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박물관이 이래도 돼? 예상 못 한 신선한 충격 [성낙선의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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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선 기자]
▲ 평화누리 자전거길 4코스, 농기계 우선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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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3코스와 4코스 사이에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렇다 할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3코스가 끝난 지점이 어딘지 명확하지 않은 자리에서 바로 4코스가 이어진다. 공식적인 3코스 종료 지점명은 '파주출판도시휴게소'이다. 그런데 자전거길에서 휴게소가 어딘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휴게소를 이용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이 자전거길을 지나가면서 휴게소 없는 휴게소에서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 평화누리 자전거길 4코스, 5코스 안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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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장소와 이름이 대순가? 여하튼 자전거도로는 계속해서 4코스로 이어진다. 출판도시는 계획적인 도시답게 자전거도로로 이용되는 도로 역시 곧고 평탄한 편이다. 도로 주변의 건물들은 무척 세련된 형태로 지어졌다. 도로가에 주차한 차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데, 아마도 출판도시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세워놓은 차들로 보인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 공릉천 하구, 송촌교 다리 난간에 걸려 있는 현수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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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촌교 다리 난간 위로 작은 현수막 십여 개가 걸려 있는 게 눈에 띈다. 주변에 사람들도 없고 민가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 이 많은 현수막들이 내걸린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현수막에 시민단체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현수막에 적힌 문구들로만 봐서는 하천 정비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몇 년 전부터 공릉천 하구를 정비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 사업의 일부로 제방 폭이 넓어지고, 제방 옆으로는 다시 폭 2.5미터, 깊이 2.5미터의 수로가 조성됐다. 그 길이가 500미터가량 된다. 그 정도 수로면, 공릉천을 서식지로 삼은 동물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시민단체들은 동물들이 수로에 빠지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로를 원래 상태로 복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평화누리 자전거길 4코스. 농부와 자전거, 자동차가 함께 사용하는 길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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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 하구를 지나면서 자유로 너머로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무장지대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 중에 하나다. 전망대에 오르면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 땅인 개풍군을 눈앞에 두고 바라다 볼 수 있다. 단지 강 하나를 건너면 바로 북한 땅이다. 그런데 70여 년이 넘도록 그 짧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 장준하 추모공원, 대리석에 장준하 선생의 얼굴과 약력 등이 새겨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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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은 조국이 해방되기 전에는 일제에 항거해 싸웠고, 해방이 된 이후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다.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했다. 그러다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산행 도중 의문의 사고사를 당했다. 이후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껏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 현실은 선생이 살아 있을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선생의 꿈이 실현되지 못한 데 일말의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 자유로 너머로 멀리 오두산 통일전망대가 올려다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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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고을 입구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바로 헤이리예술마을과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이다. 헤이리예술마을은 한두 번 와본 기억이 있지만, 국립민속박물관은 처음이다. 이 박물관은 2020년 개관했다. '국내 최대 민속자료센터'로서, 각종 민속품을 '개방형 수장고' 형태로 전시하고 있다. 개방형 수장고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말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게 더 빠르다. 보통 민속박물관하면 낡고 어두운 분위기가 먼저 떠오르는데, 이 박물관은 그런 이미지를 말끔하게 지웠다.
▲ 파주 국립민속박물관 전시물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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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박물관까지 갔을 때만 해도 길이 좋았다. 하지만 그 후로 펼쳐진 평화누리 자전거길은 내게 더 이상 '평화'를 선사하지 않는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아 얼어붙으면서, 길이 빙판이나 다름없이 미끄럽다. 그늘이 진 부분은 아예 눈이 녹지도 않았다. 일반도로는 바로 제설이 되는 반면, 자전거전용도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여행을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이 인다. 그래도 좀 더 가보기로 한다. 계속 가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 눈이 채 녹지 않은 자전거 전용도로. 평화누리 자전거길 4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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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눈질을 할 겨를이 없다. 한눈을 팔다가는 눈길 위에서 자전거와 함께 나동그라질 판이다. 조심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스팔트 위로 얇게 얼음이 언 비탈길에서 결국 보기 좋게 넘어진다. 아스팔트 표면이 그냥 물에 젖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일종의 블랙 아이스다. 이후로는 모든 길이 블랙아이스처럼 보인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 임진각, 총탄 자국을 간직한 채 녹슬어가는 장단역 증기기관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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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임진강역이다. 멀리 역사에 전철이 대기하고 있는 걸 보고서 임진각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찌 됐든 이 평화롭지 않았던 여행도 드디어 끝이 보인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임진각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매우 부산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좀처럼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 임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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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에 실향민들을 위한 '망배단'이 마련돼 있다. 명절이 다가오면, 이곳에서 실향민과 탈북민들이 망향의 한을 달래며 함께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 임진각은 전쟁통에 입은 상흔이 여기저기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촬영 금지' 표지판이 붙은 철조망 너머로 긴장감이 흐른다. 그런데 그런 곳에 마땅히 있어야 할 엄숙함이 사라졌다.
▲ 평화누리공원, 작품명 <통일부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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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여행은 지난 10일과 21일, 이틀에 나눠서 다녀왔다. 10일에는 파주출판도시휴게소에서 파주 국립민속박물관까지, 21일에는 파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임진각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10일에는 도로 사정이 좋았지만, 21일에는 도로가 얼어붙어 자전거를 타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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