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이 그리는 ‘완전히 새로운’ 현대차, 어떤 모습일까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3. 2.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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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리셋…‘메이드 바이 현대차’ OS 도전

최근 미국 자동차 전문 매체인 ‘모터트렌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했다. 수년 전부터 글로벌 주요 매체에서 정 회장을 ‘파워피플’로 꼽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 이들 매체가 주목한 공통점은 정 회장이 앞세운 비전이다. 그가 그리는 ‘완전히 새로운 현대차’를 분석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뽑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현대차그룹 제공)
1. 독자적 OS로 차별적 지위

주행 데이터 기반 핵심 역량 구축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자동차’로 전환하겠다.” (지난 1월 3일, 신년회)

자율주행차를 비롯한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경쟁력(Core Capability)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소프트웨어다. 모빌리티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차량)’로 규정된다. SDV는 소프트웨어가 주행 성능을 비롯해 각종 기능, 품질까지 규정하는 차량을 뜻한다. 기존 자동차 산업은 장치 산업으로 진입장벽이 컸지만 자율주행차는 그렇지 않다. 소프트웨어 경쟁력만 확보한다면 신규 진입자라도 하이엔드 마켓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애플을 비롯 자동차 제조경험이 전무한 IT 기업이 호시탐탐 자율주행차 시장 공략을 노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렇다고 모빌리티가 기존 소프트웨어 기반 빅테크에 호락호락한 시장인 것은 아니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차량 상태, 운전자 습관, 차량 위치·운행 정보 등이 담긴 방대한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애플카’가 뜬소문만 무성한 채 이렇다 할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 것도 주행 데이터를 둘러싼 완성차업계의 견제가 워낙 크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런 인식은 정 회장의 발언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최근 신년사에서 “독자적인 운영체제(OS)를 확실히 구축하겠다”며 “데이터만큼은 확실히 장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율주행에 있어서 내연기관의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은 차량 관제·관리시스템(FMS)이다. FMS는 차량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관제 시스템으로 전송해 통합 관리하는 체계다. 현대차그룹에서는 네이버랩 출신 송창현 대표가 이끄는 ‘TaaS(서비스형 운송)본부’에서 FMS 개발을 총괄한다.

최근 엿볼 수 있는 정 회장의 인식 전환이나 비전 전파 노력은 선대 회장인 정몽구 명예회장과 명확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실제 학계에서는 기술 변화의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기술 개발 못지않게 최고경영진의 인지적 관성(Cognitive Inertia)에 조직의 명운이 갈린다는 점을 지적해왔다.

메리 트립사스(Mary Tripsas) UC산타바바라대 교수와 지오반니 가베티(Giovanni Gavetti) 다트머스대 교수는 2017년 ‘역량, 인지 그리고 관성: 디지털 이미징으로부터의 증거’ 논문에서 선두 기업이 급진적인 기술 변화의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메커니즘을 디지털 카메라 산업을 대상으로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필름 카메라 기업 폴라로이드 경영진은 카메라 산업의 구조가 즉석 사진에서 디지털로 헤게모니가 옮겨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 디지털을 접목하는 전략적 의사 결정을 단행하는 데 실패했다. 두 교수는 논문에서 “급진적인 기술 환경에 처한 기업이라면 오직 기술 관련 역량의 개발이 필요한 변화인지 혹은 기존 기술과 구분되는 새로운 관점의 전략적 시각, 믿음이 요구되는 변화인지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 통합적인 R&D 역량

내연기관·SW 융합 주력

송창현 대표가 이끄는 TaaS본부 외에 정 회장 시대에 주목받는 또 다른 조직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크래프톤타워에 위치한 ‘선행기술원(IATD)’이다. 이 조직은 2021년 1월 설립됐다. 선행기술원은 정 회장 직속 조직으로 하드웨어 기반의 남양연구소와 역할이 구분된다. 선행기술원은 미래차 관련 연구개발 인력을 한데 모아 전동화 시스템,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미래차 핵심 기술 고도화를 주도한다.

모빌리티 산업에서는 선행 기술 개발 등의 제반 과정을 신속하게 추진함으로써 실제 양산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사전에 효율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다만, 선행 기술 개발 그 자체만으로는 핵심 역량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선행 기술 개발과 양산 과정에서 상호 연관된 분산된 역량을 조직 내부에서 조율하고 통합하는 역량이다. 다시 말해, 선행 기술 개발 과정에 연관된 엔지니어들과 양산 과정에 배치된 엔지니어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통합돼 있는지, 또 이를 통해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남양연구소와 판교 선행기술원 사이 ‘보이지 않는 갈등’이 적지 않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흔히 이를 두고 ‘NIH(Not Invented Here)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관료화된 연구 조직에서는 자신들이 이룬 성과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외부 아이디어나 기술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마케팅, 재무, 인사,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갈등 중재, 부서 간 상호 협력과 통합 도출 등이 가능한 ‘헤비웨이트 리더(Heavyweight Leader)’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3. 조직 정체성 ‘리빌딩’

‘Learning by doing’ 권장

두 번째 비전 키워드는 조직문화 혁신이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비교해 정 회장 체제에서 두드러지는 대목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과거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 때는 ‘내실 경영’ ‘품질 경영’이 화두였다. ‘품질에 실패한 경영진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일관된 인사 메시지였다.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은 효율성(Efficiency)에 기반한 점진적(Incremental) 기술 개발을 지향한다. 반면, 소프트웨어에 기반한 모빌리티 산업의 속성은 전혀 다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는 조직 내부의 혁신을 생성하고 전파하는 데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 정 회장의 일관된 메시지다.

실제 게리 피사노(Gary P. Pisano) 하버드대 교수는 조직의 학습 전략을 해당 조직이 속한 산업의 지식 구조와 성숙도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996년, Research Policy). 논문에 따르면, 지식 구조의 변동성이 크고 지식 축적도가 낮은 산업에서는 ‘Learning by doing’이 제품 개발에 더욱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모빌리티처럼 단절적 기술 변화가 수시로 빚어지는 분야에서는 직접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지식의 활용에 주력하는 것이 제품 개발에 더욱 효율적인 전략이라는 게 논문의 주장이다.

다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무엇보다 어떤 조직이든 현재 지위(Status)와 평판(Reputation)은 일관된 정체성(Identity)과 이에 기반한 효과적인 루틴(Routines) 구축으로 이뤄졌다는 게 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예컨대, 글로벌 완성차 ‘톱5’라는 현대차그룹의 현 지위와 평판은 ‘내연기관’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갈고닦은 것이다. 반면, 앞으로 현대차가 전환하고자 하는 방향은 소프트웨어 기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정반대의 조직 정체성 구축이 요구된다. 기존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과 긴장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실제 현대차그룹 안팎에서는 양재동으로 상징되는 내연기관 진영과 판교의 소프트웨어 진영 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결국 관건은 두 가지 대비되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빚어지는 서로 다른 혁신의 흐름(Stream)을 정 회장이 어떻게 조율하고 통합(Integration)하느냐다. 배성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리더십을 통해 서로 다른 구조, 프로세스, 문화 등을 가진 조직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4호 (2023.02.01~2023.0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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