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을 커피로 독살하려 한 사건, 이래서 생겼다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1896년 고종(박희순)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혼돈의 시기를 다룬 영화 <가비>의 한 장면. |
ⓒ 오션필름 |
김홍륙이 흑산도로 유배를 떠난 지 17일이 지난 9월 12일 저녁 고종과 황태자가 저녁 수라 후 나온 커피를 마시고, 황제는 구토를 하였고 황태자는 실신을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던 김한종은 남은 커피를 반 잔쯤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사건이 발발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궁내부 대신 이재순, 의정부 참정 윤용선, 궁내부 특진관 심순택 등이 나서서 조사에 참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종이 답하기를 반복하였다. "경무청으로 하여금 원인을 엄히 밝혀내게 하겠다."
9월 14일 법부대신 신기선은 죄인들을 신문하는 과정에서 종신 유배형을 받은 죄인 김홍륙의 이름이 나왔으므로 그를 잡아다 심문하려는데 그가 특지(황제의 뜻)로 결정된 유배 죄인이므로 법부 마음대로 정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고종은 "잡아서 심문하라"고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갑오개혁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꾀하는 모든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새 법을 폐하고, 연좌와 노륙을 허용하는 옛 형전을 회복할 것을 거듭 청하였다. 갑오개혁 때 폐지된 법이 연좌법과 노륙법이었다. 연좌법은 죄인의 가족에 대해 중형을 내리는 법이었고, 노륙법은 죄인의 스승, 아들, 남편, 아비를 죽이는 법이었다.
고종은 "죄인은 재판을 한 다음에야 법대로 처형할 수 있다"고 답하였지만 이들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김홍륙에 대해 재판 없이 종신 유배형을 내린 것이 고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폐하께서는 군민들을 많이 모이게 하여 그의 목을 베고 그 몸을 동강 내서 온 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각자 그 살을 씹어 먹고 그 살갗을 깔고 자도 시원치 않은 통분한 심정을 조금이나마 풀게 해 주소서"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상소를 통해 낯선 서양 요리를 물리칠 것을 청하였다. "서양 요리로 말하면 곧 서양 사람들만 먹는 것입니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장과 위는 서양 사람들과 달라서 보통 사람들도 먹을 수 없는데 더구나 더없이 귀한 전하에게 올리는 것이겠습니까. 삼가 원하건대 폐하는 특이한 음식과 맛이 다른 음식을 들지 말고…"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와중에 황제와 황태자의 건강 회복을 경축하는 행사를 거행하자고 청하는 자들도 있었다. 고종은 "잠깐 앓다가 곧 나은 것이니 굳이 경하할 필요는 없"다고 응답하였지만 이들의 청은 끊이지 않았다. 거듭된 거절에도 고위 관료들이 거듭 청하였고, 결국 마지못해 따르겠다고 하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구파 인사들은 독립협회 해산을 주장하고, 파직된 구세력의 복직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죄인들의 주장
김홍륙은 "음력으로 올해 7월 10일 유배 보낼 것에 대한 폐하의 조칙을 받들고 유배지로 떠나던 길에 갑자기 흉악한 반역심이 생겨 아편 담배 1냥중 가량을 공홍식에게 주면서 섞어서 서양 요리에 올리라는 뜻으로 말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공홍식은 "그 약을 받아서 김종화에게 전해주면서 이 약을 임금에게 올리는 차에 넣는다면 은전 1000원을 수고한 값으로 주겠다는 뜻으로 부탁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김종화는 "그 약을 받아가지고 보현당에 들어가서 임금에게 올릴 커피차 관에 넣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김영기·엄순석·김연흥·김흥길·강흥근 등은 "모두 전문적으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로서 음력으로 올해 7월 26일에 보현당에 들어가서 임금께 올릴 서양 요리를 만들어 올리는 일을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김재택·조한규 등은 모두 보현당의 서기로서 살피고 조사하는 일을 하였다고 하며, 김재순은 "보현당에 대령하는 무예별감으로 살피고 검사하는 일을 했는데 차 속에 탈이 있을 줄은 깨닫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였다.
