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함께한 말라뮤트 ‘귀요미’의 15시간 구출기 [개st하우스]

이성훈,최민석 2023. 1. 2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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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에 버려져 2년 간 살아
집배원·제보자 도움으로 연명
사연 보도 후 후원 줄 이어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폐가에서 구조된 말라뮤트 ‘귀요미’가 지난 10일 경기도 시흥의 한 애견미용실에서 미용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시흥=최민석 기자

지난 10일 오전 9시 경기도 양평의 한 폐가. 주인이 떠나고 몇 년째 홀로 공터에 방치돼있던 33㎏ 대형견 말라뮤트 ‘귀요미’가 낯선 인기척에 반갑게 꼬리를 흔듭니다. 이날은 귀요미가 드디어 폐가를 탈출하는 날이에요. 귀요미는 먼저 돌덩이처럼 엉겨붙은 털을 깨끗하게 밀고 온몸을 샅샅이 살피는 정밀 건강검진을 받은 뒤 새 삶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따뜻한 거처에서 따뜻한 사람과 함께 말입니다.

귀요미는 최근 국민일보가 소개한 유기견입니다. 덩치는 산만하지만 구조하는 내내 한번도 짖지 않은 순한 녀석이죠. 귀요미는 사업에 실패한 주인이 황급히 떠나면서 폐가 인근 공터에 버려졌습니다. 그대로 굶어죽을 뻔했던 귀요미를 살린 건 우체국 집배원과 제보자 김혜선(26)씨였죠. 두 사람이 챙겨준 사료와 물 덕분에 귀요미는 2년간 폐가에 묶인 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간신히 목숨만 연명만 하는 삶이었어요. 짧고 무거운 쇠사슬에 묶여 덥고, 춥고, 눈비 내리는 사계절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으니까요.

혜선씨에게 제보를 받은 국민일보 개st하우스 취재팀이 출동했습니다. 지난 7일 귀요미에게 급한대로 집과 목줄을 제공하고 간이 건강검진을 받게 한 뒤 구조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구조비용과 임시보호처(임보처)였어요. 다행히 귀요미 사연이 보도된 뒤 후원이 이어졌고 구조에 필요한 비용 및 돌봄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귀요미를 구조하러 출발할 시간입니다.

유튜브 채널 ‘개st하우스’ 라이브방송으로 구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폐가로부터 애견미용실, 동물병원을 거쳐 임보처에 도착하기까지 고군분투했던 귀요미 구조기를 전해드립니다.

드디어 폐가에서 나온 귀요미

오전 8시, 말라뮤트 귀요미가 방치된 폐가에 동물구조단체 팅커벨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가 11인승 대형 승합차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황 대표는 체중 33㎏의 귀요미를 뒷좌석에 태우고 다음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송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앞서 모금을 위한 후원 계좌를 제공하고 후원금 50만원까지 보태준 것도 팅커벨프로젝트였어요. 덕분에 개st하우스 팀은 3일 만에 치료비 340만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100m쯤 걸어 올라가자 말라뮤트 귀요미가 방치된 폐가가 보입니다. 귀요미 옆에는 제보자 혜선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혜선씨는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사료를 챙겨주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귀요미가 2년간 추위와 더위,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던 폐가를 떠날 시간입니다. 오전 9시, 기자가 목에 걸린 1m 쇠사슬을 풀어주자 귀요미는 시원한 듯 온몸을 푸르르 털더군요. 혜선씨는 가벼운 나일론 재질의 산책줄을 귀요미에게 채우고 함께 언덕길을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혜선씨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합니다. 혜선씨는 귀요미를 안아 대형 승합차 뒷좌석에 올린 뒤 “심장사상충 치료 잘 견디고 좋은 가족 만나라”고 인사했습니다. 승합차 미닫이문을 쿵, 닫는 그 순간. 바라보던 모두가 뭉클해졌습니다. 기쁘면서도 섭섭한 그 마음을 모두가 알 것 같았습니다. 이별의 순간을 지켜보던 라이브방송 구독자들은 “그간 귀요미 돌봐주셔서 감사하다” “귀요미가 구조돼 기쁘면서도 섭섭하겠다”라는 댓글로 혜선씨를 응원했습니다.

차량 탑승이 익숙하지 않은 동물들은 푹신한 좌석 대신 딱딱한 바닥에 엎드리려고 합니다. 방향감각이 뛰어난 탓에 차체가 흔들릴 때마다 사람보다 차멀미를 심하게 느끼기 때문이죠. 귀요미도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내내 승합차 바닥에 넙죽 엎드려 있더군요. 약 2시간 뒤 귀요미를 태운 승합차가 다음 목적지인 경기도 시흥의 애견미용실에 도착했습니다. 온몸의 털이 엉키고 썩은 귀요미의 위생미용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무려 4시간 걸린 위생미용

털을 깎은 후의 귀요미 모습. 귀요미는 이날 피부병 방지 및 건강상태 확인 등을 위해 무려 4시간에 걸쳐 누더기 털을 밀었다. 떼어낸 누더기털의 무게는 4㎏에 달했다. 시흥=최민석 기자

갓 구조된 유기동물에게 가장 시급한 치료는 위생미용입니다. 오염된 털을 방치하면 피부병에 걸리기 쉬울 뿐만 아니라 건강상태를 확인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귀요미는 구독자 이경숙(34)씨가 운영하는 시흥의 애견미용실에서 온몸의 털을 남김없이 밀 겁니다.

