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전세 종말의 방아쇠

이상렬 입력 2023. 1. 27. 23:00 수정 2023. 1. 2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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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의 졸속 임대차보호 입법
빌라 사기 얽히며 전세 종말 재촉
무리한 가격 규제로 서민들 피해

문재인 정권 시절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거는 대단했다. 2020년 7월 30일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정부는 31일 시행에 들어갔다. 소관 상임위(법제사법위) 상정부터 국회 통과, 시행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이틀. 새 제도가 가져올 후폭풍에 대한 세밀한 점검이 있을 리 없었다. 정책 실패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고, 덩달아 전셋값이 뛰자 세입자들을 보호한다는 취지였다.

실패를 무리수로 덮는 형국이었다. 당시 미래통합당 초선인 윤희숙 의원은 “제가 임대인이라도 세놓지 않고 아들·딸한테 들어와서 살라고, 조카한테 관리비만 내고 살라고 할 것”이라며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하고 절규했다. 현실이 그랬다. 당장 전세가 씨가 말랐다. ‘4년·5% 인상’에 묶이게 된 집주인들이 전세를 거둬들이고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시에 전셋값 폭등이 이어졌다.

이 사이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 아파트 시장의 불이 다세대·연립 등 빌라 시장으로 옮겨붙었다.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서민들이 빌라로 몰렸다. 빌라 매매가와 전세가가 급등했다. ‘임대인이 절대 갑’인 시장은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됐다. 신축 빌라 전셋값을 터무니없게 책정해 팔아넘기는 악성 거래가 판쳤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이 그렇게 뛰지 않았더라면 사기 집단들이 그토록 활개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안정된 시장이라면 사기가 들통나기 쉬운 법이다.

지금 전세 시장은 대혼란이다. 집값 하락에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세입자를 새로 구하지 못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은 지난해 12월 45.4%로 급감했다(법원 등기정보광장). 오랫동안 60% 안팎을 오가던 이 수치가 확 떨어졌다. ‘전세의 소멸’이 다가오고 있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대개 고금리와 전세 사기를 주 요인으로 꼽는다. 임차인의 전세 선호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과 전세 수요는 상극이다. 금융권에서 거액의 전세자금을 대출받았거나 받아야 하는 이들에겐 고금리가 악몽이다. 이자가 생활을 옥죈다. 게다가 전국적인 전세 사기가 전세의 근간을 때렸다. 혹시나 내 전세금도 떼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아무리 집주인 납세 정보를 조사하고 등기부등본을 떼본다 한들 작심하고 덤벼드는 사기를 완전히 막긴 어려울 것이다. 전세는 이사갈 때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성립하는 제도다. 그 신뢰가 흔들리면 임차인은 전세를 기피하고, 전세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전세 비중 감소세가 확연해진 것은 2021년 하반기부터다. 7월 55.5%, 8월 54.8%로 줄더니 2022년 2월 51.2%로 내려왔고, 4월부터 절반 이하(49.9%)로 주저앉았다. 그런데 2021년 7월 금리는 사상 최저인 0.5%였고, 2022년 4월 금리는 1.5%에 불과했다. 전세 사기 역시 매스컴을 타기 전이었다. 고금리와 전세 사기, 두 요인이 덮치기 전부터 전세 시장의 구조적 균열이 시작된 것이다. 2021년 8월은 임대차보호법 개정 1년 되는 시점이었다. 무모한 법 개정이 전세 종말을 앞당기는 방아쇠를 건드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의 핵심 개념은 가격 규제다. 시장에서 정해지던 임대료를 강제로 묶었다. 가격 규제는 좌파식 접근이다. 소비자와 대중에게 이익을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과는 보다시피다. 가격 규제는 시장을 왜곡시킨다. 엉뚱한 이들이 폭리를 챙겨가고, 피해는 애꿎은 시민에게 돌아온다.

망가진 시장은 좀체 복원되지 않는다. 전세의 소멸을 좋다, 나쁘다고 단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전세를 사다리 삼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사례는 드물어질 것이다. 그것이 입법 폭주를 했던 이들이 원했던 것인가.

글=이상렬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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