김홍륙의 아내 김소사는 "저희 남편 김홍륙이 귀양을 떠날 때 신문 밖에서 작별했는데, 김홍륙이 말한 가운데 공홍식에게 부탁한 것이 있으니 공씨가 만약 편지를 부탁하면 믿음성 있게 전달하라고 했는데, 일의 속내는 알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박대복 등은 모두 보현당의 군사로서 단지 운반을 맡고서 왔다 갔다 했을 뿐 애초에 음식을 만드는 데 간섭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조사 결과 고등재판소는 아래와 같이 처분의견을 제시하였다.(고종실록, 35년 10월 10일)
피고 김홍륙·공홍식·김종화 등은 '대명률' 모반대역조의 '무릇 반역 음모를 함께 꾀한 자에 대해서는 주모자와 공범자를 분간하지 않는다'는 법조문에 비추어 모두 교수형에 처할 것이며, 피고 김영기·엄순석·김연흥·김흥길·강흥근·김재택·조한규·김재순 등은 같은 '대명률' 합화어약조의 '떡과 같은 음식물을 맛을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법조문에 의해서 모두 태형 50대에 처해야 하며, 피고 김소사와 군사 박대복 등은 모두 죄가 없는 만큼 방면해 줄 것.
무너지는 나라
▲ 대한제국 고종 황제 |
ⓒ 위키미디어 공용 |
피고 김조이는 이미 저의 남편의 부탁을 들은 만큼 음모를 꾸민 속내를 필시 몰랐을 리가 없는데 줄곧 뻗대며 사실대로 실토하지 않았으니, 교활하고 악독하기 그지없습니다. 해당 범인 김조이는 '대명률' 대제상서사불이실조의 속이고 사실대로 쓰지 않은 법조문에 비추어 태형 100대를 치고 징역 3년에 처하도록 상주합니다.
근대적 기관으로 출범한 고등재판소와 수구파 법부대신 사이의 의견 차이가 보이는 장면이었다. 이를 듣고 고종은 "아뢴대로 하되, 김조이는 징역 대신 유배를 보내라"고 하명하였다. 고등재판소의 무죄 주장과 법부대신의 징역 3년 주장의 중간을 택한 것이다.
고등재판소의 의견을 고종에게 보고한 다음 날인 10월 11일 김홍륙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법부에서 교수형 집행 후 사람들을 종용하여 시신을 네거리로 끌어내어 마음대로 칼질을 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는 엄연히 새 법, 즉 사형을 교형 한 가지로 정한 것을 어기고 옛 법에 있던 참형 제도를 적용한 것이었다.
고종은 같은 날 그 책임을 물어 법부대신 신기선과 수반판사 이인우를 면직시켰다. 서정순을 새 법부대신으로 임명하였다. 같은 날 수구파의 거두 조병식에 대한 유배형과 징계를 면제하였다.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던 윤치호는 심순택 윤용선 이재순 심상훈 민영기 신기선 이인우 등을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고, 고종은 물러갈 것을 명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심순택은 사직 상소를 올리고 동작나루를 건너 한성을 떠났고, 고종은 마지못해 그의 사직을 받아들였다.
연일 집회를 열어 조정을 압박한 윤치호를 견책하였던 10월 12일, 수구내각을 개편하고 박정양을 의정(내각 수반) 서리로 하는 개혁파 내각을 출범시켰다. 방향도 철학도 없는 인사가 반복되었다. 국가의 운명도 이런 방향 없이 흔들리는 인사처럼 흔들려 국망의 길로 향했다.
김홍륙의 아내 김소사가 유배지로 떠나기로 한 이날 신임 법부대신 서정순은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것을 고종황제에게 보고하였고, 고종은 태형을 면제하고 유배지로 바로 보낼 것을 지시하였다. 임신한 여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 배려로 보인다. 10월 23일에 황제와 황태자의 건강이 회복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가 예정대로 행해졌다. 무너지는 나라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잔치였다.
나라를 지키는 황제가 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죄인을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풀어주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생긴 사건이 고종커피독살 기도사건이었다. 죽지 않은 고종과 황태자를 위한 잔치가 열리던 떠들썩한 순간에도 나라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 千人血)'을 외치고 등장하는 멋진 암행어사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커피인문학자, 유튜브 '커피히스토리'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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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2). 고종커피독살 기도사건의 역사적 의미. 한국커피문화연구, 8(1).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 + 한국가배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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