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욱의 문화재전쟁] 해양국가 마한 고분, 왜 일본 무덤 닮았을까
영산강 유역 ‘장구 모양 무덤’
임나일본부 연상되는 억지 논리
일본은 메이지 시절부터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서 실체도 애매한 신공황후의 정벌과 임나일본부를 기정사실로 하고, 그 역사적인 명분을 만드는 데 열중해 왔다. 하지만 삼국시대 당시 왜군이 한국을 침략하거나 식민지로 만든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두 무덤이 붙어 있는 가야 고분을 찾아서 전방후원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실제는 달랐다. 그러자 일본 식민학자들은 남한에서 출토된 일본계 유물에 주목했다.
선사시대 한·일 교류는 빈번했다. 지금 같은 민족감정이 없었던 삼국시대에 일본과의 왕래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총독부와 관변학자들은 일본과 비슷한 고분이나 유물이 발견되면 곧바로 ‘임나일본부’, 혹은 신공황후의 침략이 증명됐다는 식으로 호도했다. 하지만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인이 진출하거나 이주한 흔적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합리화하는 대표적인 논리인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패망과 함께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 전남 일대에서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장고분(전통악기 장구와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 발견되면서 곧바로 무덤의 주인공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전방후원분은 앞쪽은 네모형으로, 뒤쪽은 둥근 형태의 무덤을 붙인 고분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무덤이다. 위에서 보면 마치 열쇠 구멍처럼 생겨서 영어로는 ‘열쇠구멍무덤(Keyhole shaped mound)’이라고 한다.
장고분은 1990년대 이후에 조금씩 조사가 시작되어서 지금까지 15기가 알려졌고, 그중 10기가 발굴됐다. 발굴 결과 실제 일본 유물은 토기 1~2점에 불과하고, 마한 사람들이 일본의 무덤과 유물을 모방한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이 무덤에서는 일본뿐 아니라 중국·백제·가야·신라에서 온 유물도 적지 않았다. 일본의 진출 가능성을 부정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영산강 유역 삼국시대 마을 유적에서 나왔다. 만약 일본인이 대거 건너와서 이 지역에서 무덤을 만들었다면 요즘 미국 대도시의 차이나타운 같은 마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호남 지역 어디에도 일본인 이주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규슈에서 나온 마한의 집과 부뚜막
마한 사람들은 어쩌다가 일본과 유사한 무덤을 만들었을까. 모든 고고학이 그러하듯 단서는 유적과 유물에 있다. 장고분은 여러모로 다른 삼국시대 무덤과 다르다. 보통 삼국시대 무덤은 경주 대릉원처럼 묘역을 먼저 조성하고 수백 년간 대를 이어서 여러 무덤을 함께 만든다. 그런데 마한의 장고분은 교역의 통로인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의 언덕 위에 뜬금없이 1개만 만들었다. 조성 시기도 아주 짧아서 5세기 말~6세기 초 약 50년 정도였다.
장고분이 들어선 시기에 백제는 영산강 유역 마한으로 그 세력을 점차 확장하고 있었다. 이때 백제는 고구려에 패해서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겼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에 맞설 동맹을 찾아 일본과 관계를 강화했다. 그런데 원래 일본과의 교역은 마한이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 실제로 규슈 일대에는 마한의 집과 부뚜막이 다수 발견돼 마치 ‘코리아타운’을 연상시킬 정도다. 후쿠오카 족장들 무덤 속에서 마한에서 준 토기가 나올 정도로 두 지역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다. 남하하는 백제에 위기감을 느낀 마한 사람들이 원래 대일 교역의 중심은 우리라는 점을 과시하듯 뱃길의 길목 언덕에 전방후원분을 모방한 고분을 세운 것이라는 견해(전남대 최영주 박사)도 있다.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전역이 처음부터 백제였다는 오해다. 그런데 영산강 유역이 백제에 편입된 것은 6세기 중반이다. 그 전까지 마한은 다른 세력의 침략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 부여의 후손임을 표방하는 백제인이 마한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절대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모두 한국인이지만 삼국 각지가 전쟁하던 시점이었으니 저항도 제법 컸을 것이다. 문제의 장고분은 새로운 세력에 대한 마한의 반발감을 집단으로 표현한 것이다.
왜 하필 일본식 고분이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실 일본과의 갈등은 임진왜란과 20세기 식민지를 거치면서 극도로 악화했다. 당시 백제와 마한은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던 우방이었다. 또 삼국시대에는 외래계 무덤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백제 왕족들은 중국에서 차용한 벽돌무덤을 만들었고, 경주 김씨 왕족들은 북방 초원의 무덤을 모방했다. 고구려 벽화무덤 역시 한나라 시대 산둥반도 무덤을 참고한 것이다. 이렇게 이국적인 무덤을 만들면서 지배자들은 일반 백성과 다른 선민의식을 강조할 수 있었다.
고고학적 ‘스모킹 건’ 유물 없어
마한에서 장고분이 만들던 시점에 일본 열도에는 야마토 정권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여러 세력이 경쟁하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국호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다른 나라를 넘볼 국력이 없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장고분 주인이 규슈에서 파견된 일본인이라거나, 일본에서 온 망명객이 이 지역을 장악했다는 주장이 있다. 백제로 귀화한 일본의 망명객이라는 절충안도 있다. 다양한 학설은 존중돼야 한다. 반면 고고학 유물로 볼 때 장고분 주인공이 일본에서 왔다거나 일본의 영역임을 증명하는 어떠한 ‘스모킹 건’도 없다.
무덤을 모방한 것만으로 특정 주민이나 국가가 진출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마치 신라 고분이 북방 유라시아의 쿠르간을 모방하고 초원계 유물도 많이 가져다 놓았으니 흉노가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또 같은 시기 백제의 무령왕릉은 중국 양자강 유역의 남조가 만드는 벽돌무덤을 사용하고 일본에서 가져온 소나무로 관을 썼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백제의 왕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게 교류했다. 일본 열도에 수많은 도래인이 간 것처럼 일본에서의 사람이 오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장고분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식민지 시절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자칫 진정한 역사의 모습을 가리고 현재의 이해관계로 역사를 재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마한과 일본의 관계에 대한 정당한 논의는 임나일본부와 같은 식민지 시절의 논리가 한·일 양국에서 청산됐을 때 가능할 것이다.
마한의 독자성 새롭게 이해해야
장고분 논란에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바로 마한의 역사다. 그동안 마한의 실체는 백제에 가려져 왔다. 최근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그나마도 장고분은 임나일본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회피하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조건 문제를 피하는 것은 되레 의심만 키우고 일본의 침략논리에 이용될 뿐이다. 진정한 해결책은 마한의 다채로운 문화를 당시 관점에서 이해하고 밝히는 것이다.
마한의 무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독특하다. 어린아이에게 주로 쓰는 항아리 무덤을 2~3m크기로 만들어서 왕과 족장의 거대한 무덤에 사용했다. 또한 마름모꼴이나 길쭉한 이등변삼각형 형태로 무덤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마한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개성 넘치는 무덤을 조성했다. 장고분도 이런 마한의 독창성에 기반한 것이다.
역사서에 따르면 마한은 고조선 준왕이 내려오며 시작됐다. 백제에 병합되기 전까지 700년 넘게 영산강 유역 비옥한 땅에서 살며 해상 교역을 개척한 국제인이요 자유인이었다. 임나일본부와 같은 정치적인 논리에 빠져서 다투는 동안 우리는 진정한 마한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 진정한 한·일 교류는 비옥한 호남 지역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이룬 마한의 실체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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