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내리는 커피] 돌체다방이 사라진 명동

2023. 1. 28.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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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체(dolce)는 음악 연주에서 '감미롭게' '부드럽게'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우리나라에선 음악 용어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방이나 카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일본에서 구입한 클래식판이 1만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다방이었고, 세브란스 학생 중 음악과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었다.

명동 돌체다방의 커피는 가루를 넣어 끓인 후 걸러서 마시는 터키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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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돌체(dolce)는 음악 연주에서 ‘감미롭게’ ‘부드럽게’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다. 우리나라에선 음악 용어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방이나 카페 이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 지금도 전국에는 돌체란 단어가 들어간 다방, 카페, 레스토랑이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에 첫 돌체다방이 등장한 것은 1940년이었다. 일본 유학생 하석암은 부친이 보내주는 학비를 공부보다는 클래식 축음기판(SP판) 구입에 썼다. 예술가의 삶을 꿈꾸며 수천장을 구입했다. 1940년 귀국하자마자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하석암이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역 앞이었다. 세브란스의전 근처로 지금의 서울스퀘어(옛 대우) 빌딩이 있는 자리였다. 이곳 주택가 살림집 2층에 돌체다방을 차렸다. 일본에서 구입한 클래식판이 1만장 가까이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다방이었고, 세브란스 학생 중 음악과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주 고객이었다.

그런데 일제가 배영운동을 시작했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음반 사용이 금지됐고, 서양인이 만든 음악도 금지됐다. 카페나 음식점 이름의 영어 사용도 허용되지 않았다. 훗날 군부 독재자들이 흉내 낸 문화예술 탄압 정책의 원형이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습격으로 미일전쟁이 벌어지자 일제의 단속은 더욱 심해졌다. 오후 5시 이전에 다방이나 카페에서 레코드를 틀어도 안 되고, 5시 이후라도 아무 음악이나 들을 수 없었다. 우울한 음악과 감상적인 음악은 트는 것도, 듣는 것도 금지됐다. 카페나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군가를 들어야 하는 분위기였다. 단속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음악을 틀기 전에 레코드판을 경찰서에 들고 가서 틀어도 되는지를 미리 알아보는 방법이었다. 경찰들에게도 음악 지식이 필요했다. 잘못 알고 허락했던 음악의 작곡가나 작사가 혹은 연주자가 미국인이거나 영국인이면 문제가 됐다.

돌체다방이 경성다방으로 바뀐 것이 이즈음이었다. 영어식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일본과 같은 편이었던 이탈리아 말이었지만 무식한 그들이 알 리가 없었다. 해방이 되고 돌체는 조금 넓은 건물을 찾아 명동으로 이전했다. 돌체다방 이름을 되찾았고, 유명 장소가 됐지만 곧이어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 초에 하석암은 총상으로 세상을 떠났고, 레코드판을 지킨 것은 부인이었다. 피난지 부산까지 그 많은 축음기판을 가져가 부산 돌체다방을 열었다. 전쟁이 끝나고 문을 연 명동 돌체다방에는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출입하며 추억을 쌓았다. 중학생 백건우가 아버지와 함께 들러 피아노 연주곡을 감상하던 곳, 화가 백영수가 죽치고 앉아 신문 만평을 그리던 곳이 돌체다방이었다.

명동 돌체다방의 커피는 가루를 넣어 끓인 후 걸러서 마시는 터키식이었다. 인스턴트커피 대중화 이전이었다. 명동에 대중가요와 인스턴트커피가 넘쳐나고, 커피 향도 음악도 모르는 철부지들이 넘쳐나기 시작한 1962년 돌체는 스스로 문을 닫았다. 돌체가 사라진 지 60년, 명동에 아직도 커피다운 커피와 문화는 없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교육학과) leegs@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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