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등짝만 붙일 수 있으면 2-2

전병선 2023. 2. 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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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편에서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암송시키려 요한복음 15장을 워드로 쳤다. 27절까지를 각각 4장씩 16매를 뽑아 알파문구에서 코팅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예수님의 인자하신 음성이 잔잔하게 컴퓨터 밖으로 흘러나오는 듯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 감사합니다. 2천 년 전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감동으로 손자 손녀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게 기도가 흘러나왔다. 이젠 공항에 아이들을 맞으러 가기 위해 환영 팻말을 만들었다. 문구점에서 카드를 구하고 스케치 북을 사다가 이어 붙이고 거기에 별과 하트를 그리고 손자 손녀들 이름을 색색으로 오려 붙였다.

사랑을 대변하는 갖가지 마스코트도 붙였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한 날. “환영한다” “사랑한다. 내 손자 손녀들.” “은비 예지 성현아!!” 우리는 반가우면 왜 눈물이 날까. 10년 만에 고국 땅을 밟으니 아이들과 중년을 맞는 딸도 공항에서 어리둥절했다.

떠날 때는 최고의 직장을 얻었으나 서른 중반에 여자의 몸으로 홀로 떠났다. 미국 워싱턴 경쟁이 치열한 그곳에서 대망의 꿈을 펼치고 ‘아름다운 가계’를 이루었다. 서로 눈물 어린 정을 나누어 안고 집에 들어오니 집안이 그득했다.

다음날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암송부터 했다. 짧은 절은 두절씩, 아침저녁 낭랑한 암송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가슴속에서 현실감이 없이 품고 있던 사랑이 얼굴과 얼굴을 대해보며 하나님 말씀을 외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매일매일 차곡차곡 계속 반복하다가 가끔 열두 제자들 동요를 외우게 했다.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마태 시몬 다데오 바돌로메라, 빌립과 도마와 알페오 아들 야고보 예수님을 잡아주던 가롯 유다라.”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다행히도 은비 예지 두 손녀는 한국말을 더듬더듬 읽을 줄 안다. 한 참 외우다 갑자기 ‘디싸이플’ 하면 ‘제자들’, ‘글로리’하면 ‘영광’하면서 천사들 모습으로 환하게 웃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곧 천국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기에 간소하게 테이블 세팅이 잘된 서울 강남구 도곡동 K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양재천을 거의 두 시간 걷고 뛰면서 과수원길, 섬 그늘 등 한국 노래만 연속해 부르기도 했다. 두루미와 물고기도 보며 하루는 롯데월드, 다음날은 코엑스, 광화문과 남산 등, 아이들은 전철 구간을 거의 외우고 있어 불편이 없었다.

주일이면 온누리교회 예배를 드렸고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손에 책을 들고 독서가 생활화되어 있는 유대인 교육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 할머니 불고기란다. 맛있다고 계속 감동하며 칭찬하며 할머니를 신명나게 하는 아이들이다.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시간이 물살처럼 흘러가고 있음이 아쉬웠다.

말씀을 암송하기 전후 기도할 때는 진지한 시간이다. 때마침 월드컵 축구경기를 볼 때는 집안이 출렁거렸다. 크리스마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여 준비해온 두터운 그림책을 매일매일 넘기며 2000년 전 그날들을 실감 나게 추억하면서 성탄을 기다렸다.

매일 저녁 입으로 시인하며 말씀을 읽는 좋은 습관이 생활화되어 있었다. 요한복음 15장 25절을 반복해서 읽혔을 때 사위가 도착해서 시댁에서 준비해둔 곳으로 옮겨 갔다.

다섯 식구의 헤어컷을 해주는 일도 내 일과 중에 있었다. 드디어 가족사진을 찍는 날은 무도회를 방불케 하는 연출의 연속이었다. 딸과 사위의 건강 검진이 있어 다시 할머니와 하룻밤을 지내며 요한복음 27절을 마무리했다.

허영심과 욕심이 전혀 없는 아이들, 무엇을 사주겠다면 “할머니 괜찮아요”, 필요한 것은 오직 책뿐이었다. 할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메모리얼 파크에 갔을 때는 더없이 진중하고 사색할 줄 아는 겸손한 아이들, 내게 이렇게 아름다운 후손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순간 들이었다.

큰 손녀는 열두 살인데 2년 전부터 계속 소설을 쓰고 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일들을 총망라해서 글을 쓰고 있다. 24시간을 배로 늘려 살고픈 막내아들이 모처럼 식사자리를 마련했다. 며칠 후면 헤어지고 언제 다시 만날지, 사촌들과 저녁 식사자리에서 화기애애한 아이들. 십여 년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데도 아이들은 함께 사는 듯 그늘이 없는 소통을 실감케 했다. 천국은 사심이 없는 천진한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 아름다운 기화요초의 꽃동산이 분명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떠나는 날 아침 일찍 할머니와 함께하는 기도 시간에 나는 주님께 간절한 고백의 기도를 드렸다. 세 자녀 한 명씩을 끌어안고 미국을 비추는 빛의 사명을 다하길 다니엘 12장 3절과 요한삼서 2절 말씀을 들고 간구했다. 줄기차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할머니 울지 말아요. 저희 또 올게요”라고 했다. “그래 고맙다. 사랑한다, 부디 행복하거라.”

시부모의 사랑과 시댁 가문의 꿈을 한 몸에 안고 사는 신실한 믿음의 딸, 엄마의 자존심이기도 한 소중한 딸이다. 나의 아버지가 내 귀에 남겨 주신 열 아들보다 더 소중한 딸아! 라며 나를 축복해 주시던 그대로 나 또한 내 딸에게 똑같은 축복을 할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

두 아들이 질투심 없이 마땅히 인정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효녀 딸이여 이 엄마 내 심장으로 온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열 아들보다 소중한 내 딸아!! 부디 복되게 살아다오. 하나님은 언제나 네 편이시다. 딸과 등짝을 붙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지만 아마도 엄마의 사랑 통신을 마음에 받아 적고 있을 것이다.(시 139 : 9)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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