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바라보는 마음, 기다리는 여유

2023. 2. 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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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창밖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헬기보다는 낮고 발전기 같은 느낌인데 무슨 소리일까.

새벽을 흔든 소음은 눈 치우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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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달호(작가·편의점주)


이른 새벽, 잠에서 깼다. 창밖에 윙윙거리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헬기보다는 낮고 발전기 같은 느낌인데 무슨 소리일까. 진원이 가깝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 기계 설비가 있었더라? 있다 하더라도 그걸 지금 왜 돌리는 걸까?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은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커튼을 걷고서야 정체를 알았다. 햇살과 함께 소복이 눈 쌓인 풍경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벽을 흔든 소음은 눈 치우는 소리였다. 요샌 눈 치울 때도 송풍기를 사용하는가 보다. 낙엽 치울 때 흔히 쓰는 송풍기 말이다. 싸륵싸륵 눈이 쌓이기 무섭게 바람의 힘으로 밀어냈을 사람들의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고 푸근했다.

폭설로 아파트 단지 앞 도로는 북새통을 이뤘다. 밤새 치웠어도 그리 많은 눈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 주민 게시판도 시끌벅적 떠들썩했다. 무슨 소리가 그리 시끄러웠냐며 항의가 쏟아진 것이다. 동네 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데 부부인 듯한 커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며칠 전엔 눈을 빨리 안 치운다고 난리더니, 오늘은 치웠다고 난리네?” “그러게 말이야. 뭘 어쩌라는 거지?”

돌아보니 그렇다. 유난히 눈이 잦은 올해, 얼마 전엔 출근길이 빙판길이라고 항의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비싼 관리비 내고 이게 뭐냐고 정중한(?) 멘트를 남긴 주민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엔 왜 치웠냐는 항변이다. 왜 ‘시끄럽게’ 치웠냐는 것이다. 다음엔 조용히 치우게 되겠지. 이젠 송풍기를 돌리지 못하고 밤새 빗자루, 삽, 넉가래 등으로 밀어내야 할 것이다. 연로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서너 배는 땀을 흘려야 한다.

1주일 뒤 다시 눈이 내렸다. 윙윙거리는 요란한 기계음이 또 새벽잠을 깨웠다. 관리소장을 만난 김에 물었다. “결국 송풍기로 결정한 겁니까?” 소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샌 단지 안에서 미끄러져도 관리사무실 책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차라리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아요.” 소음에 대한 항의를 받더라도 안전을 택하겠다는 말이다.

이래도 뭐라고 하고 저래도 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가 됐다. 생각이 다양한 것은 자연스럽고, 의견을 표현하는 행위 또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무슨 일만 벌어지면 ‘책임’에 눈을 부릅뜨는 것도 지난 수년간 유난한 풍경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 어떻게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데 의사 결정의 초점이 맞춰진다.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태도인 것 같으면서도 씁쓸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을 처벌하면 사고는 멈춰질까. 이 간단한 의문 앞에 우리는 엄숙해진다.

돌아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은 ‘처벌’인 걸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처벌이 부족해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반대로 이해와 양보가 부족해 그런 것은 아닐까. 뾰로통한 의문마저 더한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변한 지 오래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옥상에서 패거리 싸움을 벌이고, 침묵하는 다수는 ‘누가 이기든 싸움만 빨리 끝나라’고 귀를 틀어막은 세상으로 바뀐 지도 오래다. 정치적 층간 소음이 심하다. 이해, 용서, 관용, 타협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샌님 같다” 조롱받는 세상마저 됐다.

눈이 내린다. 누군가는 치워야 할 것이다. 치웠다고 뭐라고 할 것이고, 치우지 않았다고 뭐라고 할 것이다. 그 가운데 조용한 제설법이 개발될는지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다만 ‘눈이 내렸는데 어쩔 수 없지’ 하는 여유가 좀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여전한 의문을 갖는다. 바라보는 마음, 기다리는 여유도 때론 소중한 법인데. 여유를 굴복이라 여기는 사고 또한 유별나다. 밤새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소복소복 쌓였으면 좋겠다. 새하얀 풍경만큼 세상도 환해졌으면.

봉달호(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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