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아이들 교실서 술래잡기 “친구들 있어 좋아요”

이도경 2023. 1. 28.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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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추진 ‘도시형 늘봄학교’ 원형
경남 창원 명서초등학교 가보니…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초등학교에 설치된 거점형 통합돌봄센터 ‘늘봄’에서 초등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처럼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은 빈백 소파에서 장난을 치거나 장난감을 갖고 노느라 분주했다. 경남교육청 제공


여학생들이 3대 3 피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탱탱볼이 한 학생의 얼굴에 맞았다. 날아오는 공을 잡으려다 놓친 것이다. 경기 종료. 이긴 쪽이 환호했다. 얼굴을 맞은 아이의 같은 편 친구가 “한 판 더 해”라고 외치자, “그래 한 판 더”라며 잠시 일그러졌던 얼굴을 폈다. 상대편 아이들이 “그래 좋아”라고 맞장구치자 양측은 이내 진용을 정비하고 힘껏 공을 던지고 피하고 잡았다. 방학 중이던 지난 19일 방문한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초등학교의 거점형 통합돌봄센터 ‘늘봄’의 한 장면이다.

늘봄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설은 정부가 추진 중인 ‘늘봄학교’ 정책의 원형이 된 곳이다. 교육부는 오후 8시까지 돌봄과 방과후학교를 결합해 운영하는 늘봄학교를 2025년까지 전국 초등학교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개별 학교에서 운영하는 형태와 여러 학교 학생들이 공동 이용하는 거점형 모델을 추진할 방침인데, 명서초에 있는 늘봄은 도시형 거점형 모델로 정부가 벤치마킹한 곳이다.

김태훈 교육부 교육복지돌봄지원관은 “중앙에서 정책을 만들어 지역에 이식하는 게 아닌 지역의 잘된 정책을 중앙에서 전국으로 확산하는 사례가 경남의 늘봄과 정부의 늘봄학교”이라며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거점형 늘봄학교가 어떻게 운영될지 이 시설을 보면 예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양말도 벗고 신나게 놀아요

사진=경남교육청 제공

늘봄은 명서초를 포함해 인근 10개 학교 학생이 이용하고 있다. 경남교육청은 명서초의 학생 수가 줄어들어 교내 여유 공간이 생기자 별관 2~4층을 통째로 비우고 이 시설을 만들었다. 2층 전체와 3층 절반에는 돌봄교실 6개, 3층 절반과 4층 전체에는 방과후학교 교실 8개가 들어섰다. 학기 중에는 낮 12시30분부터 오후 8시, 방학 중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된다. 학기 중에는 140명 안팎, 방학 중인 현재는 123명이 늘봄에 다닌다. 학부모를 위한 수시·틈새 돌봄도 열어놨다. 방과후 프로그램으로는 음악줄넘기 피아노 바이올린 로봇과학 과학실험 등 24개가 돌아가고 있다.

늘봄에선 ‘쉼과 공부’로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돌봄교실에서 학생은 대부분 양말을 벗은 맨발이었다. 따뜻한 바닥에 뒹굴며 책을 보거나 빈백 소파(bean bag sofa·형체가 고정되지 않은 푹신한 소파)에 기대 친구와 담소를 나눴다. 활동적인 아이들은 아래층을 신경 쓰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과후 수업 시간이 되면 양말과 신발을 신고 이동했다. 수업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다시 양말을 벗어 던지고 친구들과 섞였다. 낮잠을 잘 수 있는 침실도 있었으나 이용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빈백 두 개를 마주 보게 두고 얘기를 나누던 4학년과 1학년 자매는 쑥스러운 듯 “그냥 편해요”라고 했다.

돌봄전담사는 아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별다른 통제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아이의 동선을 꿰고 있었다. 돌봄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일과가 그날그날 다르다. 어떤 아이는 태권도 학원을 오후 3시까지 가야 하고, 어떤 아이는 할머니가 오후 4시에 데리러 온다. 오후 8시까지 머무르는 아이들은 도시락과 간식을 챙겨야 한다. 돌발 상황도 있었다. 책상에서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룬 만화책을 보던 학생이 갑자기 코피를 흘리자 돌봄전담사가 지혈을 해주며 아이를 다독였다. 학생은 코피가 멈추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털고 방과후 수업에 가려고 신발을 신었다. 돌봄전담사는 “아이들의 모든 특이사항은 부모님께 공유된다”고 했다.

“엄마 왜 빨리 왔어?”

낮잠을 자고 싶거나 혼자 쉬고 싶은 학생을 위한 침실도 마련돼 있었지만, 시설을 방문했던 지난 19일에는 이용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경남교육청 제공

돌봄전담사와 얘기하는 동안 주변으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여기가 집보다 좋다’ ‘집도 좋고 여기도 좋다’ ‘집이 좋고 여기는 불편하다’로 아이들을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주로 친구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첫 번째에 속했다. 3학년 이모양은 “방학 때 집은 심심하다”고 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권모양은 “집은 편해서 좋고 여기는 친구들 때문에 좋다”고 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없다거나 학원을 다니는 게 피곤하다는 아이도 있었다.

“이곳이 힘들고 불편하다”는 1학년 김모군은 입이 ‘삐쭉’ 나와 있었다. 돌봄전담사는 “내성적이라 교우 관계가 어색한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내심 방학 동안이라도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이나 PC 게임을 하고 싶은 아이들도 부정적 반응을 나타낸다고 했다.

학부모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명서초 늘봄은 포화상태다. 경남교육청은 지난해 창원시 상남초에 늘봄 2호인 ‘늘봄 상남’을 열었고, 3호도 현재 준비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김지선씨는 “아이가 힘들지 않을지, 간식과 급식은 잘 나올지 여러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며 “일이 일찍 마무리돼 예정보다 일찍 아이를 데리러 간 적이 있는데 만들기 수업을 듣던 아이가 ‘왜 빨리 왔어’라면서 아쉬워했다. 그때부터 안심하고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완할 부분도 있었다. 늘봄 담당자들은 상담교사와 보건교사는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때문에 다치기도 하고,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문제행동을 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돌봄전담사로는 전문적 상담과 치료는 한계가 뚜렷하다고 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경남에서 시작한 정책이 전국으로 확대돼 기쁘다”며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건 늘봄 정책의 법제화다. 그래야 인력과 예산이 원활하게 공급돼 현장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창원=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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