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상황' 아닌 '수시보고'…北무인기 상황 분류부터 문제였다

이근평 2023. 1. 2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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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당시 군은 이를 초기부터 긴급상황으로 분류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잘못된 건 상황 판단뿐만이 아니었다. 부대 간 상황을 공유하는 시스템 자체에도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6월9일 강원도 인제군 야산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 뉴스1


‘긴급상황’ 아닌 ‘수시보고’로…초기 판단부터 문제

26일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북한 무인기 대응 전비태세검열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6일 오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오는 무인기의 항적은 ‘수시보고’ 대상으로 분류됐다. 신속한 대응에 나서기 위해선 애초 ‘긴급상황’으로 분류되는 작업이 필요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국지방공레이더에 특이항적을 포착한 육군 1군단의 실무자가 이를 ‘수시보고’ 목록에 올렸다”며 “10시 25분 북쪽에 있는 항적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판단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국지방공레이더. 중앙포토

그런데도 ‘긴급상황’으로 바로 잡는 시도는 없었다. 이와 관련, 합참은 “무인기로 추정되거나 무인기로 판단했을 경우 긴급상황 목록으로 분류되는 매뉴얼이 돼 있다”며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레이더상 항적이 짧은 시간 탐지·소실을 반복하다 보니 다시 평가하기 어려웠다는 해명이다.


긴급상황 대비한 시스템은 무용지물

수시보고 상황이 유지되면서 ‘고속상황전파체계’와 ‘고속지령대’ 같은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됐다. '고속상황전파체계'는 전 부대에 긴급상황을 알리는 전달 시스템이고 ‘고속지령대’는 방공부대가 전·후방 부대에 상황을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들 긴급 시스템의 공백은 뒤늦게 유선 전화로 간신히 메워졌다. 1군단은 오전 11시 5분 상급 부대인 지상작전사령부에, 지작사는 11시 11분 합참에 각각 유선 전화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지방공 레이더 운용 개념도. 방위사업청


서울 상공을 지키는 수도방위사령부는 그나마 이 같은 공유 체계에서도 소외돼있었다. 수방사는 사건 당일 오전 10시 50분쯤 예하 방공여단이 운용하는 레이더를 통해 서울 상공에 진입한 특이항적을 포착했다고 한다. 이후 자체적으로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교차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새떼 등을 포함, 하루 약 2000개의 항적이 식별돼 이중 무인기 항적을 골라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군은 설명했다. 합참이 ‘의심항적’으로 평가하고 합참에 보고한 뒤 작전에 나선 건 11시 27분이었다. 전방에서 무인기가 나타난 지 1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소외된 수방사, 자체적으로 무인기 항적 판단

군단에서 포착한 특이항적이 수방사와 공유되지 않고 있는 시스템상의 문제점도 이번 검열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군단 국지방공레이더에서 포착된 항적은 방공지휘통제경보체계(C2A)를 통해 수방사를 제외한 다른 군단·사단급 부대에 전파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번 북한 무인기 대응에서 상황 판단이 적절히 됐더라도 수방사가 온전히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군 관계자는 “국지방공레이더가 전력화될 때부터 지속한 문제로 보인다”며 “이번에 회선 관련 부분을 연동하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김승겹 합참의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 무인기 관련 현안보고 중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일사불란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사이 대공 경계태세인 ‘고슴도치’ 발령은 오전 11시 46분, 무인기 대응 작전 대비태세인 ‘두루미’ 발령은 낮 12시쯤 이뤄졌다. 공군 중앙방공통제소 레이더에 육군 국지방공레이더 정보가 수동으로 입력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합참 관계자는 “도서 지역을 제외한 육지에선 공군작전사령관만이 두루미를 발령할 수 있다는 문제가 이번에 식별돼 개선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군 대응 능력 시험하면서 사회 혼란 조성하려는 노림수”

합참은 이번 북한 무인기가 과거와 같이 상용 카메라를 장착했을 가능성이 높고 비행 거리 등에선 성능이 향상됐을 것으로 봤다. 기습 침투를 위해 접경 지역에서 이동식 발사대로 이륙시켰고, 귀환할 땐 낙하산으로 착륙시켰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도 용산을 촬영했을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카메라가 무인기 배면 내부에 숨겨져 있는 형상으로 수직 아래쪽만 촬영이 가능하다고 보면 용산을 찍기 어려운 항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5일 경기 양주 가납리 비행장 일대에서 합동참모본부 주관으로 북한 무인기 침투 상황 대응 방공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군 당국은 이번 북한 무인기의 침입 의도에 대해선 “아군의 대응 능력을 시험하는 동시에 사회 혼란을 조성하고, 아군의 사격에 의한 민간 피해와 우군기 피해가 발생하도록 하는 노림수가 담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무자 책임 정면 거론…수뇌부 과오는 구체적 명시 안 해

군 안팎에선 이번 검열 결과를 놓고 ‘꼬리 자르기’ 식 행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초기 판단을 긴급상황으로 분류하지 못했다며 실무자의 책임을 정면으로 거론하면서도 수뇌부의 과오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군 당국은 “실무진부터 고위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오자’를 파악했다”며 “(문책과 관련한 사항은) 상부에서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만 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에서도 군 당국의 책임을 둘러싼 야당의 공세가 이어졌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 상황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그야말로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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