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공룡 독점깨기…빅테크 '개혁'인가 '배싱'인가
[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빅테크 규제를 위한 미국 정부와 정치권의 공세가 거세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을 바로잡기 위해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기술 기업이 소비자 후생을 증대시키고, 사전적 규제가 혁신을 늦추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진흥에 방점을 둔 정부 기조 덕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빅테크의 독점구조에 조 바이든 행정부는 개혁을 이룰 수 있을까.
◆"방종의 시대는 끝났다"= 미 법무부는 올 들어 다시 한 번 빅테크 규제에 팔을 걷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 디지털 광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구글을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고소하고, 최대 수익원인 광고 부문 사업 퇴출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구글은 (자사의) 디지털 광고 기술 지배력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거나 이 위협의 정도를 약화하기 위해 반경쟁적이고, 배타적이며, 불법적인 수단을 썼다"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은 구글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는지, 중소업체와의 거래에서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하는 등의 남용행위가 있었는지에 맞춰져 있다. 법무부는 구글의 독점력이 상생을 저해하고 생태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무부의 소송은 '셔먼법(반독점법)’을 근간으로 한다. 법무부는 검색엔진 시장에서 90%(모바일 95%)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구글이 검색 서비스를 근간으로 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통제하면서 불공정한 시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검색’만 하고 ‘검증’은 어렵다?= 하지만 법무부의 이 같은 행보가 실효성 있는 제재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말뿐인 빅테크 규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빅테크의 사업행위 전반을 규제할 실질적 법적 장치가 부재하다며, (미 정부와 정치권의) 빅테크에 대한 규제는 말뿐이고 행동은 없다"고 평했다.
미 규제당국이 빅테크를 정조준하고 있지만, 현 제도 상 이들의 반독점 폐해를 입증하는 건 쉽지 않다고 봤다. 현행법상 빅테크를 타깃으로 한 명확한 법률적 규제 장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셔먼법은 1890년 미국 연방의회에서 각 주 간, 국가간 거래에서의 독점 등을 금지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로, 빅테크를 정조준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다.
광고 산업 속성상 시장 구획이 어렵고 불공정성을 입증할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2020년 미 FTC가 페이스북을 반독점 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당시 재판부는 ‘불공정성을 입증할 법률적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판결했다.
포린폴리시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빅테크에 대한 미 정부의 법적 견제가 너무 늦고, 방법도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미 백악관과 민주당이 주도로 한 핵심 반독점법안들은 보수 여론에 부딪혀 대부분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빅테크 규제 수위와 범위를 두고 백가쟁명식 논쟁만 이어갔다.
현재 의회에는 빅테크들의 자사 우대에 대한 전방위적 규제안을 담은 미국 온라인 시장의 혁신 및 선택에 관한 법’, 특정 시장에서 경쟁사를 제거하기 위한 M&A 시도에 제동을 거는 법안, 시가총액 1000억달러 이상의 기업이 경쟁사를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21세기 반독점법안’ 등이 계류 중이다.
임기 반환점을 돈, 바이든 행정부가 ‘신 브랜다이스’를 앞세워 빅테크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아마존 저승사자’로 불리는 리나 칸 FTC 위원장과 구글 저격수로 불리는 조나단 캔터 법무부 반독점국장, ‘거대함의 저주’를 저술한 팀 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기술·경쟁정책 특별보좌관 등이 대표적인 신 브랜다이즈 학파다.
‘거대한 기업은 그 자체로 사악하다’고 믿는 신 브랜다이스는 20세기 초 독과점 기업에 맞서 싸운 미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들은 비대해진 기업이 기술의 혁신, 시장의 발전, 노동자 이익을 저해한다며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해 기업 해체를 주장했다. 이들은 1966년 당시 합병을 추진하는 두 유통업체 간 합병 후 점유율이 8%가 넘는다는 이유로 합병을 저지했던 강성 반독점 규제론자들이다.
◆권력 분점에 입법화 제동 위기= 올해부터는 입법 권한을 쥐고 있는 하원이 공화당에 넘어감에 따라 계류 중인 빅테크 규제 법안 통과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재선 성공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기업 배싱(기업 때리기)’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반독점법 전문가인 허버트 호벤캠프 펜실베니아대 법학교수는 "오늘날 빅테크의 독점력 남용은 과거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과 같은 거대 카르텔이 약탈적으로 높은 가격을 부과해 소비자 피해가 속출했던 과거와는 그 양상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낮은 가격과 무료 배송으로 소비자 편익을 끌어올리고(아마존), 무료로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기업(메타, 트위터 등)들을 단죄할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빅테크가 소비자 후생을 오히려 증대시킨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세계 각국에서도 빅테크의 독점 폐해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주력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 규제 당국은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디지털시장법(DMA)·디지털서비스법(DSA)을 통과시켰다. 독일 규제 당국의 경우 EU의 DMA·DSA보다 더 강력한 독일 경쟁법 ‘19a’조를 시행하고 있다. 다만 이들 법안을 통한 처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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