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진도준이 될 순 없어도

김경희 2023. 2. 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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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경제부 기자

20대 공무원 A는 지난해부터 매주 로또를 산다. 물가도 금리도 치솟았지만, 실질임금은 도무지 오르지 않는 시대에 로또만이 비빌 언덕이라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물가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4만9000원으로, 전년 동기와 같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는 5.1%나 뛰었다. 월급이 올라봤자 통장을 스칠 뿐이란 얘기다.

불황을 먹고 자라는 복권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잘 팔린다. 지난해 복권 판매액은 6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19년까지 4조원대를 유지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5조원을 돌파하더니, 2년 만에 6조원대로 진입했다. 경기 흐름을 그대로 반영하는 수치다.

30대 회사원 B는 요즘 ‘보복소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짠테크’가 유행인 시대 흐름에 다소 역행하는 것 같지만 그는 자신만의 생존법이라고 항변한다. 월급의 일부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 써야만 또다시 팍팍한 일상을 살아갈 동력이 생긴단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보복소비가 꼭 자신만을 위한 건 아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지난해 4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4%다. 2020년 상반기 이후 첫 분기별 역성장이다. 수출 부진에 민간 소비까지 얼어붙으면 올해 1분기도 마이너스 성장일 거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한국은행은 1월 개인 신용카드 사용액이 전년 대비 증가 추세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복소비는 침체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측면에서 일종의 애국이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高) 시대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영끌’ ‘빚투’ 등 시류에 휘말리지 않고 중심을 잡았더라면, 지금 저평가된 부동산이나 주식을 사서 자산을 늘릴 수 있었을 거란 가정을 해봐야 속만 상할 뿐이다. 로또 구매나 보복소비가 주는 위안도 효과가 길진 않은 것 같다.

“이제 시작이다. 당신의 위기, 나의 기회.” 지난해 말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주인공 진도준이 한 말이다.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달러당 원화값은 1900원대까지 하락했던 시절, 미래에서 왔기에 모든 걸 알고 있던 진도준은 미국 주식 아마존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사이클’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우리가 진도준이 될 순 없어도, 단지 대리만족에 그치진 말았으면 한다. 경제 공부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김경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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