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황금망치’ 감찰, 그 치명적 유혹

2023. 1. 3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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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전 국회의원


‘떴다.’ 정부과천종합청사에 공직감찰팀이 떴다는 소문이 들려오면서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이어 그 팀이 어느 부처 차관실에 들이닥쳐 직전에 누군가 건넨 돈 봉투를 찾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04년 9월의 일이다. 정보 수집과 실행력으로 과천청사를 떨게 하던 공직감찰팀 합동조사단은 국무총리실 소속이었다.

최근 대통령실에서 국방부 사이버작전사령부가 사용 중인 건물 일부를 비워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신설될 공직감찰팀이 비위 첩보를 토대로 공직자를 직접 조사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문재인정부가) 합법을 가장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통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세평 검증을 위장해 국민 신상털기와 뒷조사를 벌여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5월에는 “대통령 비서실은 정책 위주로 해야지, 어떤 사람에 대한 비위나 이런 정보 캐는 거는 안 하는 게 맞다”며 그래서 민정수석실을 없앤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실에 감찰팀을 만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실의 공직감찰팀 신설에 대해 “용산(대통령실)이 왜 이런 조직 결정을 했느냐는 건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공직감찰팀이 차관실을 급습했던 2004년 당시 한 총리는 그 팀을 지휘하는 국무조정실장이었다.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공직감찰팀이 필요하다면 대통령실에 들어오는 여러 첩보나 정보를 총리실에서 조사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굳이 대통령실이 직접 나설 일이 아니다.

대통령실 규정을 어떻게 만들든 공직기강비서관 휘하에 조사팀을 두고 직접 수사를 지휘하면 월권의 소지가 있다. 대통령실 소속 직원으로 편제하지 않고, 검찰 경찰 등에서 파견받은 인원들이 원래 소속된 사정기관의 권한을 행사하도록 한다면 그 역시 편법이다. 김대중정부에는 사직동팀이 있었고, 문재인정부에는 반부패비서관실의 특별감찰반(특감반)이 있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맞다. 그러나 사직동팀은 결국 논란 끝에 해체됐고, 문정부 특감반도 그런 점에서 적절하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다. 민정수석실에서 특정인의 감찰을 막았다는 이른바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민간인 사찰 사건’이 일어났다. 사찰 사실을 은폐하고 무마하기 위해 국가정보원 자금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 사건을 수사해 기소한 게 바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윤 대통령의 특수부였다. 혹여 윤 대통령이 그 경험 때문에 총리실에 감찰팀을 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답을 잘못 찾은 게 아닐까. 문제는 사람에게 있다. 공직감찰팀을 민간인 뒷조사하는 조직으로 변질시킨 것은 이른바 MB맨들이었다. 대통령실과 총리실에 포진해 정보와 권력을 사유화한 사람들 말이다. 지금 대통령실이 신설하려는 감찰팀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민정수석실이 폐지된 지금의 대통령실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은 이미 강력한 직위다. 그 자리에 윤 대통령은 부하 직원이었던 검사 출신을 발탁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관련 논란에도 중책을 맡겨 절대적 신임을 보여줬다.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이 감찰팀 신설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더 위험한 권력의 집중이 이뤄지는 격이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우기보다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고 내부 단속하기에 급급한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의 분위기도 문제다. 정치인이건 공무원이건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과 의심에 사로잡혀 있어 감찰팀이 혹시 충성도 감별사 역할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망치를 들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고 ‘황금망치의 법칙’을 설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에게는 망치 말고도 많은 도구가 있다. 게다가 공무원들은 망치질을 해서 박아야 하는 못이 아니다. 내 편 네 편 갈라서 뒷조사할 게 아니라면, 부패비리 방지 목적에 충실하게 총리실 감찰팀을 보강해주면 된다. 감찰이라는 망치의 힘이 너무 세져 불법이나 탈법으로 향한다면 반드시 사달이 나게 돼 있다. 역대 정부에서 그랬듯이.

여기서 남은 의문. 3년째 자리를 못 잡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7년째 개점 휴업 중인 특별감찰관은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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