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원망하고... '라인'이 직시한 애증의 모녀 관계
[이학후 기자]
▲ <라인> 영화 포스터 |
ⓒ M&M 인터내셔널 |
영화 <라인>(2022)의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부드러운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슬로우 모션을 사용하여 화병, 도자기, 악보, 레코드판 등 물건이 벽을 향해 날아가고 딸 마르가레트가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크리스티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마치 아름다운 안무로 짜인 폭력적인 발레처럼 보여준다. 여성 간의 폭력, 그것도 (곧 밝혀지지만) 딸과 엄마 사이에 벌어진 폭력을 담았다는 건 참으로 놀랍다. 배경 음악 외에 어떠한 소리도 담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왜 싸우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가 여성의 폭력을 다루고 싶다는 걸 짐작할 따름이다.
가족과 경계에 주목한 감독
<라인>의 연출을 맡은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은 줄곧 '가족'과 '경계'를 탐구해왔다.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데뷔작 <홈>(2008)은 집 앞에 고속도로가 생기게 된 가족이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서 고속도로는 가족과 외부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를 만들었다.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 M&M 인터내셔널 |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극영화 <라인> 역시 가족과 경계에 대해 말한다. 경계를 뜻하는 제목 '라인'은 극 중에서 마르가레트가 어머니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체적인 '선'을 의미한다.
동시에 혈연으로 연결된 굴레로서의 '라인',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보이는 선 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으로서의 '라인', 한쪽으로만 치닫는 충돌의 '라인' 등 가족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쓰인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과 경계를 폭력적인 여성을 통해 탐구한다는 점이다.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은 '여성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 M&M 인터내셔널 |
영화 속에서 마르가레트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등 몸에서 분출하는 '보이는' 폭력을 보여준다. 반면에 솔리스트를 꿈꾸었던 어머니 크리스티나는 출산으로 인하여 꿈이 좌절되었다고 후회하며 자식들을 교묘히 학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크리스티나의 폭력에 세 딸은 다르게 반응한다. 마르가레트는 물리적 폭력으로 맞서고 루이즈는 결혼하여 독립하였으며 막내 마리옹은 종교로 피신한다. 마르가레트가 마리옹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와의 마찰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하여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처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라인>에서 '음악'과 '장소'는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음악은 인물들을 묶어주는 매개물과 같다. 어머니로부터 마르가레트, 그리고 다시 마리옹에게 전해지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은 음악이다. 음악은 인물들에게 애정 결핍을 채워주는 보완재이며 마르가레트에겐 언어 불능을 대신하는 수단이다.
카메라가 잡은 장소의 추위와 쌓인 눈은 가족들의 심리 상황과 거리 상태와 닮았다. 마르가레트와 마리옹이 노래 연습을 하는 집 앞 공터는 각각의 인물이 이해, 후회, 화해 등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경계(이곳은 파란색 페인트로 100m 경계가 표시된 지역이다)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 M&M 인터내셔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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