말라뮤트급 대형견의 털을 삭발하려면 4명의 애견미용사가 3~4시간씩 매달려야 합니다. 견공이 움직이지 않도록 2명이 붙잡고, 나머지 2명은 흔히 바리깡이라고 불리는 클리퍼와 가위를 이용해서 털을 손질해야 하죠. 이날 귀요미는 취재진 두 명이 붙잡고 있는 동안 두 명의 애견미용사가 털을 밀었습니다.

귀요미의 털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배설물과 함께 엉킨 털은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 귀요미의 피부 곳곳에 끈적하게 눌러붙어 있었습니다. 애견미용사 경숙씨는 “귀요미는 얼굴을 제외한 온몸의 털을 남김없이 밀어야 한다”며 “따갑고 아플 텐데 귀요미가 잘 견딜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습니다. 이날 미용에는 클리퍼가 9자루나 사용됐습니다. 장시간 사용으로 장비가 과열되면 귀요미가 화상을 입을 위험성이 있어 10분 간격으로 클리퍼를 교체해야 했죠.

두 개의 면도날이 힘겹게 누더기 털을 가르는 동안 취재팀은 귀요미를 단단히 안았습니다. 눌러붙은 털을 떼어낼 때마다 아픈지 귀요미는 네 다리를 떨었습니다. 그렇지만 미용 내내 한 번도 한 번도 짖거나 이빨을 드러내지 않더군요. 귀요미의 온순한 성격 덕분에 작업은 수월했습니다. 미용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누더기털을 가르고 새하얀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귀요미도, 봉사자도 물을 마시며 쉬도록 1시간마다 휴식했고 장장 4시간에 걸친 미용이 마무리됐습니다.

누더기 털을 벗기자 귀요미의 앙상한 몸이 드러났습니다. 장시간 미용에 지친 듯 귀요미는 털 무더기 곁에 웅크렸습니다. 떼어낸 누더기털을 모아 저울에 달아보니 무게가 4㎏에 달했습니다. 또래 말라뮤트의 평균 체중이 50~60㎏인데 털 무게를 제외한 귀요미의 체중은 29㎏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못 먹고 묶여 지낸 탓입니다.

위생미용을 도운 행동전문가 전승윤씨는 “깎인 털이 복원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도 있겠지만 6개월쯤 지나면 말라뮤트 특유의 풍성한 털을 다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귀요미는 구독자 후원금으로 마련한 대형견 겨울조끼로 추위를 이겨낼 겁니다.

동물병원 거쳐 임보처 도착

고속도로 너머 지평선으로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15시간에 걸친 구조 일정도 어느덧 끝이 보입니다. 오후 6시30분, 귀요미를 태운 수송차량은 경기도 안성의 한 동물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귀요미가 차에서 내리자 행동전문가 권미애씨가 반기며 산책줄을 잡았습니다. 미애씨가 바로 앞으로 4~5개월간 귀요미를 돌볼 임보자입니다. 미애씨는 귀요미를 돌보기 위해 40평 전원주택의 방 한 칸을 비워뒀습니다. 귀요미는 따뜻한 실내에서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고, 최종입양자를 만날 때까지 미애씨로부터 행동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 전에 정밀 건강검진을 받을 차례입니다. 위생미용을 마친 덕분에 심박동과 체중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1주일 전 간이검진 때보다 긍정적이었어요. 비록 심장사상충이 심장에 침투했지만 심장 청진과정에서 잡음이 발견되지 않는 등 상태가 경미해 심장사상충 초기(2기)로 판단된다는 수의사 소견을 받았습니다. 수의사는 “사상충 2기 감염은 치료 과정에서 혈관 막힘 등 부작용이 거의 없다”며 “귀요미의 치료 경과는 좋을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틀 뒤 미애씨가 제공한 영상 속 귀요미는 임보처에 잘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미애씨가 그릇에 부어준 사료를 깨끗이 비운 뒤 푹신한 간이침대에서 편히 잠들더군요. 하루 2회씩 복용해야 하는 심장사상충 치료약도 거부감 없이 먹는다고 합니다. 다만 보호자 없이 오래 방치된 탓에 귀요미에게는 하루 수십차례 사람을 부르는 하울링 습관이 있다고 해요. 미애씨는 “귀요미의 하울링을 완화하기 위해 모범행동을 보이는 헬퍼독이 안심하고 휴식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며 “그 결과 하울링 증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귀요미는 오는 5월까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게 됩니다. 독한 약물치료를 견디도록 사료업체 로얄캐닌에서 치료기간 동안 영양사료를 후원할 예정이죠.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돌아올 때쯤이면 귀요미는 병이 다 낫고 말라뮤트 특유의 풍성한 털도 돋아날 겁니다. 새 가족을 만날 만반의 준비를 마치게 되는 거죠. 그 때가 되면 귀요미를 입양할 가족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귀요미의 견생역전을 응원하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이성훈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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