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또... 더는 속지 않겠다 [싫어도-살자]

성지훈 2023. 1. 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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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도-살자] 정부가 부추긴 '노조 혐오', 실은 자기혐오에 가까운

[성지훈 기자]

 지난 12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노동개혁”이라며 “노조 부패도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을 때려잡는 것으로 국정 기조를 정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지난 연말에는 노동조합의 회계를 '깜깜이'로 규정지으며 노동조합의 부패를 공직부패, 기업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지적했다.

대통령 신년사에선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면서 "노동개혁을 통해 경제 성장을 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조합이 사회의 거악이라도 된 양, 노동조합을 '악의 무리'로 선전포고하고 나선 모양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정부의 특기인 '압수수색'마저 꺼내들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노동조합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태도는 도무지 바닥이 어딘지 모르고 떨어지던 이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지난 연말 화물연대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반등을 시작했다. '간첩단' 운운하며 압수수색을 실시했다는 기사에는 '민주노총은 그럴 줄 알았다'거나, '보수정권이 역시 국가안보는 잘한다'는 댓글이 달린다. 노동조합(특히 민주노총)을 비판하고 미워하는 것이 '국민 스포츠'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곰곰히 따지고들면 윤석열 정권의 노동조합 때리기는 명확한 물적 증거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책적 효력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해 움직이기 쉽다. 이번 명절, '화물연대 빨갱이들이 그렇게 나라 망하게 하려고 안달인 이유가 다 간첩 때문이었다'고 성토하던 어른들에게 안전운임제나 노동조합의 투명한 회계운영, 또는 수백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간첩사건에서 이렇다할 증거도 나오지 않고, 체포영장 하나도 나오지 않는 아이러니에 대해 차분한 설명을 시도해 봤다면 느낄 것은 좌절감이기 쉽다. 고작 몇마디 '사실관계의 확인'만으로 뒤집을 수 없을만큼 이 사회의 노조혐오는 뿌리깊고, 윤석열 정권은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노동조합-노동운동 활동가, 또는 쟁의 중인 노동조합의 조합원들로선 억울할 일이지만 실은 이 국민 스포츠는 노동조합(특히 민주노총)이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많은 대중은 민주노총을 떠올리며 빨간 머리띠, 정규직 귀족노조, 쇠구슬, 강경일변도의 투쟁, 집단이기주의, 떼쓰기를 떠올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주노총이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민주노총이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은 어떤 것이 있는지, 민주노총의 주장과 요구들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는 알지 못한다.

민주노총이 여름마다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며 개최하는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대회를 비난하는 기사엔 '배부른 정규직 귀족노조들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온 나라가 휘청거린다'는 요지의 댓글이 달린다.

노동자의 편에 서지 않는 언론의 탓이라거나, 기사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문해력의 문제라거나, 자본과 정권의 악선전 때문이라고 하기엔 대중 일반의 인식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민주노조 운동이, 민주노총이 해 온 것이 실은 별로 없다. 노조혐오 정서는 애초부터 조장되었던 것이지만, 노동조합에서도 이를 안일하게 '방치'해온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윤석열 정부는 그저 그걸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또는 국민의힘 정권은 원래 그렇다. 아무도, 심지어는 그들의 지지자들도 그들이 노동인권을 개선하고 노동조합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 노력하고, 기업보다는 노동자를, 더 많이 가진 자들보다는 더 많이 가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정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숫자를 교묘하게 짜맞춰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열심히 그저 열심히 묵묵히 일하는 '근로자'만이 참된 시민인양 부르짖는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저열함보다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정서가 우리사회에 더 크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것이, 노동조합은 본래 대중의 지지를 얻어가며 활동하는 곳이 아니다. 사회 전반에 자리잡은 노조혐오 정서까지도 생각하며 활동해야 하는 곳은 아니다. 노동조합은 자기의 이익을 위한 이익집단으로서 활동하면 된다는 것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다.

세상의 형태가 변모하며, 혹은 한국사회의 비뚤어진 산업화 과정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고립됐고, 이 와중에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활동으로 고립되어가고 있는 것은 주어진 '불리한 상황'일 뿐이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런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테니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내는 노력은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이 해야 할 일이지 그 바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 '대중'이다. (국민이나 시민, 백성, 노동자, 더 많이 갖지 못한 사람 등등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 실은 모두 같은 대상을 지칭한다. 당장 퇴근하고 싶은 마음을 가까스로 이겨 하루를 간신히 버티며 받은 월급으로 삶을 영위하는 당신과 나) 즉 우리가 노동조합을 미워하면 정말로 행복해지는 건 누구일까. 노동조합을 미워해서 근거도 없는 간첩놀음에 속아 압수수색 정권의 지지율을 올려주고, 수십톤 트럭의 핸들을 잠은 부족한데 마음만 급한 운전자들의 손에 떠넘기는 일에 박수를 치고, 대기업은 수백조씩 돈을 쌓아놓는데도 나라에 돈이 없으니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자는 주장에 '좋아요'를 누르는 사회에서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은 누구일까.  

자기혐오에 가까운
 
 전국건설노동조합 조합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삼각지역에서 윤석열 정권규탄 및 건설노조투쟁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이제는 많이 오해가 풀렸지만 '노동'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오염돼 있다. TV쇼에서 건설 현장 노동자를 존대한답시고 '힘든 노동일을 하시는'이라고 말하는 진행자를 볼 때면 여전히 '노동'이라는 말에 뿌려진 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또 자기의 일을 '노동'이라고 선뜻 부르지 못한다. 당연히 자기 자신 역시 노동조합의 가입 대상인 '노동자'임을 인식하기도 어렵다.

