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에어팟 끼고 일해야 능률이…

이가현 2023. 1. 2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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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편입니다.”

쿠팡 플레이 코미디쇼 ‘새터데이나잇 라이브쇼(SNL)’의 오피스 시트콤에 등장하는 대사다. MZ세대 신입 직원이 업무시간에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것을 직속 사수가 지적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받아치는 말이다. 이 대사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직속 사수 역할을 맡은 배우 주현영은 이른바 ‘젊은 꼰대’이자 ‘끼인 세대’로 그려진다. 신입 직원들과 부장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아무도 수저와 물을 세팅하지 않아 안절부절못한다든가, 반찬이 다 떨어졌는데도 신입 중 아무도 반찬을 채우려고 하지 않아 언짢아함과 동시에 상사의 눈치를 본다.

나는 1989년생으로 올해 만 34세다. 입사가 늦은 편이라 아직 직장생활 8년 차다. 일찍 취업한 친구들은 벌써 10년 차를 넘어 중간관리자가 된 경우도 있다. 취업 시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끼인 세대고 젊은 꼰대들이다.

에어팟 논란은 내 주변에서도 실재했다. 한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근무하는 친구는 3~4년 전부터 에어팟을 끼고 일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처음에는 상사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해 후배가 두세 번 만에야 답하는 걸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메신저를 통해 부를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업무에 큰 지장이 없으니 내버려뒀다는 거다.

한 친구는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상호 간 오전 10시 반까지는 출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고 한다. 한 후배가 이 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고 아예 점심을 먹고 출근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그런데 업무는 곧잘 해내서 딱히 지적하기 어렵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근태는 허상이었던 걸까.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언론업계도 다르지 않다. 2015~2016년 입사자들은 주 52시간제가 실시되기 이전의 세대다. 하루 2~3시간씩 자고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경찰서 안팎을 종일 도는 수습 교육 ‘하리꼬미’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이때만 해도 언론사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군대처럼 ‘다나까’로 말의 어미를 끝내야 했고, 식사 자리에서조차 정자세를 유지한 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정도로 답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사뭇 다르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선배가 건넨 말에 답을 한다. 대화다운 대화를 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어색하게 느껴진다. 당돌하단 생각도 드는데 새삼 깨닫게 된다. 저게 정상적인 것이지 않나. 덩달아 나도 상사와의 대화가 편해진다.

MZ세대 후배들의 덕을 보는 건 또 있다. 급하게 잡힌 회식과 선약이 겹쳤을 때 내 사정을 말하는 게 어렵지 않아졌다는 거다. 하루는 당일 마련된 회식과 중요한 선약 사이에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후배는 나를 보더니 “회식은 갑자기 잡힌 거잖아요. 선약이 먼저지 뭐가 문제예요?”라고 말했다. 저렇게 쿨할 수가 있나.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물론 가벼운 선약보단 회식이 먼저다. 후폭풍이 두려워 첨언하는 말은 아니다.

MZ세대가 싫어하는 말이 MZ세대라는 말이라고 한다. ‘역시 MZ야’ ‘MZ라 다르네’ 등의 말들에 반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인데, 마치 치기 어린 행동을 관대하게 받아들인다는 기성세대의 반응이 열 받는다는 거다.

시대마다 특정 세대를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7080세대·90년대 학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고도의 경제 성장과 외환위기 사이에서 성장한 ‘X세대’로 불리면서 별종으로 여겨졌다. 2차 베이비붐 세대(1966~1974년생)인 ‘F세대’ 역시 신인류로 불렸다.

지금의 MZ세대는 연구 대상처럼 여겨지지만, 과거의 많은 신인류가 그랬듯 이들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은 다음 사회의 상식과 보편이 될 것이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늘 낯설기 마련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쓰여 있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고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늘 옳은 방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견을 덧붙이자면, 상사와 식사를 하러 갔을 때는 물 따르고 수저를 놓는 건 예의다. 선후배를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다. 참고로 꼰대 테스트에서 난 ‘옹졸한 평화주의자’가 나왔다.

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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