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영걸 (9) 세상과 단절한 채 장신대 신대원 목표로 입시 준비

박용미 2023. 1. 30.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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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신학대학원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 졸업 후 장신대 신대원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이미 원서 접수가 마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매일 성경 보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했고 신대원에 진학해서 주의 종이 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준비해서 다음 해 다시 장신대 신대원에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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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바로 시험 치려다 원서 마감 돼
1년간 TV·신문 끊고 독서실서 성경공부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의 종 되겠다 맹세
김영걸(원 안) 목사가 장신대 신대원 시절 경기도 남양주 천마산 기도원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면 신학대학원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미 대학교 4학년 때 졸업학점을 다 이수해 ‘서양철학사’나 ‘사회계층과 계급론’ 등 전공이 아닌 과목을 수강 신청해서 들었다. 신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을 듣고 싶어서였다.

철학과나 사회학과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훗날 여성가족부 장관을 맡게 되는 장하진 사회학과 교수님께서 “이과대학 학생이 왜 사회학과 수업을 듣느냐”고 물었을 때 “신학을 하려고 하는데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서 공부하고 있다”고 대답했던 기억도 난다.

대학 졸업 후 장신대 신대원 시험을 보려고 했는데 이미 원서 접수가 마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는 신대원에 대한 정보를 목사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기 힘든 시절이었다. 어쩔 수 없이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광야 훈련’ 시키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을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보냈기 때문이다.

그 1년간 나는 친구도 만나지 않았고 신문이나 TV 등 모든 세상의 소식을 끊었다. 오전 5시에 일어나면 바로 독서실로 달려갔고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독서실에서 나는 성경을 다 내 영혼 속에 집어넣을 기세로 읽었다. 신대원 입시 조건에 맞춰 영어와 상식도 준비했다. 기도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때가 내 인생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 대학 졸업 후 늦은 나이에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내가 패배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그 1년은 가장 기쁜 시간이었다. 매일 성경 보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했고 신대원에 진학해서 주의 종이 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에 분명한 목표를 세우니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었다.

세상과 단절한 채 1년을 보내니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듯했다. 영적으로 충만한 시절이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나를 보고 웃고 계셨다. 인생에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준비해서 다음 해 다시 장신대 신대원에 응시했다. 준비를 많이 했지만, 고사장에 들어가니 떨리고 긴장됐다. 그해 시험은 어려웠고 주변의 응시생들은 모두 나보다 실력이 뛰어나 보였다. 시험이 끝나고 고사장을 나오면서 한편으론 낙심이 됐지만 다른 한편으론 “불합격이 된다 해도 다시 잘 준비해서 입학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에는 합격자 발표를 보려면 학교로 직접 가야 했다. 합격자 발표 날 신대원을 찾아가 내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있는 걸 확인했다. “드디어 신대원에 입학하는구나, 내가 목사의 길로 접어들었구나”하는 기쁨과 동시에 나를 위해 평생 기도해주시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눈물이 흘렀다.

합격을 확인한 그 날 밤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렸다. 아버지는 목이 멘 채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셨다.

1987년 신대원에 입학하고 보니 훌륭한 동기와 선후배들이 참 많았다. 그들과 함께 보낸 신대원 3년은 내 인생 중 가장 흥분되는 시간이었다.

정리=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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