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과학이 맞닿는 순간의 감동, 느껴보실래요?
[김성호 기자]
철학 고전을 읽다보면 과학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칸트가 공간과 시간 위에 모든 존재며 경험을 세우려하거나, 데카르트가 x, y, z축의 그래프를 두고 모든 운동을 수치로 표현하게 했던 순간 등이 그렇다.
종교며 신앙, 믿음, 천국과 지옥, 온갖 실존하지 않는 것들이 철학 안에 혼재돼 있던 시기가 이와 같은 학자들을 거쳐 차츰 정리되었다. 그와 같은 철학의 정신은 오늘날 과학적 태도와 닿아 있다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과학책을 읽으며 철학을 떠올리게 될 때도 없지가 않다. 과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김상욱 교수의 에세이 <떨림과 울림>도 그런 인상을 주는 책이다. 과학자의 대중서 가운데 제법 성공한 이 책은 물리학자의 시각으로 우주와 세상을 이해한 글모음집이라 할 수 있겠다.
빅뱅은 단순히 공간만의 탄생이 아닐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어느 순간 공간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칸트라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 따위는 애초에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27p
▲ <떨림과 울림> 책 표지 |
ⓒ 동아시아 |
휴대전화, 냉장고 작동원리를 모르는 게 당연할까?
시간과 공간이 한 점으로부터 출발했음을 보이는 빅뱅이론부터 이 책은 대중들이 알지 못하거나 알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현대 과학의 수많은 지식들을 하나씩 들추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 대부분은 현대 과학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라 이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수없이 들어보았을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휴대전화며 냉장고, 자동차가 작동하는 원리를 분명히 알고 이를 사용하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 게 아닌가. 말하자면 과학자의 상식과 대중의 지식이 무척이나 괴리돼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와 같은 소위 '과학소매상'의 존재가치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이가 많은 건 이와 같은 의미에 공감하는 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20세기 초 출현한 양자역학을 설명하며 상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그러나 혼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란 것이다. 절대적인 옳음이 존재하는 듯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의 시대를 넘어 관측방법에 따라 빛이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한 세계가 열렸다는 뜻이다. 세상은 더는 물체의 질량에 속도를 곱해 운동량을 추출하는 닫힌 세계가 아니다. 주관적이며 확률적이고 불확실한 세계다.
알 수 없는 세상이지만, 알려하는 게 인간
1800년 윌리엄 허셜은 역시 프리즘을 이용하여 재미있는 발견을 한다. 빛을 쬐면 따뜻하다. 빛이 열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빛의 색깔에 따라 열의 크기가 다를까? 허셜은 프리즘을 통화하여 분리된 빛에 온도계를 늘어놓고 색에 따른 온도변화를 측정했다. 놀랍게도 빨강색의 바깥쪽, 즉 빛이 보이지 않는 곳에 둔 온도계의 온도가 가장 많이 올라갔다. 그곳에 손을 대보니 따뜻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열을 전달하는 무언가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빛 '적외선'이었다. 빛은 파동이다. 파동은 진동이 공간으로 전파되는 것이다. 목에 손을 대고 소리를 내보면 그 떨림, 진동을 느낄 수 있다. 소리도 파동이다. 즉, 빛은 소리와 비슷하게 행동한다. 소리는 진동수에 따라 음이 달라지고, 빛은 진동수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아주 느리거나 빨리 진동하는 소리는 인간이 들을 수 없다. 이런 소리를 초음파라고 한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듯이, 보이지 않는 빛이 있다.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18~19p
철학과 과학은 그렇게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건 더 정밀하고 더 확실한 앎을 추구하는 세계다. 김상욱은 그것을 과학이라 말한다. 그리고 과학은 하나의 학문이 아닌 태도라고까지 이야기한다. 300년 전 사람인 칸트가 김상욱의 이 글을 읽었다면 그의 과학이 자신의 철학과 통한다고 했을 것이다. <떨림과 울림>을 읽으면서 칸트를 떠올리는 것, 그것은 지식은 발전하고 변화하지만 그를 대하는 지성의 자세가 변치 않았다는 믿음과도 맞닿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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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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