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이라는 복지…철회하기 힘드네요 [경영전략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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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은 재택하지 말라 하고, 팀장은 재택하라 하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요.”
설 연휴 직후, 올 들어 최강 한파가 몰아닥쳤다. 롱패딩에 목도리와 장갑, 핫팩으로 무장했어도 ‘K-직장인’의 출근길은 고달프기만 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를 이어오다 ‘출근령’에 직면한 직장인이라면 발걸음이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개발자로 일하는 A씨는 “굳이 출근을 강요하는 회사가 야속하다”고 했다. 그는 “재택 중에도 실적이 좋았는데 왜 사무실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매일 2~3시간을 지옥철에서 허비한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2년간 뉴노멀로 간주됐던 재택근무가 끝나가자 곳곳에서 노사 간 마찰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당시 발 빠르게 재택근무를 도입했던 IT(정보통신), 게임업계에서 갈등이 두드러진다.
6개월 만에 재택근무를 종료한 카카오가 대표적인 사례다. 카카오는 오는 3월부터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로 전환한다. 사실상 전면 출근제다. 그러자 직원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로 모여들었다. 카카오 본사 전체 사원 수는 지난해 6월 반기 보고서 기준 3603명이었다. 최근 노동조합 가입자가 1900명을 넘어섰다. 서승욱 ‘크루유니언’ 지회장(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은 “노조법상 과반 달성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이 경우 국내 IT업계 최초로 조합원 1만명대 규모를 확보한 과반 노조가 된다. 노조는 1년에 4차례나 바뀐 ‘오락가락 근무 정책’을 비판하며 급속도로 세를 키웠다. 특히 사무실 복귀 정책이 기폭제가 됐다는 점을 부인하는 이는 거의 없다.
주요 게임사인 엔씨소프트와 넥슨, 넷마블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재택근무를 끝내고 전원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러자 넥슨 노조인 ‘스타팅포인트’도 최근 가입률이 급격히 늘어나 35%대까지 도달했다. 성과급 불만과 함께 회사의 전면 출근 근무제가 크게 반발을 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출근령이 떨어진 기업은 한두 곳이 아니다. 제한 없이 재택근무를 사용할 수 있던 SK텔레콤도 재택근무를 주 1회로 제한한다. 당근마켓도 올해부터 기존의 전면 재택근무(필요시 주 1회 사무실 근무)에서 주 3회 사무실 출근으로 제도를 바꿨다.
비대면으론 아이디어 고갈
대면 접촉으로 소통해야 혁신
기업이 ‘아무튼 출근’을 주창하는 이유는 위기감에서다. 재택근무가 조직문화 혁신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 진짜 혁신의 길로 가려면 얼굴을 마주 보며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해야 한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렸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해 5월 일찌감치 전면 출근을 내세웠던 이유기도 하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원격 근무를 하더라도 누구나 주당 최소 40시간은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한다”며 “여기서 말하는 사무실은 원격 사무실이 아닌 실제 동료가 근무하는 사무실”이라고 못 박았다. 머스크는 “테슬라는 지구에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데 이런 작업은 원격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내가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았으면 테슬라는 일찍이 파산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대면하며 소통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창의력이 생긴다는 주장이다. 머스크는 트위터 역시 인수하자마자 재택근무를 폐지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도 대표적인 사무실 출근 옹호론자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인 2021년 2월에도 “재택근무는 우리에게 이상적이지도 새롭지도 않다”며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이런 비정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도 공개적으로 재택근무 반대론을 펼쳤다. 그는 “재택근무에는 그 어떤 장점도 없다”고 단언하며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려면 구성원끼리 둘러앉아 토론해야 하는데, 재택근무를 하면 서로 모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도 “창조성이 핵심인 콘텐츠 산업에서 동료와의 협업은 대체 불가능하다”며 3월부터 주 4회 이상 출근토록 했다.
게임과 같은 콘텐츠업계에서도 절박함이 엿보인다. 코로나19 기간 신작 가뭄이 실적 악화로 이어져 사무실 출근 체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했다는 해석이 주류였다. 엔씨소프트가 2021년 실적 발표 당시 신작 출시 지연 배경으로 “재택근무 환경을 완벽하게 만들어 생산성에 차이가 없게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국내 경영진은 재택근무를 비효율로 간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응답 62개사)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시 체감 업무 생산성이 정상 출근했을 때의 ‘90%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이 2021년 40.9%에서 지난해 29%로 줄었다. 반면 ‘80% 미만’이라는 응답은 같은 기간 19.7%에서 40.4%로 늘었다. 인사 담당자의 주관적 평가라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재택근무의 효율성에 의문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로 풀이된다.
