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홍규의 달에서 화성까지] ‘우주 7대 강국’ 거창한 선언, 등수에 매달리지 마라

2023. 1. 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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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성에 가려 하는가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 우주탐사그룹장
영화 ‘마션’의 마크 와트니는 지독하게 운이 없는 사내다. 그가 속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아레스 3팀’이 화성에 착륙한 지 6일째 되던 날, 악명 높은 모래폭풍을 만난다. 유일한 탈출 수단인 로켓이 바람에 쓰러지는 일촉즉발 상황에서 대원들은 철수를 결심한다. 마침 강풍에 날아온 철심이 그의 배에 박혔고 우주복에 달린 생명유지 장치가 꺼진 것을 확인한 동료들은 화성을 떠난다. 마크는 구사일생으로, 상처에서 나온 피가 옷에 뚫린 구멍을 차단해 가까스로 목숨은 건진다. 549일 동안의 화성 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영화 ‘마션’과 ‘인터스텔라’ 차이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해 6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당시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세계 7번째 ‘우주강국’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 공동취재단]

이번에는 ‘인터스텔라’다. 머지않은 미래, 인류는 기후변화와 식량난으로 멸종과 직면한다. 생존을 위해 농업을 부흥했지만, NASA를 해체하자 우주탐사는 이제 쓸모없는 일이 됐다. 전직 우주비행사 조셉 쿠퍼는 농부로 일하다, 먼 은하계로 통하는 최단항로를 개척하는 비밀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절규하는 딸을 뒤로한 채 기약 없는 시공 여행을 떠난다. 놀랍게도 ‘인터스텔라’는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마션’은 490만에 그쳤다. 본고장 미국에서는 정반대였다.

한 SF평론가의 해석이 그럴싸하다. “미국에서는 ‘마션’이 몇 년 안에 펼쳐질 현실이지만, 인터스텔라는 여전히 먼 미래다. 미국인이 ‘마션’에 열광하는 이유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두 영화가 똑같이 까마득한 미래였는데, ‘인터스텔라’는 유독 감성을 자극했다. 영웅주의보다 가족과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동양적 가치가 국내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리고 7~8년이 흘렀다. 지난해 정부는 2032년 무인 달착륙에 이어 광복 100주년(2045년)에 “화성에 태극기를 꽂겠다”고 발표했다. 두 영화의 후속편이 개봉되면 한국에서는 ‘마션2’가 더 관심을 끌지도 모르겠다.

인문학자와 과학자의 대화 부재

화성에 착륙하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스스로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한 적이 있었던가. 우주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고, 왜 달에 가는지, 왜 화성에 가는지, 그 명백한 이유와 철학과 함의를 담은 문서를 본 기억이 없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 이외에 철학자와 사회학자·경제학자를 포함한 인문사회 분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 적도 없었다.

정부는 5년 안에 우주 예산을 2배로 늘리고 2045년까지는 100조가 넘는 투자를 유치한다고 한다. 왜? ‘우주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주경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집대성한 보고서는 아직 보지 못했다. 2023년 현재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주 분야의 정부 연구개발 예산 비중은 세계 12위, 2027년까지는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한국에는 경제정책을 전담하는 50년 된 국책기관과 10개 넘는 민간 경제연구소가 있다. 과거에 이들 국책 연구기관과 민간 연구소는 정책 아젠다를 제시했으며, 거시경제와 산업의 흐름을 분석하는 싱크탱크를 자임했다. 그들이 펴낸 보고서는 경제관료에게도 훌륭한 참고서였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뒤 민간에서는 그룹 내부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로 그 기능이 축소됐다. 몇 년 전, 필자는 동료들과 국책기관과 민간 경제기관 연구자를 초청해 우주탐사에 관한 기획연구를 했다. 이들은 이공계 연구자들의 무딘 감각을 일깨우는 통찰과 영감, 그리고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었다. 값진 시도였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가 ‘우주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니 이들 ‘싱크탱크’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럴만한 유인책도 마련해야 한다.

등수가 실력을 보장하지 않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근 한국이 6대 강국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 시사주간지 US뉴스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결과다. 85개국의 정치·경제·군사 영향력을 종합 평가할 때 미국·중국·러시아·독일·영국에 이어 한국이, 그리고 프랑스와 일본·아랍에미리트(UAE)·이스라엘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냉정할 필요가 있다. 알고 보니, 이 조사는 10개 영역에서 이뤄졌는데 한국은 국민이 모험을 즐기는 수준(51위)과 사업 개방성(76위), 삶의 질(24위), 인권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목표(42위)에서는 낮은 점수에 머물렀다.

