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굶어 죽으라는 거냐"…이젠 한 끼도 힘든 무료급식소
서울 영등포동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 총무 박경옥(64)씨는 지난달 급식소에서 일한 지 28년 만에 처음으로 설을 앞두고 방앗간에서 떡국용 떡을 직접 사왔다. 연말연시면 쏟아지던 가래떡 후원이 뚝 끊겨서다. 박씨는 “코로나19 전엔 보통 크리스마스와 신정, 구정마다 특식으로 떡국을 400~500인분씩 했다. 몇 번을 먹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로 후원이 들어왔었는데, 올해엔 식사하시는 분이 300명 정도로 줄었는데도 (후원받은 떡으로는) 떡국을 한 번 끓이기에 부족했다”고 말했다. 떡 300인분을 사는 데엔 후원금 약 60만원이 들었다.
급식에 쓰던 김치도 기존엔 수입산을 사서 썼지만 최근 물가가 크게 올라 지인들에게 김치 기부를 받기 위해 노력 중이다. 박씨는 “원래 연초면 냉장고가 꽉 차 있었는데, 요즘은 휑하다”며 “여유가 있으면 국에 고기도 얹어 끓여드리고, 고기반찬도 할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다”고 한탄했다. 1993년부터 운영돼 온 토마스의 집은 지금도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 약 600명에게 주 5일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2013년부터 밥값 명목으로 200원을 받고 있지만 사실상 무료급식소다.
고령층과 노숙인 등의 한 끼를 책임져 온 무료급식소들이 존폐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식품 물가가 치솟고 독거노인이 증가하면서 급식소 운영비는 계속 증가한 반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후원금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무료급식소 전국 255곳이 운영을 종료했다. 순수 민간 기금으로 운영되는 무료급식소 현황은 별도로 집계도 되지 않는다.
26년 된 안양 노숙인 무료급식소도 ‘휘청’
가장 대표적인 무료급식소인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옆 원각사 무료급식소도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에 골머리를 앓는 건 마찬가지다. 고영배(53) 사회복지원각 사무국장은 “수입산 김치가 작년 1만 1000~2000원 하던 게 지금 1만 7000원 한다. 채소도 작년보다 20~30%씩은 오른 것 같다”며 “후원금이 줄진 않았지만, 하루에 10만원씩 해서 한 달에 300만원 정도 (식비가) 올랐다”고 말했다.
양파, 고등어부터 고추장까지…천정부지 뛰는 식품 물가
문을 닫는 무료급식소들이 늘면서 노인들 사이에선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6일 유쾌한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김용순(72)씨는 “(급식소가 없어지면) 굶어 죽으라는 거다. 달리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동의 한 아침 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70대 박모 씨는 “어떤 급식소는 원래 밥을 먹고 빵이나 사과 같은 간식 대여섯개를 줬는데, 어느 날부터 ‘후원금이 안 들어온다’며 간식을 줄였다”며 “이해하지만 배고픈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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