“출퇴근 비효율 마주하기 싫어”
출근해도 혼자 일…엔데믹 블루
그러나 MZ세대의 불만을 잠재우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젊은 직원은 ‘재택근무=복지’라는 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에 달하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 개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데다, 불필요한 회식과 감정 노동도 사라진다는 게 그 이유다. 비대면 문화에 익숙한 MZ세대 사이에서는 ‘전면 재택은 연봉 1000만원의 가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사무실 출근을 시작한 직장인 가운데 ‘엔데믹 블루’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회사가 ‘재택이 출근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을 언급한다. 개발자 B씨는 “사무실에 가도 어차피 혼자 코딩 업무를 해야 하는데 굳이 출근을 하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재택근무에 따른 업무 효율성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사무실 출근을 설득했다면 수긍했을 것 같다. 이제 코로나19가 끝났으니 무조건 출근하라는 식의 일방적인 통보는 납득하기 어렵다. 재택근무를 제공하는 회사로 이직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다.” 지난해 말부터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다는 C씨의 얘기다.
전문가들은 무조건 출근만 강요하다가는 인재 유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애플이 재택근무를 해제하고 주 3회 사무실 근무 방침을 정하자 구글에서 스카우트한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개발자가 퇴사한 후 구글로 복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애플은 올 초 글라스도어가 발표하는 ‘2023년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100위권 밖으로 처음 밀려났다. 재택근무 축소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실제 한 설문조사에서 애플 직원 56%는 출근 강요로 ‘회사를 떠나고 싶다’고 응답했다.
최근 국내 설문조사에서도 근무 형태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KPR인사이트트리가 최근 이직과 퇴사에 관한 온라인상 언급 약 19만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인의 이직·퇴사 결정에 영향을 준 요인은 근무 환경과 기업 문화가 37%로 1위를 기록했다. 복리후생(24%), 직무 적합도와 성장 가능성(23%), 급여(16%) 등이 뒤를 이었다. 근무 환경과 기업 문화에 대한 관심이 2020년 31%에서 더욱 높아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포인트다. 반면 복리후생(2020년 29%)과 급여(2020년 18%)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다.
사무실 출근이 새로운 비용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넥슨은 코로나19 이후 출근 인원이 급증했는데 사내 시설이 감당하지 못해 “업무 환경이 쾌적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IT 기업 인사 담당자는 “재택근무 덕분에 증가한 인원만큼 사무 공간을 늘리지 않아도 됐다”며 “전원 출근 시 임대료가 더 들 것”이라고 귀띔했다. 글로벌 통신 기업이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삼고 사무실 규모를 크게 줄인 건 비용 절감과 효율성에 최우선 가치를 둔 사례다.
확 바뀐 조직문화 고려해야
엄격한 성과 분석 뒤 근무 조율
재택근무가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확대하는 기업도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올해부터 ‘근무지 자율 선택제’를 도입했다. 기존 주 1회 사무실 출근 제도 대신 아예 근무지 제한을 두지 않는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정해진 필수 근무 시간만 지킨다면 외국에서 일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아한형제들 측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를 경험하며 구성원에게 주어진 자율과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6개월마다 ‘전면 재택(R타입)’ ‘주 3일 이상 사무실 출근(O타입)’을 고를 수 있는 ‘커넥티드 워크’ 제도를 유지한다. 재택보다 원격에 방점을 찍은 근무 제도다. R타입을 선택했더라도 필요할 경우에는 사무실에 나와 공용 좌석에서 일해도 된다. CJ올리브네트웍스도 주 2회 재택근무 방침을 지킨다. 삼성SDS, LG CNS, SK㈜ C&C 등도 기존 유연 근무 체계를 유지한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여전히 재택 중심의 근무 체계를 운영한다. 메타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10년 이내 메타 직원 절반은 집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닉 클레그 메타 글로벌 담당 사장, 아담 모세리 인스타그램 서비스 책임자, 앨릭스 슐츠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등은 본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가 아닌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원격 업무를 본다.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형 근무 형태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무실로 출근하더라도 시간과 업무를 자유롭게 조정하는 등 근무 환경을 유연화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거점 오피스를 확대하거나 ‘완전 선택적 근로 시간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398명의 직장인들에게 향후 희망하는 근무 형태를 조사한 결과 ‘하이브리드형 근무’를 선택한 비율이 67.3%에 달했다. ‘하이브리드형 근무’를 선택한 직장인들은 주 3일 출근(47.4%)을 가장 선호했고, 주 2일(25.7%)만 출근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다.
천장현 머서코리아 부사장(경영학 박사)은 “경영진은 지난 2년간 조직문화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며 “출퇴근으로 인한 직원 고충은 없는지, 굳이 출근을 하지 않아도 효율성에 문제가 없는지, 상사와 떨어져 있는 장점을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하이브리드 오피스가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지 등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인재 유출과 조직문화 와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4호 (2023.02.01~2023.02.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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