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괴함은 나의 힘"...日 오타쿠 문화를 현대미술로 만든 장인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좀비'전
초기작~ 최신작까지 170점 망라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키워드로
인간의 불안, 공포, 현대문명 암시
이우환 작가가 직접 나서 작가 초대
지난 26일 오후 2시 부산시립미술관 1층 대강당. 안경을 쓰고, 희끗희끗한 수염과 긴 머리의 60대 남자가 커다란 분홍색 헝겊 인형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일본의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61)다. 인사를 마치고 미술관 로비 설치작품 앞에 선 그는 자기 주변으로 모여든 카메라를 위해 연신 두 팔을 벌리고 다리 한쪽을 올리며 포즈를 취하는 '서비스'를 마다치 않았다. 이 사람, 절대 평범하지 않고 웃기고 기이한 작가다.
다카시의 작품 전반을 조명하는 회고전 '무라카미좀비'전이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다.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전시 이후 10년 만의 한국 개인전이다. 미공개 초기작을 포함해 회화와 대형 조각, 설치, 영상 등 1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은 어린이를 위한 '유령의 집'을 잘 갖춘 테마파크 같다. 상상 속에서나 봤음직 한 기괴한 모양의 캐릭터가 대형 캔버스를 꽉 채우고 있고, 거대한 도깨비 모양의 '붉은 요괴, 푸른 요괴', 썩은 살점이 뚝뚝 떨어져 간 모습의 '무라카미좀비'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는다. 꽃잎 12개짜리 웃는 얼굴 모양의 '무라카미 플라워' 관련 회화와 조형물, 요괴 캐릭터 53점을 진열한 전시실도 있다.
그를 키운 건 일본 애니메이션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의 미학
동일본 대지진이 남긴 것
그러나 '귀여움'과 '기괴함'의 작품세계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하고 힘들었다. 부모님 따라서 신흥종교에 빠졌다가 20대 초반에 탈퇴한 후 종교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고 개인사를 털어놨다. 그런데 "대지진 때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아이에게 '엄마가 별이 됐다'고 이웃 사람이 말해주는 장면을 방송으로 보며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는 "종교는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제공해 패닉을 진정시킬 수 있다. 그때부터 이야기가 있는 예술로 뭔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덧없음' 섹션은 그렇게 변화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불교의 오백나한과 금강역사, 아미타 내영도 등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현란한 '무라카미 스타일'로 재현했다. 작가 자신과 반려견을 실제 크기의 좀비 형상으로 재현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도 여기 있다. 제작에 5~6년이 걸렸다는 이 작품은 살과 근육, 내장이 녹아 흘러내리고 그 안의 뼈가 드러난 형상이 기괴함의 극치다. 그는 요괴 등 기괴함에 끌리는 이유에 대해 "인간에겐 병, 재해, 전쟁 등 다양한 공포가 있다"며 "그 두려움을 실체화한 게 괴물이나 요괴다. 이것을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공포가 있었지 하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거장 이우환의 힘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다. 이우환(86) 화백이 나서 적극적으로 작가를 섭외해 선보이는 이 시리즈에선 앞서 안소니 곰리, 빌 비올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세계적인 작가를 소개했다. 국내 미술계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돕는 국내 거장의 소리 없는 노력이 이룬 성과다.
이 화백은 지난해 6월 다카시에게 보낸 손편지에 "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합니다. 그러나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습니다"라며 "언제나 넘치는 패기와 부정과 긍정 반전역전의 드라마성에 놀랍니다"라고 썼다.
다카시는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이우환 선생님께서 이 전시에 초대해 주셨는데, 그 자체가 제겐 큰 영광이리 전혀 망설임 없이 초대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우환 작품 상설 전시관인 이우환공간에서는 이우환 작품과 다카시의 '원상(円相)' 연작을 함께 볼 수 있다.
이것도 현대미술일까?
이번 전시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전시는 당초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으나 작품이 설치되던 중 태풍 '힌남노'로 노후한 미술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미뤄졌다. 이 때문에 본래 6개월이던 전시 기간도 짧아졌다. 미술관은 관람료 1만 원을 책정했다가 짧은 전시 기간 등을 고려해 무료로 바꿨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부산=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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