노동조합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정적이 되는 지점은 여기다. 정부는 (노동조합을 악마화하지 않은 정부는 헌정이래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저 함께 미워할 대상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뉴스와 신문에 자극적인 그림과 문장 몇 개만 덧붙여서.

노동조합은 우리의 일도 아니고, 화염병 던지고 쇠구슬 쏘는 몹쓸 짓만 일삼는 것들이니 마음껏 미워하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영화 <내부자들>에 나온 대사였나, 마른오징어 던지듯 씹을 거리를 던져주면 적당히 씹다 턱이 아프면 또 일하러 갈 것이라던 대사.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우리가 씹고 있는 마른오징어가 남의 살이 아니라 실은 내 살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의 2022년 고용지표에 따르면,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의 15세 이상 경제활동 인구는 2800만 명가량이다. 이 중 임금노동자는 2100만 명,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는 260만 명가량이다.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인구 2800만 명 중 고작 260만 명, 전체 임금노동자의 12.4%, 전체 경제인구 중엔 9.3%가량만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은 '나의 일'이라기 보다는 '저들의 일'이 되기 쉽다. '노동조합이라도 있는 월급 많은 정규직 것들의 일'이라는 인식.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는 '노동'의 사전적 의미에 맞춰보면 일을 하고 있는 당신은 엄연한 노동자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노동자란 '국민의 대다수'가 아니라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일하지 않고 남의 것 빼앗아 먹고사는' 몇몇을 뺀 국민 전체인 셈이다.

만약 '이론적, 논리적, 사전적으로야 그렇지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게 바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타자화해온 사회적 과정에 의한 것이겠다. 결국 노동조합을 혐오하는 일이란 '나의 이익'을 혐오하는 자기혐오에 가깝다.

자기연민을 할 것도 아니고
 
 지난 12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파업 관련 ‘철강과 석유화학 분야 추가 업무개시명령 발동’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기자들과 일문일답 중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추경호 부총리에게 귀엣말을 전하고 있다.
ⓒ 권우성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이니,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니 하는 실은 일 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읽기도 어렵고 이해하긴 너무 귀찮은 이야기 말고, 그저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를 따져볼 수도 있다.

화물연대의 파업은 화주와 운송과정에 쏠린 돈을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주장이었다. 온정과 인정 같은 것을 다 빼놓고 생각하면 그렇다. 여기서 발생할 사회적 효과 역시 비용으로 추산할 수 있다.

밤샘 운전과 과적, 무리한 운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는 그대로 사회적 손실 비용으로 누적된다. 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돈'이 들어가는 셈이다. 

화물연대의 파업을 강경 '진압'한 정부의 노동정책을 찬성한다면 당신이 재산상의 피해와 생활의 파탄을 이유로 파업에 들어갔을 때 정부는 또다시 업무개시명령과 강제진압을 시행할 수 있는 근거를 얻게 된다.

만일 당신이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데, 최저임금을 깎는 것도 모자라 주휴수당까지 폐지하겠다는 정책에 반발해 쟁의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또는 회사에서 숱하게 발생하는 직장 갑질을 견디다 못해 노동조합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그 이유로 해고가 됐고, 이에 반발한 동료들과 쟁의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정말로 노동조합이 없으면 나라가 좀 살만해질까? 정말 당신이 살만해질까?

'방법론'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틀린 말을 했다는 게 아니야, 왜 맨날 그저 데모만 하냐고"라면서. 실은 이런 말이야말로 노조 혐오를 부추기는 이들에게 힘을 싣는 말이다. 대화로, 정책적 토의로 주장할 땐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으니 데모를 한다. (솔직히, 나도 당신도, 화물연대가 파업하기 전까진 안전운임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지 않았나.)

"조용히 말하면 관심을 주지 않을 거지만, 시끄럽게 얘기하면 안 돼"라는 말. 방식이 낡고 틀렸다는 비판은 가능하나, 방식이 틀렸으니 모든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야말로 실은 비논리적 떼쓰기에 다름 아니다.  

지면도, 유려한 글빨도, 수십만의 SNS 팔로어 없는 장삼이사인 우리가 너무 억울하고 미치고 팔짝 뛸 일을 노동조합이 없이, 혹은 거리에 나서는 일 없이, 아무에게도 불편과 소음을 주지 않고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실은 그건 조용히 있으라는 말과 다름 아니다. 

더는 속지 않겠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미움받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휠체어를 타고도 지하철에 안전하게 탈 수 있게 해달라는 사람들, 일한 만큼은 받고,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 정말 '그들'은 그저 '그들'인가. 실은 우리인 그들을 우리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굴뚝에 올라 간 해고자들, 거리에 나선 급식 노동자들, 계산대를 점거한 마트 계산원들, 톨게이트 수금원들, 자동차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배를 만드는 용접공들. 그들에게 배가 불렀고, 이기적이고, 공정하지 않다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을 할 때, 정작 그 말로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이고 또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정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 가장 행복해지는 것은 누구인가.

수전 손택은 자신의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을 연민할 필요는 없다. 그건 자기연민이니까. 다만 그저 당신이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지만을 떠올리면 된다. 당신이 연결된 곳을 찾고나면 우리가 무엇에 속고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저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난 더는 속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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