은 2028년 6월 22일에 만료한다. 다만 그보다 3년 전인 2025년 6월부터 어느 한쪽이 종료를 통보할 수 있다.

문제는 유엔 해양법이 94년부터 바뀌어 7광구 공동개발구역 90%가량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 속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앞으로 2년가량 이대로 손 놓고 있으면 검은 진주 7광구는 사실상 일본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이 "경제성 없다"란 이유를 대고 물러섰던 진짜 이유일 수 있다.

사실 우리는 7광구에 얼마나 많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지 모른다.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된 시추 한 번 못해 보고 일본 탓만 하며 접어서야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꿀 먹은 벙어리다.

2011년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 '7광구'의 포스터


#3 한·일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자 배상 문제를 놓고 막판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소식통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제3자 대위변제'로 조속히 마무리하고 2월 조기 정상회담으로 가려던 당초 계획은 3~4월로 미뤄지는 분위기다. 국장급 회담과 별도로 고위급 담판도 추진되고 있다 한다. 현명한 판단이다. 끝까지 할 건 해야 하는 법이다.

이번 징용자 문제에서도 봤듯 외교의 핵심은 협상력이다. 그게 없으면 필패다. 그리고 협상력의 요체는 치밀한 전략, 다양한 외교카드의 적절한 구사다.

예컨대 이번 징용자 문제도 사실상 파기 상태가 된 위안부 합의의 복원 등과 연계시켜 밀고 당겼으면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담론을 모색했어야 할 외교부의 전략 파트, 국립외교원이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일본은 외무성 내에 전반적 외교 전략을 다루는 종합외교정책국 외교관만 70명이나 된다. 우리와 비교가 안 된다. 우리도 보강하고, 필요하다면 뜯어고쳐야 한다.

지난해 7월 18일 일본 도쿄의 외무성 이쿠라공관에서 박진 한국 외교부 장관(왼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 외상이 회담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또 향후 한·일 관계를 다룸에 있어 '포스트 징용자 배상 문제'도 염두에 둬야 한다. 7광구는 그 하나가 될 수 있다.

과거사 수습이 아닌 미래 먹거리 개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현실적이고 보다 절실하다.

▶협정 연장 추진 ▶공동개발 조기 착수 등 뭐라도 해야 한다.

필요하면 두 나라 정상이 담판에 나서고, 경우에 따라선 후쿠시마 오염수 등 일본이 아파하는 문제를 외교카드로 쓸 수도 있을 게다. 점잖게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세계 5위 석유 수입국 대한민국, 난방비 폭탄에 한숨 쉬는 국민들에게 적어도 7광구의 꿈 정도는 남겨줘야 하지 않겠나.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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