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달라스에서 할릴호지치까지, 후보는 많은데 '기준'이 안보인다

이준목 2023. 1. 3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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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질의 답하는 미하엘 뮐러 신임 축협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 미하엘 뮐러 신임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공석이 된 한국 축구대표팀의 차기 감독 선임을 놓고 축구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벌써 몇몇 유명 감독들의 이름이 후보군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무성한 소문들에 대하여 아직까지 확실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까지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이번에도 '외국인 감독'이 우선순위 협상대상이라는 사실 뿐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대표팀 육성과 관리를 책임지는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에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인 마하엘 뮐러를 임명한 것도 외국인 감독 영입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한국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감독들은 호세 보르달라스(스페인), 치치(브라질), 토르스텐 핑크-위르겐 클린스만(이상 독일), 마르셀로 비엘사(아르헨티나), 바히드 할릴호지치(보스니아) 등이 있다. 대부분 유럽이나 세계무대에서 명망이 검증된 지도자들이다. 외신에서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된 인물들을 공개했고, 몇몇은 본인이 먼저 한국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물들도 있다. 다만 축구협회가 실제로 이들과 접촉하여 협상을 진행했는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지금까지 후보군으로 거론된 감독들 중에서 명분이나 실리면에서 모두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후보들 중 인지도가 높은 세계적인 감독으로는 클린스만-비엘사-치치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감독들을 영입하려면 일단 '몸값'이 너무 비싸다.

벤투 전 감독(포르투갈)의 연봉이 135만 달러(약 16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을 영입하려면 감독 개인에게만 적게는 40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의 이상의 비용을 투자해야 할 전망이다. 여기에 벤투 감독처럼 자신의 코치진을 사단으로 대동한다면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역대 한국 대표팀 감독 중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려진 지도자였던 경우는,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이상 네덜란드), 그리고 벤투 정도가 있다. 이들은 당시 한국이 개최국 등 월드컵 본선에 이미 직행한 상태였거나, 혹은 감독 본인이 당시 하락세여서 몸값이 떨어지고 명예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조건을 활용하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영입이 가능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축구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만한 빅네임에 몸값도 저렴한 지도자를 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보르달라스-핑크-할릴호지치 같은 감독들의 경우, 히딩크급의 세계적인 명장은 아니지만, 나름 축구계에서 명성이 있는 인물들이고 각종 조건에서 그나마 현실적인 협상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들로 꼽힌다.

그런데 이들도 저마다 장단점이 뚜렷하다. 보르달라스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자국인 스페인리그 중하위권 클럽에서 보냈고, 해외리그나 국가대표팀 지도 경력이 전무하다. 핑크 역시 아시아 리그 경험은 있지만 국가대표팀을 이끈 경험은 있다.

할릴호지치는 알제리와 일본 축구대표팀을 맡아 한국과 여러 차례 대결하며 국내 팬들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홍명보호를 격파하고 알제리를 16강에 올린 적이 있으며 2018년에도 벤투와 함께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거론된 적이 있다.

하지만 2018년 일본과 2022년 모로코 대표팀을 이끌며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루고도 대회 직전에 잇달아 경질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할릴호지치는 능력은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독선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불같은 성격 때문에 협회 및 선수들과 갈등을 빚은 전력이 화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과 모로코는 할릴호지치를 내쫓은 이후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반등했다.

한국축구도 이미 그동안 다양한 국적과 철학을 지닌 외국인 감독들을 경험했지만 모두가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쿠엘류-본프레레-슈틸리케 같이 실패한 외국인 감독들의 시행착오에서 얻은 교훈은, 외국인 감독이라고해서 이름값에만 연연하기보다는 한국축구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동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그 철학과 성실성,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2014년 당시 한국축구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네덜란드) 감독은 2010년 네덜란드 대표팀을 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끌며 주목받은 '빅네임' 지도자였지만, 대한축구협회와의 협상에서 '재택근무'같은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우다가 협상이 결렬됐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빅네임 지도자를 데려오는 것도 좋지만, 감당할 수 없는 몸값이나 조건을 요구하는 인물은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제외하는 것이 낫다는 교훈을 남겼다.

또한 '외국인 감독'이라는 타이틀에 꼭 연연할 필요도 없다. 2014년 당시 판 마르베이크 감독과의 협상이 무산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하필 협회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지도자가 울리 슈틸리케였다는 것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왔다.

슈틸리케는 선수시절에는 독일과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로 꼽히는 스타플레이어였지만, 감독으로서는 경력이 일천하던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협회가 슈틸리케를 뽑은 것은, 당시 국내파 감독들에 대한 불신 여론이 높아진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럴듯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긴 자충수였다. 결과적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월드컵 예선 중 성적부진과 각종 설화 속에 불명예 경질되며 한국축구 외국인 감독사에 손꼽히는 흑역사로 남았다.

어차피 축구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만한 거물급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게 어렵다면, 국내파 지도자에게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내파 감독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일종의 막연한 편견이다. 국내파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대한 우려보다도, 시간과 조건에 쫓겨 슈틸리케급의 어설픈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벤투 전 감독은 2018년 한국 대표팀 감독직 선임 당시 상당히 뒤늦게야 후보로 이름이 등장한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벤투가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화려한 경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추구하는 축구철학에 대한 방향성이 축협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현 말레이시아 대표팀)은 벤투와의 면접에서 '경기를 점유하고 능동적으로 지배하는 축구'를 표방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선임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벤투는 4년간 일관성 있는 점유율 축구를 표방하며 체계적인 훈련시스템과 선수관리로 한국 선수들의 지지를 받았고, 월드컵에서도 16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현재 차기 대표팀 사령탑은 외국인 감독이 유력하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어떤 기준과 철학을 추구할 것인지 알려진 게 전혀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감독 후보군들을 보면 보르달라스에서 치치, 할릴호지치까지 대륙-국적-커리어-지도스타일 등에서 비슷한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다. 벤투 시절의 점유율 철학을 꾸준히 이어갈지, 아니면 완전히 원점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모색하겠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차기 감독 선임에 실권을 쥔 뮐러 위원장은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한다. 협회와 철학이 같은 사람을 뽑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그 철학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호한 여백으로 남겼다.

스페인-브라질같은 축구 강국들이나 이웃나라인 일본만 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 대표팀만의 고유한 색깔과 연속성을 추구한다. 축구협회가 대표팀 감독 후보군의 실명을 보안에 붙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차기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것인지는 분명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외국인이든 국내파든 차기 감독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나 억측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확인되지도 않은 외국인 감독 후보군들이 언론을 통하여 난립하면서 소모적인 추측성 논쟁이 거듭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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