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팅] “소비자·팬들 역시 게임산업의 챔피언이다”

2023. 1.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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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빛내며 화면을 메운 그래픽에 몰두하는 아이들에게는 e스포츠가 얼마나 즐거운지, 박진감이 넘치는지, 선수들의 분투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지 묻는 법이 없다.

국내에 e스포츠가 태동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어른들'과 게임 관련 일을 하게 될 때면 '페이커라는 선수는 연봉이 수십억입니다!' '우리나라 게임산업 매출이 20조가 넘습니다!'라는 서두로 주목을 끌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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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빛내며 화면을 메운 그래픽에 몰두하는 아이들에게는 e스포츠가 얼마나 즐거운지, 박진감이 넘치는지, 선수들의 분투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 감동과 여운을 주는지 묻는 법이 없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페이커라는 선수의 연봉이 수십억이에요!”라거나 “우리나라 게임산업 매출이 2022년 기준 21.8조원이에요!”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어른들은 “너도 게임을 할 거면 페이커처럼 돈이나 많이 벌어보던가. 허구한 날…”이라며 긴 잔소리를 시작한다.

국내에 e스포츠가 태동한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어른들’과 게임 관련 일을 하게 될 때면 ‘페이커라는 선수는 연봉이 수십억입니다!’ ‘우리나라 게임산업 매출이 20조가 넘습니다!’라는 서두로 주목을 끌곤 한다. ‘돈이 된다’는 것은 어른들 세계에서 가장 사기적인 군중제어기이기 때문이다. 높으신 어른들의 관심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의 게임과 e스포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초점은 그 중에서도 ‘돈을 벌어들이는’ 주체에 집중된다.

우리나라 게임산업과 e스포츠가 이루고 있는 괄목할 성취의 이면에는 당연히 수많은 열성 게임소비자들이 있을진대, 이러한 소비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심지어는 무시되거나 멸시되기도 한다.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게임이 아닌 공부를 열심히 하여 게임을 만드는 대기업에 취직하길 바란다. 황제 임요환과 페이커 이상혁은 취임식마다 초청되는 문화의 아이콘이지만, 그들을 선망하며 게임으로 밤을 새는 겜덕들에게는 독서나 운동 같은 다른 문화활동을 좀 하라며 잔소리가 쏟아지기 일쑤다. 이 어찌 아이러니가 아닐 수 있을까.

모든 문화산업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 즐기는 개개인이 창의와 유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공유하는 문화가 되고 산업이 되었다. 생산성과 부가가치는 게임의 결과물일 뿐 본질이 아니다.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로 여기고 좇다보면 본질을 즐기는 사람들이 떠나간다. 노골적으로 유저의 주머니만 정조준하는 일부 사업자들도, 당장의 인기만을 노리고 게이머들의 관심을 체리피킹하는 일부 높으신 어른들도 그걸 모른다.

문화산업을 지탱하는 기반은 언제나 문화를 수단으로 돈을 좇는 사람들이 아닌, 콘텐츠 자체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게임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만 주인공이 아니다. 즐거움, 몰입, 성취감, 혹은 그 무엇이든 게임의 존재 의의 자체에 몰두하는 게임소비자들, e스포츠 팬들. 그들 역시 챔피언이다. 비록 그 가치를 숫자로 환원하기 어려울지라도.

오지영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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