이처럼 ‘등수’가 ‘실력’을 왜곡하는 일들은 우주 분야에서도 벌어진다. 정부는 나로호와 달 궤도선(다누리호)의 잇따른 성공에 자신을 얻어 ‘7대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하겠다고 나섰다. 1t 넘는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다는 게 근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7대 강국’의 본질적 의미와 그 ‘성적’이 국제사회에서도 유효한지 답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톤(t)급 발사체의 개발 역량만 따진다면 한국은 이미 7위(2022년) 자리를 확보했다. 한국의 우주 분야 예산은 11위(2022년), 인공위성 발사 건수는 14위(2022년)다. 어떻게든 여기까지는 한국이 경쟁자들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이소연 잇는 우주인 아직 안 나와

하지만 한국이 38번째로 유인 우주임무에 참여한 뒤 아무 활동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소연 박사는 2008년 세계에서 475번째, 여성으로는 49번째 우주인이 됐다. 2022년만 해도 14개국 출신 63명의 우주인이 국제우주정거장과 톈궁 임무에 동참했으니 ‘등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게다가 미국·중국·일본·인도·UAE, 유럽우주국(ESA)은 2020년대에 60개 넘는 달 탐사선과 태양계 탐사선을 발사하지만, 한국은 다누리호가 유일한 태양계 탐사선이다.

왜 등수에 매달리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전략이 없어서다. 철학이 없어서다. 국권 침탈과 6·25 전쟁을 겪은 뒤 모든 게 초토화한 한국은 고도성장으로 산업사회에 진입했다. 서두르면 항상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우리의 가치관은 단순화·획일화했으며 내면보다는 외형에, 무형의 가치와 내실보다 숫자와 지표를 중시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은 정치와 교육에 뿌리를 둔다. 그래서 최상위의 가치를 고민하기보다 숫자에 집착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게다가, 모든 구성원이 동참해 담벼락을 허물고 100년을 내다보는 통합 전략을 짜는 방법을 훈련받지 못했다.

미국 NASA에서 진정 배워야 할 것

정부는 NASA를 모델로 우주 전담기관을 설립한다. 60년 넘는 역사와 압도적인 연구성과는 물론, 인력과 예산·시설·기술 측면에서 1대 1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참고할 필요는 있다. 백악관은 의회에 NASA의 2023년 예산을 신청했다. 백악관에서 펴낸 ‘미국의 우주활동 우선순위 프레임워크’를 보면 미국은 우주활동에서 혜택을 누리는 동시에, 우주를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과 국력의 원천으로 규정한다.

이 문서에는 기술과 혁신, 민간우주 활성화, 국민 안전과 안보, 기후변화, 우주감시와 우주교통, 국제협력, 후속세대, 지속가능성 같은 키워드가 보인다. 미국 우주 분야 ‘글로벌 전략’은 백악관과 의회에서 수립, 결정한다. ‘지역전략’과 ‘국가전략’은 NASA 본부에서, ‘프로그램’은 본부 산하 10개 센터에서, 하위 ‘프로젝트’는 연구그룹이 책임진다. 2022년 ‘NASA 전략계획’에는 백악관이 규정한 프레임워크 이행을 위한 세부 내용이 포함됐으며, NASA의 철학은 ‘인류를 위해 우주를 탐구한다’는 비전에도 잘 드러나 있다.

NASA는 임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NASA는 지구대기와 우주에서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 그리고 혁신과 발견을 통해 인류에 이익을, 세계에 영감을 준다.’

국제우주정거장 탑승권 못 따

2000년대 초반, NASA는 한국에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정부는 응하지 못했다. 경직된 행정체계와 예산집행 방식으로는 출구를 찾기 어려웠으리라.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달 궤도우주정거장 ‘게이트웨이’ 참여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ISS 건설과 운영으로 호흡을 맞춘 ISS 컨소시엄 참가국만 초청받는 바람에, 아직 한국은 탑승권을 따내지 못했다.

정부의 ‘우주개발 진흥기본계획’은 NASA처럼 장기계획(프로그램) 단위가 아닌 개별사업(프로젝트)을 나열한 문서였다. 사업을 따려면 도로·항만·철도·공항 같은 사회 간접자본 사업을 심사하려고 만든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예타는 R&D 사업목적과 ‘철학’에 맞지 않게 설계됐다. 최근 정부는 ‘제4차 우주개발 진흥기본계획’을 5개의 장기임무, 즉 프로그램 단위로 대폭 뜯어고쳤다. 이러한 변화에서 작은 희망을 읽는다.

지난해 NASA는 ‘달에서 화성까지’(M2M)라는 신규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해외에 협력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도 원한다. 그러려면 법적, 제도적 장벽과 낡은 관습을 허물어야 한다. 그 상위에 있는 철학은 목적과 법·제도·조직·예산과 같은 하위 개념들을 통치한다. 다시 묻겠다. 우리는, 왜 화성에 가려 하는가?

문홍규 한국천문연구원·우주탐사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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