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 내년 총선까지 일 안하고 논다? 냉소 부른 그 사건 [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입력 2023. 1. 30. 01:03 수정 2023. 1. 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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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됐지만 '인사 동맥경화'
위·아래 총체적 복지부동 만연
'3대 개혁'에 공직 개혁 추가해야
장세정 논설위원

"내년 총선까지는 제대로 일하기가 어렵다." "승진하겠다고 나서다 블랙리스트로 몰리면 저만 손해다." 요즘 사석에서 공무원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토로하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자의든 타의든 상하 막론하고 총체적 복지부동(伏地不動)이 만연해 우려스럽다.

2018년 당시 청와대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정해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 성공회대 교수 출신인 정 위원장은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 혁명 이론에 밝다고 한다.[연합뉴스]

실·국장급 이상 고위직은 장·차관과 대통령실 눈치를 살피고, 하위직으로 가면 '배 째라'는 냉소적 분위기가 넘친다. 일을 제대로 시키는 상급자도 없고, 성실히 일하는 하급자도 드물다 보니 감사원이 탈탈 털어도 먼지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는 차라리 헛웃음이 나온다. 납세자 국민이 볼 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공직사회가 이 지경이 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2018년 공무원노조(전공노) 합법화 여파,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민간기업의 '직장 내 괴롭힘(갑질) 금지법'이 공직사회에 준 영향, 지난 5년 집값 폭등에 따른 하위직들의 '벼락 거지' 박탈감,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근로조건이 크게 좋아진 민간 기업으로 무더기 전직에 따른 후유증도 크다.

2017년 7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은경 환경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조국 당시 민정수석. 김 전 장관은 '블랙리스트'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됐다.[청와대사진기자단]

공무원들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그에 따른 전반적 인사 파행을 지목한다. 인사 순환이 제대로 안 되니 공직사회에 활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얘기다. 정권교체 8개월이 지났지만, 각 부처 인사 상황을 보면 요로마다 '묵은 때'와 '혈전(血栓)'이 잔뜩 끼어 동맥경화가 심각하다. 공공부문 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350개 공공 기관의 기관장과 임원 3080명 중 문 정부 시절 임명한 인사 2655명(86.2%)이 안 나가고 버티고 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임기 말에 자기 진영 사람을 요직에 대거 앉힌 '알박기' 인사의 부작용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와중에 2017년 집권한 문재인 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중앙부처들의 경우 운영지원과장(옛 총무과장)들이 물갈이 인사의 총대를 주로 멨다는 것이 정설이다. 산하 기관장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사표를 종용·압박했고, 대부분 당시 관행대로 조용히 물러났다. 그 와중에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져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징역 2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지난 19일 검찰은 블랙리스트 책임을 물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조현옥 전 인사수석과 김봉준 전 인사비서관 등 5명을 재판에 넘겼다.

2020년 1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조현옥 주독일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 정부 청와대에서 초대 인사수석을 지낸 조 전 대사는 '블랙리스트' 혐의로 최근 검찰에 기소됐다.[사진기자협회]

실제로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자리를 고수하는 고위 공직자를 양산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문 정부 시절 각종 권력형 부정부패가 만연했는데도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정치권의 질타를 받았지만, 사퇴론에 맞서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종편 재승인 심사 개입 혐의로 방통위 과장이 지난 11일 구속되자 "참담하다"면서도 본인 사퇴는 거부했다.
성공회대 교수 출신의 정해구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의 거취도 뜨거운 감자다. 그는 2017년 6월 좌파 인사 등으로 구성된 '국가정보원(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 기밀이 가득한 국정원 메인 서버를 열람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에 의해 서훈 전 국정원장과 함께 검찰에 고발됐다. 그는 2021년 3월 정부 싱크탱크를 총괄하는 요직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자리를 차지했다. 정권 교체 이후 법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버티고 있다. 문 정부 이념에 치우친 인사들은 마치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진지전(陣地戰) 혁명 전략을 응용한 듯 곳곳에 진지를 구축한 형세다.
공직사회에서 물갈이 인사가 가로막히면 국가경쟁력을 좀 먹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과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윤 정부는 공직사회 기강을 다잡겠다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공직 감찰팀을 신설하고, 총리실에는 고위 공직자 감찰을 전담할 감찰팀을 추가로 만든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감찰이 두려워 공직사회가 달라질지는 미지수다.

2021년 6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서 새 원훈석(신영복체) 제막을 마치고 참석자들(당시 직책)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해구 경제인문사회 연구회 이사장,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경협 국회 정보위원장(민주당), 문 대통령, 박지원 국정원장, 윤형중 국정원 1차장, 박정현 국정원 2차장, 김선희 국정원 3차장, 박선원 국정원 기조실장. 정 이사장은 2017년 6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가 기밀이 들어 있는 국정원 메인 서버를 열람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됐다. [청와대, 연합뉴스]

교육·노동·연금 등 3대 개혁과는 별도로 공직사회 대수술에도 착수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까지 눈치만 보면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공직사회에 전기충격이라도 가해야 한다. 물론 채찍만으로는 어림없을 것이다. 공무원 처우 개선 방안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이 임명하는 주요 자리는 대통령 임기와 맞추는 방향으로 법을 정비해야 한다. 만년 야당 할 생각이 아니라면 여야는 초당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다 공직 사회가 공복(公僕) 의식을 깡그리 상실할까 걱정스럽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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