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고, 원망하고... '라인'이 직시한 애증의 모녀 관계

이학후 2023. 1. 3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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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라인>

[이학후 기자]

▲ <라인> 영화 포스터
ⓒ M&M 인터내셔널
자기중심적인데 수시로 애인이 바뀌는 어머니 크리스티나(발레리아 브루니 테네스키 분)와 말다툼을 벌이다 그만 주먹을 휘두르는 바람에 법원으로부터 3개월 동안 100m 이내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첫째 딸 마르가레트(스테파니 블렁슈 분). 집에서 쫓겨나 전 남자친구의 집에 머무는 마르가레트는 매일 가족들이 사는 집 근처로 찾아와 어린 동생 마리옹(엘리 스파그놀로 분)의 노래 연습을 도와준다. 온가족이 모이는 크리스마스 날, 결혼한 뒤 분가하여 쌍둥이를 낳은 둘째 딸 루이즈(인디아 헤어 분)와 막내 마리옹은 마음의 문을 닫은 엄마와 마르가레트의 화해를 시도한다.

영화 <라인>(2022)의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부드러운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슬로우 모션을 사용하여 화병, 도자기, 악보, 레코드판 등 물건이 벽을 향해 날아가고 딸 마르가레트가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크리스티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마치 아름다운 안무로 짜인 폭력적인 발레처럼 보여준다. 여성 간의 폭력, 그것도 (곧 밝혀지지만) 딸과 엄마 사이에 벌어진 폭력을 담았다는 건 참으로 놀랍다. 배경 음악 외에 어떠한 소리도 담지 않았기에 두 사람이 왜 싸우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가 여성의 폭력을 다루고 싶다는 걸 짐작할 따름이다.

가족과 경계에 주목한 감독

<라인>의 연출을 맡은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은 줄곧 '가족'과 '경계'를 탐구해왔다.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데뷔작 <홈>(2008)은 집 앞에 고속도로가 생기게 된 가족이 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여기서 고속도로는 가족과 외부 세계를 분리하는 경계를 만들었다.

2012년 베를린영화제 특별 은곰상을 수상한 두 번째 장편 영화 <시스터>(2012)는 알프스의 스키장에 살며 할 일 없이 지내는 누나를 부양하는 한 소년의 척박한 삶을 다룬 성장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케이블카 라인은 호화로운 스키 리조트와 이와 대비되는 비루한 아래 동네에 사는 주인공들이란 두 개의 다른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로 기능했다.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극영화 <라인> 역시 가족과 경계에 대해 말한다. 경계를 뜻하는 제목 '라인'은 극 중에서 마르가레트가 어머니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구체적인 '선'을 의미한다.

동시에 혈연으로 연결된 굴레로서의 '라인',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보이는 선 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으로서의 '라인', 한쪽으로만 치닫는 충돌의 '라인' 등 가족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상징과 은유로 쓰인다. 흥미로운 점은 가족과 경계를 폭력적인 여성을 통해 탐구한다는 점이다. 위르실라 메이에 감독은 '여성의 폭력'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영화에서 폭력은 주로 남성들에 의해 발현된다. 여성인 경우도 대개 십 대이고 대부분 약물이나 성매매와 연결된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스로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설명 필요 없이 여성 인물의 폭력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서 가족이란 주제와 연결해 보았다. 가족은 인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고 가족을 다루면 사회 정치적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영화 속에서 마르가레트는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등 몸에서 분출하는 '보이는' 폭력을 보여준다. 반면에 솔리스트를 꿈꾸었던 어머니 크리스티나는 출산으로 인하여 꿈이 좌절되었다고 후회하며 자식들을 교묘히 학대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한다.

크리스티나의 폭력에 세 딸은 다르게 반응한다. 마르가레트는 물리적 폭력으로 맞서고 루이즈는 결혼하여 독립하였으며 막내 마리옹은 종교로 피신한다. 마르가레트가 마리옹에게 각별히 신경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어머니와의 마찰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하여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처럼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라인>에서 '음악'과 '장소'는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음악은 인물들을 묶어주는 매개물과 같다. 어머니로부터 마르가레트, 그리고 다시 마리옹에게 전해지는 유일한 긍정적 유산은 음악이다. 음악은 인물들에게 애정 결핍을 채워주는 보완재이며 마르가레트에겐 언어 불능을 대신하는 수단이다. 

카메라가 잡은 장소의 추위와 쌓인 눈은 가족들의 심리 상황과 거리 상태와 닮았다. 마르가레트와 마리옹이 노래 연습을 하는 집 앞 공터는 각각의 인물이 이해, 후회, 화해 등 여러 감정을 느끼는 경계(이곳은 파란색 페인트로 100m 경계가 표시된 지역이다)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라인>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길 바라는 애증의 모녀 관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미국 매체 <데드라인>의 평자는 "가족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매혹적 통찰"이라며 가족 관계의 묘사를 높이 샀고 '디무비스'는 "엄마와 딸의 마주치지 못하는 시선에 대한 감동적 고찰"이라며 흔히 볼 수 없는 여성 중심의 접근을 평가했다. 참고로 근래 개봉한 한국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2)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으니 비교해서 보시길 추천한다.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작.
 
▲ <라인> 영화의 한 장면
ⓒ M&M 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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